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을 아십니까? 단테의 본명은 단테 알리기에리, 13-14세기를 살았던, 이탈리아 로마의 시인으로써, 신곡(La Divina Comedia, Divine Comedy)이라는 서사시를 썼습니다. 이 책은 워낙 유명하여서, 문학을 꿈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 왔습니다. 그런데, 책이 주석서가 나올 만큼, 워낙 어렵고 방대하여,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던 차에 쉽게 풀어서 간단하게 쓴 책이 출판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입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신곡은 저자인 단테 자신이 살아 있는 몸으로 일주일 동안 저승의 세 구역,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여행하며 보고 들은 내용을 담은 작품입니다.
짧게 줄거리를 설명하면, 주인공 단테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기 이전, 의인들이 머무는 림보라는 곳에 머물던 철학자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구경하고, 마침내 자신의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가 먼저 가 있는 천국에 올라가 그녀와 재회하는 내용입니다. 단테의 신곡을 읽은 많은 이들이 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이 서사시가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의 시대상과 철학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당시 현존했던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어, 역사적인 가치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실존했거나, 실존하는 인물입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점은 당시 단테가 흠모하거나, 존경하는 자들은 연옥이나 천국, 좋은 곳에 머무는 것으로 묘사된 반면, 그의 관점에서 악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머무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단테의 신곡을 읽게 된 것은 학창시절에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기도 했지만, 카톨릭적 세계관, 천국관, 지옥관, 신앙관이 궁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단테는 카톨릭 사제가 아니었기에 그가 자신의 책에서 기술한 내용이 카톨릭적인 관점에서도 맞다고 볼 수 없는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에 쉽게 풀어 쓴 단테의 신곡을 읽으면서, 몇 가지 통찰력을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현대 개신교 교계에 퍼져 있는 구원론, 구원에 관한 관점이 카톨릭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개신교는 이제까지 카톨릭이 림보설, 연옥설, 성모 마리아를 신성시하는 부분에 대해 이단적인 가르침이라고 여겨왔습니다. 실제로 림보와 연옥은 그러한 늬앙스를 주는 몇몇 성경구절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잠시 설명 드리면, 림보는 예수님을 모르던, 예수님에 관한 예언조차 없던 시대에 태어나는 바람에 하나님 은혜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기회조차 없었으나, 나름 의로운 삶을 살았던 의인들이 머무는 장소입니다. 구교에서 신교가 분리되기 전, 신학자들과 신자들도 오늘날 우리처럼, "구체적인 계시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 중에도 신의 존재를 믿고, 신을 두려워하며, 의롭게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 최소한 지옥은 가지 않아야 공정하지 않느냐?"는 궁금증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연옥은 예수님은 믿었지만, 특정한 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들의 영혼이 죄로부터, 완전히 정화될 때까지 일정 기간 머무는 장소입니다. 실제로 책에는 지옥에도 동성애자들이 있고, 연옥에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옥에 머무는 동성애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옥에 머물게 된 것이고, 연옥에 있는 동성애자들은 그래도 주님을 믿었기 때문에 영혼이 정화될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저는 카톨릭의 림보설, 연옥설을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 두 이론은 결코 성경적이지는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교부들과 신학자들이 이 같은 비성경적 이론을 주장한 것은 어쩌면, 그렇게 악하지 않은 사람들이 지옥에 간다고 하기에는 지나친 면이 있고, 지옥에 갈 법한 사람들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위로와 안심을 주기 위해, 또 지옥에 대한 막연한 부담감과 두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상상력이 동원된 인간적인 염원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지금 개신교의 구원론은 카톨릭의 그것과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어떤 죄를 지어도 교회를 다녔으니, 다 천국에 가는 것으로 말씀을 전하는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카톨릭의 림보와 연옥은 이단이라고 말하면서, 본인들은 성경에 분명히 "이런 종류의 죄를 지은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는 죄도 마치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처럼, 말하며 성도들을 위로하기에 급급합니다. 물론, 이해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나름 사랑이 있고, 의로우셔서, 천국에 들어가면 참 좋겠다 싶은 분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 버리면, 우리 개신교가 카톨릭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오히려, 카톨릭이 더 인간적이고 솔직하고 구체적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됩니다.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은 주신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믿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부은 바 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분명한 변화의 증거가 있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는 죄를 죄로 철저히 인정하고, 그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자 하는 영적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자각이 없이, 버젓이 동성애와 간음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구원을 받습니다"고 우긴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를 짓밟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이 회개함으로 돌이키지 않는다면, 구원은 없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자신이 구원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영생을 얻을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자신을 길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며, 죄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야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은 이미 우리에게 왔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구원론이 카톨릭의 그것으로 변질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