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드리히 니체의 네 가지 핵심 사상
①신은 죽었다: 자연과학 발달 인한 서구 세속화
②초인: '신 없는 세상'에 대한 무한 긍정과 자유
③영원회귀: 허무함 극복, 현재를 영원처럼 살라
④힘에의 의지: '신 없는 세상' 속 충만한 생명력
평생아카데미(대표 백금산 목사) 2022년 2학기 온라인 강좌 '현대 문화와 성혁명' 최근 네 번째 강좌에서는 "신은 죽었다(Gott ist tot)"는 발언으로 잘 알려진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를 다뤘다.
백금산 목사(예수가족교회)는 '니체와 초인적-예술적 인간'이라는 주제로 니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개혁신학자 칼 트루먼이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학>과 <이상한 신세계>에서 분석한 니체에 대해 소개했다.
백 목사는 "니체 하면 '신은 죽었다'는 말이나 광인(狂人),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을 떠올린다. 사실 니체는 오늘날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읽히고 인기 있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현대 사상의 원류"라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문을 연 사람이자 선구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니체 같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이전 강의에서의 마르크스나 다윈처럼 니체의 56년 생애를 네 시기로 구분했다. 먼저 불과 25세 때 바젤 대학교 교수로 가기까지 공부했던 기간이다. 루터교 목사의 첫째 아들로 5대째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난 니체는 5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10세 때 남동생을 잃으면서 여성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다.
10세 때 대성당 부속 김나지움 5학년에 편입한 뒤 14세 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기숙학교인 술포르타 학교에 입학해 라틴어·헬라어·히브리어 등 고전어와 인문학을 스파르타식으로 배운다. 20세인 1864년 본 대학 신학부에 입학해 고전문헌학자 리츨의 수업을 듣고, 그때쯤 기독교 신앙을 버린다. 대학교 입학 당시만 해도 집안 전통을 따라 목사가 되려고 했지만, 방학 때 집에 가서 부활절 성찬식 참여를 거부해 어머니와 다투고 진로를 신학에서 고전문헌학으로 변경한다.
이듬해 리츨이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기자 따라가는데, 어느 헌책방에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밤낮으로 탐독한 후 철학에 관심을 갖는다. 한동안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철학을 탐구했고, 23세 때는 논문 우수상을 받고 제대 후 25세 때 리츨의 추천으로 스위스 바젤 대학 고전문헌학 객원교수가 된다.
두 번째 단계는 10여 년 간의 바젤 대학 교수 시절(1869-1879)이다. 스위스 최고(最古) 대학으로 4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바젤 대학에서 니체는 1년 만에 정교수가 되고, 여기서 첫 작품인 <비극의 탄생>을 쓴다. 29-30세 때 <반시대적 고찰>, 34세 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을 쓴다. 니체는 바젤 대학 부임 후 아버지 뻘인 작곡가 바그너와 친해져 의기투합했는데, 34세 때쯤 결별하고 쇼펜하우어도 버리면서 정신적으로 독립해 고유의 사상을 펼칠 준비를 마친다.
당시 니체는 종합병원이라고 할 정도로 몸 곳곳이 안 좋았기에, 35세에 교수 직을 내려놓고 10여 년 간(1879-1889)의 방랑을 시작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스위스 휴양지로, 겨울에는 따뜻한 지중해 휴양지로 계속 돌아다닌다. 이때 오전 11시부터 오후에 4-5시까지 하루 대여섯 시간에서 많으면 8시간 정도를 걸으면서 생각에 빠졌는데, 매일 숙소에 돌아와 오후 11시까지 이를 메모했다가 옮겨 적는다.
