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로윈 축제의 날은 매년 10월 31일 밤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삼일 동안을 만성절 주간으로 지키고 있다.
로마 가톨릭 교황들이 어떻게 만성절을 확대해 나갔는가를 앞에서 살펴보았다. 날자도 바꾸고, 대상과 내용도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다. 특히 왜 11월 1일로 변경하게된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여기에는 유럽 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미신종교와 관련성이 깊다.
기독교 복음이 유럽 대륙에 전파되기 이전에, 고대 켈트족이 살았던 아일랜드와 영국 등 북부지역과 유럽 대륙에서는 "드루이드"(Druid)라는 샤머니즘 종교지도자가 상류층 성직자로서 상당한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종교적으로 드루이드를 따르는 자들은 매년 11월 1일을 새해 첫날로 지켰고, 그 전날 밤에 전야제를 즐겼다. 전야제를 "삼하임" (Samhaim)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수확을 마무리한 후 마지막 날에 죽은 자와 살아 있는자가 서로 어울리는 날이라 하여서 미신적이고 신비적인 일들로 가득하였다. 드루이드들의 경배 장소는 숲속이나 바위 등이 있는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다.
드루이드들은 경전도 없고, 종교적인 건물도 없었다. 오직 구전으로 자신들의 지식을 전달했다고 한다. 최고 높은 드루이드만 금색 옷을 입었고 현자로 추앙을 받았다. 그 다음 계급의 드루이들은 흰 색 옷을 입었다. 드루이드들은 아일랜드에서 군주들과 왕들을 섬기는 고위 성직자들로서 미래를 예언하는 사람이었다. 이들의 예식에서는 산 사람이나 동물들을 태워서 제사를 올리기도 했다.
이들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프랑스 지방을 점령한 율리우스 씨저의 책에 등장한다. (Julius Caesar's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주전 50년경). 또한 드루이드에 관한 언급은 로마의 저술가들, 씨세로, 타키투스, 플리니 등의 책에서도 찾을 수 있다. 티베리우스 황제는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드루이드들을 철저히 금지했고, 클라우디우스 황제도 프랑스 지방을 침략했을 때에 드루이드 집단을 진압했다.
로마 제국의 침략에 저항하던 유럽 사람들은 은밀하게 극소수가 드루이드를 따르고 있었고, 기독교가 전 지역으로 전파된 이후에는 현저히 약화됐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는 여전히 민간종교로 남아있다가 17세기에 다시 살아났다. (Ronald Hutton, The Druids, London: Hambledon Continuum, 2007).
맨처음 5월 13일에 기념예식을 거행한 이유는 판테온 건물을 재단장해서 교회의 예배용으로 헌당식을 했던 날이 불과 했었다. 그 날은 신약성경에 나오는 어떤 사건과도 관련이 없다. 예수님의 생애와 초대교회의 사건들과도 전혀 상관이 없는 날이다.
교황 그레고리 4세가 황제의 정치력을 활용해서 유럽 전지역 성당마다 11월 1일에 만성절 예식을 거행하도록 조치한 것이다. 바로 이교도의 축제를 성당에 끌어들여서 자신의 통치와 영향력을 증대시키려고, 새롭고 인기있는 날에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프로그램도 극적으로 개발했으니, 그야말로 그의 의도는 대성공을 거뒀다. 11월 1일에 성당에 찾아오는 자들이 폭증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레고리 4세는 만성절이라는 거룩한 행사를 11월 1일에 개최하므로써 세속적으로 살아가던 이교도들과 야만인들을 구출해 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 날에 교회행사가 전혀 없다고 하면, 성당에 나오던 사람들조차도 거의 다 드루이드를 따라서 이교도 축제에 참가했을 것이다. 지금도 인기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은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간으로 옮겨서 더 많은 시청율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다. 상업적인 방송들은 인기프로그램을 통해서 더 많은 광고수입과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혈안이 되어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