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론가와 행동가로 나눈다고 하면, 행동하지 않는 이론가의 특징은 상대적으로 냉정하고 극단적이고 잔인합니다. 예를 들어 '나의 투쟁'이란 히틀러의 자서전적인 책에서 보여주듯이 종족우월주의라는 이론에 깊이 빠진 그는 열등한 종족은 없어져야 한다는 무서운 생각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과격한 현상을 보이는 경향도 아직 현실 감각 보다는 이론이 앞서기 때문입니다. 결혼하고 자식 낳고 현장에서 일하며 살기 이전까지는 현실초월적인 이론에 빠져 젊음을 데모와 투쟁에 바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 이론만 배울 때는 반대자들을 "다 죽여 버릴까요?" 하며 과격했었습니다. 그렇게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은 요한도 현장에서 실제로 전도하며 주님 뜻대로 살아보니까 점점 온유해져서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선교사님들 가운데도 제일 상담을 격하게(?) 하는 분들이 파송된 지 3년 미만 된 분들입니다. 특히 몇 개월 안 된 분들은 '속았다. 잘못 왔다. 돌아가겠다. 선임이 틀렸다. 후원이 잘못 온다.......' 이론만으로 선교를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그런데 오래 동안 현장에서 살면서 선교하신 분들은 대부분 온유하고 겸손해집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행하지 않으면 판단과 정죄에 빠르고 냉정하고 과격해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공부 몇 가지를 하거나 특별한 제자훈련을 했다는 사람들이 현장이 없을 때가 제일 무섭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바리새인, 서기관들처럼 딱딱해지고 남을 정죄 심판하는 자세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기도에 대한 책만 읽고 이론으로만 살지 말고 실제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 시대를 위해, 아픈 사람, 어려운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 하는 현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선교에 대해 이론으로 아는 척하지 말고 실제로 현장을 통해 선교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대한 이론만 주워듣고 말만 하지 말고 실제로 교회라고 하는 현장에서 작은 일에 충성스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희들을 계속 행함이 있는 현장의 자리로 부르고 계십니다. 어제는 부활절을 준비하며 봄맞이 교회 대청소로 모두가 열심히 땀 흘리게 했습니다. 주일이면 각 교구와 부서와 기관에서 여러 봉사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또 매 예배 때마다 중보기도로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은혜의 마음을 품고 가정과 직장과 학교와 같은 삶의 현장에서도 믿음으로 행하게 하십니다. 바로 그 실제의 현장에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행함이 있을 때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를 이 땅과 하늘에서 기쁨으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주일 3부예배가 끝나면 바로 독일로 날아가서 월요일 오후에 '게제케'라는 곳 한적한 수양관에 도착하고부터 수요일 저녁까지 그곳에서 제 아내와 9번의 예배를 인도하고 옵니다. 그리고 목요일 아침 일찍 수양관을 출발하여 자동차로 프랑크푸루트 공항까지 달려가 비행기를 타면 L.A.에 목요일 저녁에 도착하여 금요일 새벽부터 온 성도들과 함께 고난주간 특별기도회를 갖고 영광스러운 부활주일을 기쁨으로 맞이할 것입니다. 앞선 신앙의 선배들이 조언하기를, '할 수 있을 때 'No' 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기회는 계속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현장에서 행함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