백금산 목사는 "니체는 글을 발로 썼다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에게 걷는 시간은 곧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35세 때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2권을 시작으로 37세 때 <아침놀>을 썼다"며 "특히 37세 때인 1881년 8월 초순 가장 중요한 체험을 했다. 스위스 질스 마리아 질바플라나 호수 부근에서 산책하다 피라미드처럼 생긴 나무 밑에서 '영원회귀' 사상에 사로잡힌다. 이는 사도 바울의 다메색 체험이나 루터의 탑 체험에 비견될 정도의 '철학적 회심'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니체는 '영원회귀' 사상에 압도당했고, 이를 기반으로 38세 때 <즐거운 학문>, 41세(1883)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4부까지 출간하고 <힘에의 의지(모든 가치의 전도)>를 구상했다. 42세 때 <선악의 저편>, 43세 때 <도덕의 계보>에 이어 44세 때 <힘에의 의지> 집필을 포기하는 대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우상의 황혼>, <안티크리스트>, <이 사람을 보라>, <디오니소스 송가>, <니체 대 바그너: 어느 심리학자의 문서> 등 6권을 집필했다.
대부분의 저서를 집필한 니체 인생의 3기인 방랑 시절이 끝나고, 46세 때인 1889년 1월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마부가 채찍으로 때리던 말을 안고 울다 졸도한다. 광기가 발작을 시작한 것이다. 신학자 친구가 와서 그를 바젤 대학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데, 이 소식을 듣고 니체 어머니가 와서 예나 대학 정신병원으로 옮겼다가 어릴 때 살던 집으로 그를 데려간다. 어머니는 집에서 정신 나간 아들을 7년 정도 돌보다 죽는다.
니체는 판단력도 마비되고 말도 거의 못하는 등 식물인간처럼 마지막 11년을 살아가는데, 어머니가 7년을 돌보다 죽자 여동생이 바이마르로 옮겨 그를 죽을 때까지 돌본다. 니체의 여동생은 그와 애증의 관계였는데, 어릴 때 썼던 편지부터 남겨놓은 원고 등을 모아 어머니 집에 '니체 문서보관소'를 설치했다. 이후 바이마르로 문서보관소도 옮기면서 '니체 전집' 편찬 계획을 세웠다. 니체는 56세 때인 1900년 8월 25일 바이마르에서 눈을 감았다. 국내에서는 '니체 전집'이 그의 사후 100주년인 2000년부터 5년간 발간됐다.
백금산 목사는 "니체의 사상을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는, 방랑 시절 '생각의 실험실·발전소'라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이를 매일같이 메모로 남겨 분량이 많기 때문이다. 인간과 관련된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짧지만 많은 언급들을 했다. 그리고 논리적 글쓰기가 아니라 비유와 상징들로 가득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며 "그래서 니체에게는 귀족주의부터 보수주의, 자유주의, 급진적 민주주의 등 이 극단에서 저 극단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입체적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니체를 읽고 자기가 원하는 부분만 떼어 니체의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백금산 목사. ⓒRnR 제공 |
이에 백 목사는 니체 연구서들을 근거해 니체의 핵심 사상들을 몇 가지 뽑아 정리했다. 먼저 '신의 죽음'이다. 그는 "'신이 죽었다'는 말은 <즐거운 학문> 108번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 나온다. 이는 단순한 무신론보다 다양한 의미가 있다"며 "일단 기독교 문화권이니 기독교의 신은 죽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시간 기독교 사회였던 서구 사회에서 자연과학 발달로 더 이상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된 모습 자체를 말한 것이다. 한 마디로 세속화됐다는 말로, 당시 시대정신을 포착한 것"이라고 밝혔다.
