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효 목사
장재효 목사(서울 성은교회)

(본문)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율법으로 이스라엘을 다스려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에게 그 후손을 통하여 메시아를 보내실 것과 그 메시아가 오심으로 구원 얻을 대상들이 되게 하시는 표시로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할례는 남자가 태어나면 8일 만에 행하는 것으로 육체에 있는 할례의 표시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대상이라는 표식이었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지만 구약시대 이스라엘은 정신적으로 생활에 지나친 중압감같은 제제를 가한다는 생각으로 상당히 불편하게 생각했고 부담스럽게 느껴왔던게 사실입니다. 그 이후 사도바울이 소개하는 율법의 역할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었습니다. 몽학이란 깨우쳐서 배우게 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향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은 큰 돌로 성벽을 쌓았습니다. 성문이 여러 개 있는데 그중에는 사람이 다니는 문이 있고 가축이 다니는 문이 따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양을 사다가 제사장에게 갖다 주며 속죄제를 드려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안에는 양을 파는 양시장이 있었는데 양은 사람들이 다니는 문으로 다니지 않고 따로 양이 드나드는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을 양문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 성안 양문 안에 들어서면 조그만 저수지가 둘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행각이 있었는데 그 행각은 도로 양쪽에 기둥을 세워 지붕을 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예루살렘 바깥 뜰에도 이런 행각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못가에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그 행각은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와서 질문을 하면 가르쳐주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판치는 곳이었습니다. 그 베데스다 못가 행각아래 온갖 병자들이 누워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베데스다의 기적을 체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율법시대에도 하나님의 은혜는 끊임없이 계속 되어지는 증거가 베데스다의 역사였습니다. 본문 4절에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용천이라 합니다. 솟아나는 샘이라는 뜻입니다. 이때 어떤 병에 걸린 사람이든지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나음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가 베데스다 못에 가셨습니다. 그곳 행각아래에는 많은 병자들이 행운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곳에 병을 앓은 지 38년이나 된 사람을 보시고 낫기를 원하는지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무언가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병자의 대답은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합니다.

이 병자는 상당히 대인 의존적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어서 이 병이 낫지 못하고 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누가 이끌어 주어야 가까스로 믿어보려고 움직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은혜받기 위한 열심을 갖지 못합니다. 의지도 결단도 없습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무언가를 기대하고, 누군가를 의지하는 이런 태도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 앞에 소망을 얻어야겠다고 깨달아지면 열심히 기도회도 참석하고 예배시간마다 빠짐없이 참여하며 말씀 듣고 철저히 회개함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해결받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이 우리 모두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타인 의존적인 신앙은 믿음이 자라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직접 연결되지 못하기 때문에 깨닫지 못합니다.

병자의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십니다. 이젠 베데스다 못이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따라 그 병자는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38년된 병자를 말씀의 권능으로 고치신 이후 천사가 내려와 베데스다 연못을 뒤집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 시간부터 율법시대의 은혜는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으로 말미암은 영원한 은혜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이런 기점을 삼아 예수님이 증거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베데스다 연못의 역할은 예수님과 교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유대인과 온 지구상에 태어나서 살아갈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은혜를 기대할 수 있고 영적 구원과 육체의 치유, 그리고 회복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절이후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람이 38년 동안 병을 앓게 된 동기는 죄값의 결과였던 것입니다. 그 인생의 죄 값으로 38년 동안 죽지 못해 병고에 시달리며 앓아왔던 그 질병을 말씀의 권능으로 고쳐 주셨다는 것은 그 인생의 죄 문제를 예수님이 거두어 정리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려면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신 은혜를 믿고 예수님의 능력에 의해서 여러분의 묵은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죄 값으로 시달리는 복잡한 문제들에서 벗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복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베데스다 못물을 통하여 하나님이 구약시대에 계속해서 베풀어 오셨던 자비의 치료는 이제 예수님과 교체시키면서 끝이 나고 이제부터는 예수님만 통하여 영육간의 구원도 치유도, 회복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못을 지나서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믿어지는 그분을 통하여 기도함으로 영육간에 구원을 받고 치료도 받고 해결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는 의존적 신앙을 벗어버리고 직접 예수님께 부르짖고 매달려 보시기 바랍니다. 분명 예수님은 그 사람을 만나 주실 것이고 우리의 모든 어려움들이 즉시 해결받을 줄 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