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지난 5월 24일 한국기독교학술원 제57회 세미나에서 이상규 박사(백석대 석좌교수)가 발표한 '코로나 환경에서의 국가와 교회'를 시리즈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3. 국가와 교회: 국가기관의 종교 집회 제한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국가기관이 종교의 자유에 속하는 예배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금지할 수 있는가? 이 점을 교회사를 참고하여 검토하되, 교회와 국가 간의 양자 관계를 통해서, 그리고 정교분리론의 관점에서, 마지막으로 저항권의 관점에서 검토해 보고자 한다.
1) 국가와 교회의 관계
교회와 국가, 혹은 국가와 교회 간의 문제는 오랜 역사를 지닌 난해한 문제였다. 지난 2천년간 세속권(Regnum)과 교황권(Sacerdotium)은 타협과 제휴, 갈등과 대립을 겪으면서 고심했고 결과적으로 네 가지 형태의 교회-국가 간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첫째는 국가와 교회의 통합론(unity)인데, 국가와 교회의 경계가 허물어진 속화된 크리스텐덤(christendom)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형태는 4세기 이후의 국가와 교회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교회가 국가의 상호 결합되어 있어 교회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못했다.
이런 형태를 강력하게 반대한 그룹이 16세기 재세례파였다. 이런 형태는 교회를 속화시키고 참된 교회가 되지 못하게 하는 형태인 동시에 국가도 본래의 신적 기원에서 이탈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교회와 국가의 배타적 분리론(total separation)인데,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주장하는 입장이다. 첫 번째의 경우와 정반대 입장인데, 초기 기독교회 혹은 16세기 재세례파의 입장이었다.
세속 정부와 교회는 별개의 기원을 가지며, 세속 정부가 영적인 일에, 반대로 교회가 세속적인 일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국가 정치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국가가 교회 문제에 개입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국가 정치에 대한 교회의 무관심을 의미하며, 정치적 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셋째는 교회 우선주의 혹은 교회 지상주의(clericalism)인데, 이것은 국가를 교회의 일부로 보고 국가에 대한 교회의 우위를 주장한다. 즉 교회가 국가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서 이를 교황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중세교회의 입장이었고, 로마가톨릭의 견해였다. 예수께서 첫 교황이라고 간주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으므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은 영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세속 영역에서도 통치권이 주어졌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교회가 시민사회에서도 권위(civil authority)를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넷째는 국가 지상주의(erastianism)인데, 교회를 국가의 일부로 보고 국가가 교회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에라스티안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스위스의 철학자 에라스투스(Thomas Erastus, 1524-1583)의 견해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은 세속 황제가 기독교의 수장보다 상위의 권위를 가지므로, 종교 문제에 대해서도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교황주의(皇帝敎皇主義, caesaropapism)와 같은 입장이다.
앞의 두 상반된 입장은 교회-국가 간의 거듭된 권력욕에 노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제도가 아니라는 점이 인정되어 왔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국가의 우위를 주장하며, 국가가 교회 문제에 개입하거나 간섭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교회(성공회)가 이런 입장을 따랐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4가지 유형은 국가와 교회 간의 이상적인 관계로 볼 수 없었으므로,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국가와 교회에 대한 바른 관계를 규정하려고 힘썼다. 그것은 교회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지만 국가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보았다.
그 결과 개혁자들은 각기 자신의 교회-국가관을 피력했는데, 루터나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 간에 작은 차이가 있지만 다 같이 인정하는 바는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교회와 국가는 하나님이 내신 기관이지만, 각기 다른 기능과 역할을 감당하는 신적 기관이라는 점이었다.
둘째, 국가도 하나님이 내신 선한 기관이며, 국가 기관의 위정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대리자로 보아 하나님이 주신 직무를 수행해야 하고, 백성들은 순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는 국가기관의 사명 혹은 역할을 규정했는데, 국가는 참된 종교와 종교생활을 공적으로 보존하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좀 더 부연하면, 루터는 '두 왕국론'을 말하면서 두 기관의 기능과 목적을 지나치게 구분하여 오른손 왕국은 오직 그리스도인들만 관련되고, 왼손 왕국은 오직 불신자들에게만 관련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 왕국의 기능적 차이를 말한 것이다.
루터는 왼쪽 왕국, 곧 국가는 평화를 유지하고 죄를 벌하고 악인을 견제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보았다.