백 목사는 "두 번째로 기독교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불변하시고 초월적인 분으로 그분의 말씀이 절대 진리·윤리·가치가 된다. 그런 보편타당한 진리와 도덕, 가치와 질서와 의미 등이 무너졌다는 말"이라며 "인생의 의미나 목적 등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로써 허무주의의 도래를 불러오고, 이분법적·이원론적·형이상학적 세계관도 무너지게 된다.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의 이원론, 철학적으로는 플라톤의 형이상학적 이원론이 무너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그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니체는 그러면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 여기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 방향을 설정하는 말이 '초인(Ubermensch·위버멘쉬)'"이라며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서문에서 차라투스트라가 산에서 10년 간 명상하다 하산해서 가장 먼저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고 했다. 그 뒤가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는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이다. 여기서 위버멘쉬라는 말이 '자기 자신을 극복한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또 "초인이란 상당히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신이 죽은 사회'에서 니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인간이다. 진리와 도덕 등이 무너진 상태에서 스스로 의미와 목적을 만들어내고 인생을 보람 있고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이라며 "초인은 두뇌나 육체가 초능력자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입법자로 살아가는, 주인정신과 자유인의 인간이다. 신 없는 세상에서 허무주의에 빠져 염세주의로 살아가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긍정적으로 자기가 주인이자 자유인이 되어 창조자나 예술가처럼 살아가는 인간을 가리킨다"고 이야기했다.
이와 함께 "초인은 이 세상을 무한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이다. 다른 말로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을 사랑하라는 니체의 유명한 표어이다. 흔히 운명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면, 고난과 고통을 체념하듯 받아들이는데, 초인은 고통과 고난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긍정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며 "무슨 일이 생겨도 세상을 무한 긍정·사랑하면서 살 수 있는 인간이 초인이다. 이는 적극적 허무주의로 무시무시한 개념"이라고 했다.
그는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런 인간이 가장 무섭다. 하나님 없이도 불편이나 허무를 느끼지 않는다. 스스로 부자가 되어 인생이 재미있다고 무한 긍정하며 살아가기 때문"이라며 "이런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그런 초인을 부정하기 때문에 적이 된다"고 덧붙였다.
영원회귀에 대해선 "표면적으로는 '동일한 것이 영원히 반복된다'는 말인데, 단순히 순환적 시간관념을 넘어선다. 니체는 과학 책을 많이 읽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알았기에, 초월적인 세상은 없고 이 세상 모든 에너지가 바뀔 뿐이라고 여겼다. 공간은 한정돼 있는데, 시간은 무한해진 것"이라며 "니체의 영원회귀는 이런 우주론·존재론을 넘어 윤리적·실존적 의미가 붙는다. 제한된 공간 속에 영원한 시간이 있기에,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인생관을 갖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백 목사는 "그러므로 앞서 나온 '초인'은 이 영원회귀 사상에 입각해 사는 사람이 된다. 현재에 있는 모든 것 가운데 뺄 것이 하나도 없어진다. 모든 것을 무한 긍정하며 살기 때문"이라며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의 핵심은 현재 생활을 적극적·긍정적으로 사랑하면서, 이 순간이 언제든지 반복되니 현재를 영원처럼 살아가라는 강력한 실존적·실천적·실용적·윤리적 개념이다. 결국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사상"이라고 정리했다.
마지막 사상으로 '힘에의 의지'가 있다. 그는 "이 세상은 바로 생명력의 의지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달리 말해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의 힘을 고양시키고 강화시킨다. 때문에 서로 투쟁도 하고 산다는 것"이라며 "이 세상이 고정불변하지 않고, 생성하고 변화한다는 생성과 운동과 변화라는 세계관을 갖는 것"이라고 전했다.
백금산 목사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영원히 무한하고 불변하는 분으로 믿는데, 니체에게는 초월도 불변도 없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생성과 소멸, 변화를 계속하기에, 그 안의 모든 존재물들은 자신을 확대·고양·강화시키려는 욕망을 갖는다"며 "쉽게 설명하자면 생명력의 충만함에 대한 의지, 생의 의지와 비슷하다. 다시 말해 니체의 생성적 존재론을 가리킨다"고 했다.
