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스스로 영혼 문제 해결 못함 알려주는 영화
영적 실상 앞에서 겸허한 태도 갖도록 권고 효과
<곡성>과 <랑종>, 기독교와 무속 경계 흐려버려
성경, 귀신들림 문제 하나님 능력으로 해결 강조

◈기독교와 영적 실상: 성경 속 귀신들림과 무속의 귀신들림

신약성서를 기록한 이들, 특히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복음서와 사도행전 기자들은 귀신을 비롯한 영적 실상을 드러내 밝히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빌립 같은 복음전도자들의 귀신 쫓는 사역을 자주, 반복적으로 기록했다. 그 가운데 몇몇 경우에는 귀신에 붙들린 자의 말과 행동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영화 <곡성>의 감독이자 <랑종>의 시나리오 원안을 기획한 나홍진 감독은 스스로를 기독교 신앙인이라고 자처한다. 물론 통상적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복음적 기독교인의 사고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는 기독교 신앙을 다른 종교들의 믿음과 비교하면서, 서로 상통하는 요소들을 찾아내는데 깊은 관심을 보이는 '개방적' 기독교인이라 할 수 있다. 종교 간 대화 유형으로 보자면 포괄주의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다.

그런 그의 관점에서,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된 귀신 관련 체험들과 무속의 귀신 체험 사이 공통점은 대단히 매혹적인 소재였음에 틀림이 없다. 이런 그의 관심은 <곡성>에서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영(靈) 무명(천우희 분)이 '의심하는 죄'를 언급하고 '닭이 세 번 울기까지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데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또한 악마(쿠니무라 준 분)가 자기 손에 못자국을 보여주며 "영은 살과 뼈가 없으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으니라"를 인용하는 장면에서도 재차 확인된다.

이처럼 <곡성>을 기획할 당시 나홍진 감독은 귀신들림이라는 영적 현상을 바탕으로 기독교 신앙과 무속 체험의 접점을 찾아 양측을 혼합하는 데 주력했고, 이러한 전략은 기괴한 영적 실상에 관심이 있는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데 주효하게 작용했다.

곡성 쿠니무라 준 악마
▲영화 <곡성>의 악마(쿠니무라 준 분). 작중에서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다.

영화 <랑종>은 비록 불교국가인 태국의 무속을 다루고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곡성>보다도 더 성경 속 귀신 관련 기록에 가까운 귀신들림의 현상들이 묘사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서 만난 귀신들린 자와 <랑종>의 주인공 밍(나릴야 군몽콘켓 분)의 귀신들린 상태가 매우 흡사하다.

거라사 지방의 정신이 온전치 못했던 자에게는 군대, 즉 많은 귀신이 한꺼번에 들어가 있었다(눅 8:26-39). <랑종>의 주인공 밍에게는 '피 따이탕끌롬', '피뻡', '피 낭타니' 등 온갖 '피(태국 말로 죽은 이의 영을 가리키는 말)'들이 들어가, 그녀의 정신과 몸을 한꺼번에 망가뜨린다.

양측 모두 수시로 귀신에게 붙들려 자기 몸의 지배권을 잃은 채 극단적 폭력성과 자기파괴적 성향을 드러낸다. 성경에 묘사된 귀신들린 자와 <랑종>의 주인공 밍은 이처럼 매우 유사한 귀신들림의 현상적 요소들을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와 무속: 서로 다른 영적 원리에 따른 귀신들림의 이해

'밍'이라는 캐릭터가 귀신들린 모습을 살펴보면, 나홍진 감독은 물론이거니와 <랑종>을 직접 감독한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 역시 태국의 무속에 관련된 영적 실상과 체험들을 상당히 성실하게 조사하고 영화에 반영한 것으로 추측된다.

영화 <랑종>의 귀신들림에 관한 묘사 가운데 여러 부분이 성경의 귀신들림에 관한 기록과 일맥상통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는 반종 감독이 사전조사 당시 여러 랑종들(무당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체험한 내용들, 과장되지 않은 현상적 사실들 그대로를 영화에 담아내려 했던 노력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분명 페이크 다큐 형식을 차용하고 있지만, 몇몇 부분에서는 거의 실제 다큐멘터리나 다름없을 정도로 사실적인 내용들을 전달하고 있다.

랑종
▲영화 <랑종>의 무당 님(싸와니 우툼마). 악귀를 쫓기 위해 주술적 의식을 행하는 장면.

<랑종>의 이런 사실적 요소들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영혼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알려줌으로써, 영적 실상 앞에서 겸허한 태도를 가지도록 권고하는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목격되는 귀신들림의 현상 이면에 어떠한 영적 원리가 자리잡고 있는지에 대해, 기독교와 무속은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 차이는 영적인 저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이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의 해법을 찾아가게 만든다.

영화 <곡성>과 <랑종>은 모두 이러한 차이와 경계를 흐려버린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이나 무속의 주술 모두 기괴하고 파괴적인 영적 체험들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이 종교적 방편을 통해 영혼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시도는 부질없는 것으로 취급된다. 나홍진 감독이 확고하게 붙들고 있는 이러한 주제의식에 따라, <곡성>과 <랑종> 두 작품 모두는 귀신을 둘러싼 영적 실상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와 무속의 이해를 이리저리 뒤섞어 버린다.

무속은 귀신들림이라는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취급한다. 그래서 '용한' 무당을 찾고, 온갖 의식을 행하며, 수많은 금기사항을 지시한다. 그렇게 해서도 귀신들림 증상이 완화되지 않아 자주 사달이 나곤 한다.

영화 <곡성>과 <랑종>은 이런 무속의 실태를 귀신들림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에도 그대로 투영한다.

성경은 영적 원리상 귀신들림 문제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능히 해결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여기에는 무속의 굿과 같은 주술적인 의식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간과한 채 교회에서 귀신들림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과 무속에서 귀신들림을 이해하고 해결하는 방식에 별 차이가 없다는 나홍진 식 메시지는 오해와 왜곡의 산물이다.

랑종
▲영화 <랑종>이 보여주는 귀신들림에 대한 이해는 결국 무속의 관점에서 기독교적 영적 이해를 비트는 접근 방식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홍진 감독이 파악한 귀신들림의 실상은, 물론 현상적으로 실제적인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엄연한 한계를 보인다. 그는 무속에서 바라본 깊이까지만 들여다보고 있다. 그리하여 성경에 기록된 귀신들림과 그 해결책을 무속의 현상적 체험을 기반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애초 심층적인 영적 원리가 전혀 다른 두 영역의 믿음과 이해방식을 임의적으로 하나로 혼합하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곡성>과 <랑종> 모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모호성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런 모호성은 영화를 즐기는 이들에게는 해석의 여지를 넓혀주는 방식으로 즐거움을 선사할지 모르나, 기독교 신앙의 입장에서는 영적 실상에 대해 다소 무책임하게 접근하는 방식에 불과하다.

<곡성>과 마찬가지로 <랑종> 역시 서로 다른 믿음의 내용과 요소들을 과격하게 동일시하는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종교혼합주의를 추종한다. 이는 각 종교의 고유성, 특히 기독교 신앙의 고유성을 침해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