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중학생 시절 시작해 15년 이어가
벗어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버리지 못해
도망쳐 교회서 생활... 지나간 세월에 울어
여인 보호하는 남자로서 자신에 기쁨 발견
"'너는 동성애자이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말은 이 시대의 가장 큰 가스라이팅이다."
15년 넘게 동성애자로서 살았던 박진권 아이미니스트리 대표(탈동성애자 모임)의 호소다.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감염인이기도 한 그는 1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동성 성행위에 대한 의·과학적 고찰과 제언' 포럼에 참여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동성애의 폐해를 전하고 미디어의 무책임을 지적했다. 이 포럼은 윤상현 국회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교회반동성애교단연합이 주관했다.
박 대표는 "숨어 지내고 싶은 한 명의 탈동성애자이자, 지금은 많은 스트레스 속에 육아를 담당하는 두 아이의 아빠"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는 "교회나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들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저는 그 누구보다 동성애자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울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동성에 대한 감정을 느꼈다는 그는, 중학생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동성애의 길에 들어섰다.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했지만 동성애자로서 죄책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저 감추고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스무 살이 되던 여름 마음에 큰 찔림이 왔고, 자유롭고 홀가분한 자신이 되고 싶어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친구들은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1년 뒤 가족들에게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들켰다. 온 가족이 놀랐고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동성애자로서의 생활을 계속했다. 그는 "벗어나야 한다고,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활을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시한부 말기암 선고를 받았다. '나 때문일 수 있다'는 자책감이 밀려 왔다. 즉시 사귀던 남성과 헤어졌다. 그는 "내가 동성애자로서의 생활을 끝내면 아버지가 다시 건강해질까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인생이 끝난 것만 같아, 밤새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고 남자들을 찾아 관계를 맺고 방탕한 삶에 자신을 내던졌다.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지만 이런저런 직장을 전전했다. 교회 음악을 전공하고 음악을 하며 살고 싶었지만, 삶은 너무도 무너져 있었다. 누군가 그에게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을 맡길 때만 살아 있다고 느꼈다고 한다.
2년이 흐른 2010년, 남자친구가 운영하던 DVD방에서 일하던 중, 아이티와 칠레의 지진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그는 "나도 언젠가 저렇게 죽을 텐데 이렇게 살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제서야 다시 돌아가지 않을 작정을 했다"고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그를 아는 목회자가 전화를 걸어 왔다. "진권아, 이제 돌아올 때가 됐다."
그날로 DVD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의 남자친구는 떠나는 그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그 말들이 마치 끌어당기는 손처럼 나를 쫒아올 것만 같아 더 열심히 도망쳤다"고 했다.
짐을 싸서 그 목회자가 있는 교회로 찾아갔다. 저녁 집회에서 하염없이 울었다. 동성애자로 살았던 지난 15년간의 삶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간의 삶의 무게와 죄책감,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가 모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교회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불러 주기만 하면 어디서든 연주했다. 안내지 접기 등의 일을 도우며 그를 용납해 주는 목회자의 돌봄 아래서 지내는 생활이 즐거웠다. 때때로 동성애적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점점 이겨나가고 있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 붙잡아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안전하고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다.
시간이 지나 여자친구가 사귀고 싶어졌고 결혼도 하고 싶어졌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같은 교회의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만났다. 탈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렸지만, 별로 놀라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게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동성 상대에서만 만족을 얻었던 그였기에, 그의 몸은 이성과의 관계를 낯설어했다. 그는 "서로 믿고 기다리며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었고, 그것은 동성과의 관계에서 느꼈던 후회와 허탈감, 죄책감보다 훨씬 편안하고 자연스러웠다. 여인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남자로서의 자신을 즐거워하는, 남자다운 나로 회복되고 있었다"고 전했다.
학창시절, '에이즈와 동성애의 관계성' 듣지 못해
소아성애·마조히스트 등 변태성욕에 상당수 노출
매번 다른 상대 찾아야 하는 일시적 성행위 많아
상당수 선천적이지 않아... 학습으로 시작되기도
미화시키는 미디어도 문제... 의학적 위험 알려야
▲박진권 아이미니스트리 대표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을 펼치는 모습. ⓒCE인권위원회 제공 |
85년생인 그는 "제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때는 동성애와 에이즈의 상관관계를 알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동성 성관계가 에이즈에 위험하다는 생각을 들지 않게끔 만드는 분위기가 상당했다"며 "최근 상담 중 에이즈 우려 때문에 동성 성행위를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우리의 외침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그는 "많은 동성애자들은 피임기구를 사용하는 것을 싫어한다. 또한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다. 50대의 아저씨와 10대가 만나는 소아성애와 같은 관계도 많고, 때려야 성욕이 채워지는 마조히스트 같은 변태성욕에 많이 노출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일반적 부부들은 사랑에 기반한 성행위를 하지만, 동성 간 성행위의 상당수는 그렇지 않다. 적지 않은 이들이 변태적 성행위에 노출돼 있는 것을 많이 경험했다. 또한 한번 관계를 맺으면 마음이 식는 일시적인 성행위가 많아, 매번 다른 상대를 찾아야 하는 구조에 놓여 있기도 하다"고 했다.
또 "제가 만난 사람 중에는 결혼한 사람도 아주 많았다. 외도이고 불륜인데, 이 사람들이 남자와 결혼했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남녀 간의 결혼 상대가 있고 자녀가 있음에도 몰래 남자와 외도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것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들도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동성애가 학습에 따른 경우가 많다며 "동성애자들은 통성명을 할 때 '몇년차예요?'라는 질문을 한다. 언제부터 동성애를 시작했느냐는 뜻으로, 선천적이지 않은 어느 기준점이 있다는 말"이라며 "저는 어린 나이에 그런 경험을 했다.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동성애를 미화시켜 너무 따라하고 싶어지는데, 적어도 에이즈와 동성애의 상관성을 설명해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동성애는 너무 위험한 것이고, 학습되는 것이며, 스스로 거절할 수 있는 것인데, 요즘 '인권'의 흐름을 업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야기하기에 많은 동성애 피해자가 생긴다"며 "저희 둘째아이도 갑자기 어디서 들었는지 '나 여자 될까'라고 하더라. 농담이었겠지만, 어린아이에게도 그런 생각을 집어넣을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박 대표는 "동성애자들은 인권을 외치며 정체성을 자랑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누가 동성애자가 되고 싶어서 됐느냐'고들 한다. 동성애를 막도록 하는 것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며 "보편적·의학적·과학적 고증을 통해 동성애가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을 초래할 수 있음을 알려 주는 것이 진정 그들의 인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에이즈 감염인인 그는 "에이즈에 감염되고 3년을 자살만 생각했다. 감염인이 되는 것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제가 자녀까지 출산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라며 "제가 누리는 복을 많은 동성애자들에게 나누고 싶다. '너는 동성애자이니 그냥 그렇게 살아라'는 것은 이 시대의 가장 큰 가스라이팅"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포럼에는 한국가족보건협회 김지연 대표, 민성길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 명예교수, 김준명 연세대 의과대학 감염내과 명예교수 등이 함께 발제자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