백 목사는 "결국 ①신은 죽었다 ②초인 ③영원회귀 ④힘에의 의지 등 네 가지는 모두 서로 연결되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힘에의 의지도, 영원회귀도 없다.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했다 종말로 완성시키시기 때문"이라며 "초인이란 기독교에서 죄인이고 악인이다. 하나님 없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려는 사람이 성경적으로는 죄인이고 악인이고 어리석은 자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니체는 모든 가치의 전도, 지금까지 하나님이 있다고 가정한 종교와 철학, 윤리와 예술, 사회질서와 모든 가치를 전도시키는 것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이라며 "1960년대 이후 '니체 르네상스'라고 해서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와 포스트 구조주의라 부르는 현대 프랑스 철학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철학 외에 문학과 예술 중에서도 음악·미술·춤, 건축에도 영향을 미치고, 다른 분야들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칼 트루먼의 <신좌파의 성혁명과 성정치화>, <이상한 신세계>. |
이후에는 니체에 대한 평가를 전했다. 그는 "니체 추종자들은 당연히 니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특히 현대 사상과 문화의 출입문으로서, 현대의 정신을 만든 현대 정신의 대변자로 평가한다"며 "그러나 기독교인 입장에서 제가 평가하자면, 니체는 반성경적이고 반기독교적 인물로 최강의 무신론자이자 기독교 적대자, 기독교에 대한 가장 호전적이고 전투적이고 악의적인 반기독교주의자"라고 단언했다.
백금산 목사는 "니체가 기독교 신앙을 버린 이유가 두 가지 같다. 하나는 시대정신으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비롯해 유물론을 기본적으로 받아들였다. 천사나 천국, 악마나 지옥 같은 초월적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기독교는 초월적이고 영원하고 무한하고 불변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니체의 생각과 정반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기독교는 이 세상 최악의 종교이자 악 중의 악이었다"고 했다.
두 번째로 "니체의 기독교는 자유주의 신학이었다. 정통 기독교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당시 독일에서 유행하던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가 달랐다"며 "역사적 예수는 그냥 인간일 뿐인데, 후대 제자들이 하나님이라고 믿게 됐다는 것이다. 정통 기독교를 가장 악랄하고 과격하게 공격한 사람이 니체였다. 그의 저서 제목 '이 사람을 보라'부터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했던 말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백 목사는 "니체는 예수님이 아닌 자기 자신이 진리고 길이었다. 그는 자신을 무신론으로 인도하는 복음전도자라고 했다. 다른 저서 제목인 '안티크리스트'도 성경에서 말한 적 그리스도"라며 "이 책을 마감한 뒤 '이제 모든 가치의 전도, 그리고 기독교는 이날로부터 망했다. 안티크리스트라는 책으로 기독교를 무너뜨린 이 날부터 연도를 계산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호전적으로 적그리스도적 태도를 공개적으로 취한 사람이 바로 니체"라고 우려했다.
그는 "니체가 열어젖힌 현대 사상의 핵심이 상대주의·다원주의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도 마귀도 천사도 지옥도 천국도 인간의 영혼도 없고, 이런 주장을 하는 인간들은 살려두면 안 된다는 것"이라며 "다원주의·상대주의를 주장하면서, 이것은 용납 못한다. 절대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없애야 한다는 절대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목사는 "사도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의 화신이라면, 예수님이 하나님의 성육신이라면, 니체는 마귀의 화신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니체의 다원주의·상대주의가 오늘날 시대정신에 맞다고 떠받들고 있다"며 "그러나 기독교인의 입장에서 니체는 가장 호전적이고 가장 강력한 기독교의 적대적 원수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니체가 예수는 좋지만 기독교는 타락했다고 봤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독교인 입장에서 니체는 스스로 자신을 적그리스도라고 말하고 '나는 인간이 아니라 다이나마이트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로서 파괴자 중 파괴자다. 무엇을 파괴하는가? 모든 서구 가치를 전도하고 자기 식으로 가치를 새롭게 세우겠다'고 했다"며 "그 중심과 기초에는 기독교를 무너뜨리고 파괴하고 기독교의 가치를 부정하려는 것이 있었다. 니체에게 누가 그런 생각을 심었는가"라고 반문했다.
더불어 "이런 니체가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지성인들과 현대 철학·문화에 가장 강력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라며 "니체의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반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니체의 사상을 주목해서 잘 살펴보고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