칼빈은 루터와 마찬가지로 '두 왕국(duplex... regimen)' 개념에 근거하여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를 이해했는데, 영적인 정부인 교회는 물론이지만 세속적인 정부인 국가도 하나님이 세우셨다고 보았다.
하나님이 세우신 세속적 정부는 두 가지 기능을 지니는데, 첫째는 참된 종교를 보호하고 하나님의 의를 증진 시키는 일이며, 둘째는 백성의 복지를 도모하고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시민정부의 목적은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드리는 외적인 예배를 지원하고 보호하며 경건에 대한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위치를 변호하며 우리의 삶을 사람들의 사회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시민적 관습을 시민적 의에 따라서 형성하며, 우리들 서로 간에 화목하게 하며, 공공의 화평과 평안을 육성하는 데 있다(『기독교 강요』, 4.20.2)."
즉 정부는 하나님에 대한 외적인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보호해 주며 경건한 교리와 교회를 방어하고 ... 평화와 안정을 진작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정부의 기능은 "참된 종교를 공적으로 보존케 하며, 인간성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인식이 17세기 이후 근대적 의미의 국가-교회 간의 관계, 곧 국가의 교회 지배권을 인정하지 않는 근대 사회개념을 형성하게 되었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폭넓게 법제화되었다.
종교의 자유는 시민이 권리(Bürgerrecht)이기 전에 인간의 권리(Menschenrecht)로 간주되었고, 종교의 자유라고 말할 때 이 말은 두 가지를 포괄하는데, 신앙의 자유(Glaubensfreiheit)와 종교 행위의 자유(Religionsausübungsfreiheit)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신앙의 자유'란 구체적으로 어떤 종교를 신봉하거나 그 종교를 변경하거나 모든 종교를 신봉하지 않을 자유를 포함하며, 자신의 신앙을 공적으로 고백하거나 자기의 신앙에 대하여 침묵할 자유를 포함한다.
그리고 '종교 행위의 자유'란 종교적 행사의 자유, 종교적 집회, 결사의 자유, 종교교육의 자유, 전도 혹은 선교의 자유 등으로 세분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독일의 법학자 콘라드 헤세(Konrad Hesse, 1919-2005)는 신앙의 자유, 예배의 자유, 종교적 결사의 자유를 종교적 자유의 본질적 요소라고 말한 것이다.
이상과 같은 개혁교회 전통과 서구사회의 역사에서 볼 때, 국가 권력이 신교(信敎)의 자유나 신앙 행위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다 할 수 없다.
교회의 예배나 집회는 교회의 권세에 속한 영역이고, 신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권세에 속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는 원칙에 따라, 예배 모임에 대한 국가의 명령에 대해서는 복종할 의무가 없다.
그런데 국가의 권세에 속한 국민의 생명, 건강 보호의 의무와 교회의 자율권이 충돌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대두된다.
이런 경우 교회의 권세가 우선적으로 적용되어, 원칙적으로 국가가 규제할 수 없다. 다만 사후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매우 제한적인 국가의 개입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국가와 가정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교육 제도를 수립하고 학교를 세우는 일은 국가의 의무라고 할 수 있지만, 국가는 부모의 자녀 양육이나 가정사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가정이라는 영역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동 학대 등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국가가 개입할 수 있다.
개인 가정의 일이나 교회의 일에 대한 국가 권력의 과도한 개입은 사적 자유 혹은 종교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예배나 집회에 대해서는 국가는 규제할 수 없으며 교회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다. 다만 교회에서 공공의 이익이나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에는 필요한 최소한도의 개입은 인정된다고 할 수 있다.
또 교회는 자신의 관할 영역인 예배 모임의 시행 여부를 국가의 판단에 맡겨서는 안 되며, 스스로 합당하게 판단하여 이를 결정하고 실행하여야 한다.
현실적으로 국가 권력기관은 현장 예배의 가치에 대한 신학적 판단을 할 수 없으며, 따라서 예배 모임의 실행 여부를 결정할 자리에 있지 않다. 국가 권력은 교회와 관련된 고유의 가치에 대해 결정할 권세를 위임받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권력이 종교 문제에 개입하거나 침해하는 사례가 있어, 17세기 이후 근대적 의미의 국가-종교(교회) 관의 관계를 규정했는데, 그것이 정교분리론이었다.
이상규 박사
백석대 신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고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