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2년 재미고신 동부노회 봄 노회에서 목사로 장립을 받았습니다. 유학을 와 공부를 한 터라 함께 공부를 시작했던 동기들보다 약 5년 정도 늦게, 또 이런 저런 일로 어렵게 안수를 받아서 그런지 지금도 그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소망하고 구했던 목사가 되었다는 감격이기보다 나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다는 감격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좋은 목사가 되겠다고 나름 애를 많이 썼습니다. 그냥 한국에서 신학교를 마치고 목회를 했어도 되었을 텐데, 없는 살림에 미국까지 와서 공부를 했습니다. 당시는 가세가 기울어서, 사실 유학은 꿈도 꾸기 힘든 때였는데 보험하시는 어머님의 희생으로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좀 더 나은 목사가 되겠다고 금식도 자주 했고, 산 기도도 자주 갔고, 원하는 것을 포기도 많이 했고, 또 원치 않는 것을 하기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도 목회는 쉽지 않았고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늘 버겁게만 느껴졌습니다.
위기도 있었습니다. 교단 기득권층의 전횡을 지적하다가 팽당하고, 그래서 사역 방향을 전면 수정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뇌출혈로 정상적인 목회가 힘들어 교회를 사임한 적도 있었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풀리지 않는 목회적 고민 때문에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번도 목회를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내게 주신 사명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습니다. 유학을 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금식을 하거나 산 기도를 갔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목사가 되겠다고 나름 애를 썼던 나의 노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복음의 영광 때문에 저는 이 부르심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힘이 들었지만 그 영광이 나를 견디게 했고, 버거웠지만 그 영광이 나로 일하게 했습니다.
창 22:2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라고 하십니다. 말씀하시기를,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십니다. 생각하기도 무서운 명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브라함이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웠다는 것입니다. 순종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왕 순종하는 거 최선을 다해 순종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삼일 길을 걸어갑니다. 그 길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었을까요?
히 11:17 이하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라고 하십니다. 그가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었다고 하십니까?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그 길을 끝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가 이 영광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영광때문에 내 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