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입, 대변여눌(大辯如訥) 되길"
춘추시대 초나라의 철학자로 알려진 노자(老子, 571 BC)는 "참으로 곧은 것은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고, 참으로 교묘한 것은 치졸한 것처럼 보이며, 참된 웅변은 어눌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일갈한 바 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지식도 많고 말도 잘한다는 데 있다. 오죽하면, 말 잘하는 사람에게 "목사인 줄 알았다"라고 까지 한다. 그런데 컨텐츠도, 의미도 없는 속되고 치졸한 내용들이 가득 차 있다.
말도 잘하고 행동도 (성경적으로) 따라가는 신자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만 잘하는 데서 그친다는데 세상에서 점수를 다 까먹고(?) 만다. 자신만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욕을 보인다는 데까지 간다. 사도 바울도 엘리트 교회인 고린도 교회에 "전도의 미련한 것(The foolishness of preaching)"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각설하고, 그가 하고 싶은 내용은 아무말 대 하면서 관계를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일차적으로는 복음의 내용과 의미를 포함해야 하는 '케리그마(κῆρυγμα)' 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원의 의미를 선포하는 것을 염두하고 말한 것이었다.
최근에 필자가 사는 도시에 어느 선교사님이 방문차 오셨다가 한국 가게에서 경험한 희한한 전도의 썰(?)을 전해준 바 있다. 그 가게의 주인장으로 보이는 그는 묻지도 않은 중앙아시아까지 갔다 온 선교사라며 소개하고 선뜻 교회 주보를 건네며 자기네 교회로 출석한다면 물건을 대폭 싸게 줄 터인데 그렇지 않으면 돈을 더 내야 한다는 얄궂은 말장난 전도였다고 한다. 심지어 특정 교회와 목사들을 서슴지 않고 디스(disrespect) 하면서 물건값과 교회 광고를 하는 모습에 정신없이 가게를 탈출(?)했다는 이야기였다. 이쯤되면 그 주인장의 행태는 소위 '막장 교회팔이' 수준을 넘지 못한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고,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인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전도의 내용이다. 복음 전도가 물건값 흥정하면서 내뱉는 교회 세일즈 차원은 더욱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베드로는 오순절에 성령 받고 난 후 변화되어서 그가 한번 설교하면 3천 명이 변화되어 성령 받고 예수 믿기로 작정했던 이야기는 이미 그 지역에 사도들의 삶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았을 것임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은 그 지역에서 좋은 성도로 소문난 교회였다. 하나님 앞에 이들은 가르치고 배운 대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면서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들의 본이 되었다고 칭찬 듣고 있다(살전1:1-2). 그리스도 안에서 잘 살면 적어도 그 지역에서는 그 자체가 복음이 되는 것이다. 만고불변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