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대회가 지난 12일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참가한 전 세계 158개국 4만3천여 청소년들은 부안 새만금 야영장에서 조기 철수한 아쉬움을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K-pop 공연으로 달래야 했다.
'세계스카우트잼버리'는 전 세계 청소년들이 야외에서 야영 생활을 통해 각국의 문화를 공유하고 체험하는 대회로 우리나라는 대회 유치뿐 아니라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그간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 국제 행사를 제반 준비 소홀과 폭염 등 날씨의 변수로 개운치 않은 결과를 남기게 된 게 못내 아쉽다.
사실 대회 준비에 천문학적인 국가 예산을 쏟아붓고도 대회 개막 후 열악한 시설과 환경을 견디다 못해 야영장에서 자진 철수하는 국가가 잇따랐다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연일 계속된 폭염과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관통할 거란 예보에 참가자 전원이 조기 퇴영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설 미비와 폭염 대비는 사전에 얼마든지 대처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런데 대회 중 이런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와 여야 정치권 할 것 없이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굳이 따지자면 대회를 유치하고 5년여 기간을 허비한 전 정부나 개막 당일까지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던 현 정부 모두 상대에게 책임을 전가할 처지는 아니다.
이런 공방에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끼어든 모양새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문 전 대통령은 최근 소셜미디어에 "사람의 준비가 부족하니 하늘도 돕지 않았다"며 "국격과 긍지를 잃었고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 되었다"라고 썼다. 글의 뉘앙스로 보아 현 정부의 준비 소홀을 탓한 건데 솔직히 '누워서 침뱉기'가 아닌가.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그러나 문 정부 때 대회 유치가 결정되고 당시 정부와 전라북도가 지난 5년간이나 준비를 해온 결과가 이 정도였다는 점에서 누가 누굴 탓하고 책임 공방을 벌일 형편은 아니다.
새만금 야영장은 애초에 전문가들로부터 부적격 판정을 받은 곳이다. 나무 한 그루 없고 배수도 안 돼 물이 흥건한 간척지에서 잼버리대회를 하겠다고 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런 곳을 대회 장소로 밀어붙이고 대회 관련 예산 대부분을 지출한 건 현 정부가 아니다. 그래놓고 기본적인 설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식으로 현 정부를 탓하고 있으니 낯부끄러울 지경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네 탓 공방을 벌이는 동안 새만금에서 철수한 각 나라 청소년들은 철저히 소외될 뻔했다.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가 이들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로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노력을 기울이기 전까지는 말이다.
특히 기독교계는 위기에 빠진 잼버리대회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만드는 일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미 일정이 잡혀있는 연중행사의 장소를 변경해가며 2천여 잼버리 참가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으며, 사랑의교회는 본당을 개방해 4천여 명의 영국 잼버리 대원들이 미처 진행하지 못한 스카우트 활동을 하도록 특별 공연도 마련했다. 또 천안 백석대학교는 11개국 1천6백여 참가자들에게 숙식과 태권도, K-POP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제공해 각국 청소년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이밖에도 잼버리 대원들을 위해 잠자리를 제공하는 등 정성껏 손님 대접에 나선 교회가 한둘이 아니다.
이런 선행이 외부에 알려진 건 지난 13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8.15 광복 78주년 한국교회 기념예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을 통해 한국교회 앞에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다. 윤 대통령은 "잼버리 대원들을 위해 교회 문을 활짝 열어주신 한국교회를 위해 대통령으로서 감사와 말씀을 드린다"며 "한국교회가 이렇게 섬김으로 하나 되면서 잼버리 참가자들이 제각기 아름다운 추억을 갖고 돌아갈 수 되었다"고 했다.
'세계 스카우트잼버리' 대회는 여러 가지 암초에 부딪혀 자칫 좌초할 뻔했다. 많은 외신이 한국의 대회 유치 자격에 의문을 드러내는 등 부정적인 기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허둥지둥하다 그대로 끝났다면 국격에도 커다란 손상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전·현 정부의 준비 소홀과 미흡한 대처, 그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반성하는 기색 없이 서로에게 책임이나 하는 게 우리 정치의 현주소다. 이 문제는 앞으로 감사원이 철저히 조사해 책임 소재를 가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 가운데서도 한국교회를 비롯해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구원투수'를 자처하고 나서 저마다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위기 앞에서 저력을 발휘하는 우리 국민의 단합된 힘을 다시한번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저력이 많은 한국교회의 자발적인 선행의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박수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