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틴 땅에 정착한 함의 막내아들 가나안(Canaan)
22개 알파벳 페니키아 문자, 주전 11세기 지중해 전파
주전 8세기 헬라·에트루리아 문자 통해 라틴 문자 영향
현재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북쪽 항구도시 '비블로스'
언어와 문자의 기원
언어는 어디서 오고 문자는 어디서 왔을까? 최초 언어는? 성경은 에덴동산에 이미 아담과 하와에게 계시된 언어가 있었다고 기록한다. 그렇다면 성경 토라의 언어(히브리어) 이전에도 문자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렇다. 인류가 지금까지 확인한 가장 오래된 문자와 언어로는 히브리어 이전 수메르의 설형문자(쐐기문자)와 이집트의 상형문자가 있었다. 이 가운데 세계 최초의 문자 발명 증거가 노출된 곳은 고대 수메르 도시 우륵(현재의 Warka; 성경에서는 Erech, 창 10:10)이었다.
물론 이 학문적 성과가 곧바로 최초 언어를 찾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고고학자와 언어학자들이 수고하고 추적해 발견해 낸 현재까지의 결과가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아와 그 가족이 쓰던 언어와 글의 원형이 무엇이고, 그대로 보존되어 왔는지 그 증거는 오늘날 전혀 추적이 가능하지 않다. 바벨탑 언어 혼잡 사건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세 이전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요 이스마엘 후손들 조상도 되는 아브라함이 히브리어를 창시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히브리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살았을 것이 분명하다.
성경적으로 보면 창세기 대홍수 이후 바벨론에서 언어가 혼잡된 이래, 진정한 언어적 세계 통일은 쉽지 않게 됐다(창 11:9). 창조주 하나님이 직접 온 땅의 인류 언어를 혼잡하게 만드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분명 히브리어가 아닌 자신의 고향 메소포타미아 갈대아 우르에서 통용되던 언어에 능숙했을 것이다.
그곳은 바로 '쐐기문자(cunéiform)'가 통용되던 지역이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들은 주전 4,000-3,000년 사이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계곡에 도시들을 구축하면서 이 문자를 창안했다.
아브라함 조상들은 그곳의 문화와 우상에 젖어, 바로 이 최초 문자의 영역 속에 있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 학생들이 기억해야 하는 문자는 600여 자였다고 알려져 있다.
모세 이전 창조 계시가 없었다고 볼 수 없기에, '하나님의 친구' 아브라함은 이 쐐기문자의 한계와 우상 문화 속에서 창조 계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후손 모세와 그 백성들이 400여 년간 하층 생활을 영위하던 이집트의 상형 문자는 오히려 어린아이들이 익혀야 하는 상형문자가 100여 개밖에 되지 않을 만큼, 어휘가 풍부한 문자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렇게 언어의 부침을 겪었다.
이 이집트 상형문자는 분명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설형문자보다도 어휘가 풍부하지 못한 문자였다. 즉 언어의 엔트로피는 오히려 아브라함 후손들 속에서 증가했다. 계시를 바르게 이해하는 일은 아브라함 후손들이 처한 환경과 문화 속에서 점점 더 그 명료함을 상실해 갔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문자들은 비 알파벳 문자들이었다.
▲베를린 제임스 시몬 갤러리에 있는 주전 2세기 아카드어로 기록된 앗수르의 아다드 니라리 1세(Adad Nirari)의 비문. |
첫 알파벳의 등장
설형문자와 상형문자를 거쳐 역사적으로 흔적이 나타나는 확실한 첫 번째 알파벳은 주전 14세기 나타난 우가리트 알파벳이었다.
현재의 시리아에서 발굴된 이 가나안 셈어군은 문자 모양은 쐐기형이었으나 모양만 닮았을 뿐, 모음과 자음의 음가를 가진 알파벳 글자의 원형(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우가리트 알파벳이 수메르-아카디아 철자들에서 파생되어 출현한 알파벳인 반면, 비슷한 시기 이집트 상형 문자로부터 비롯된 알파벳이 시나이 반도에 나타났다.
이집트 사람들은 한 문자가 한 단일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한 글자가 한 자음을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 알파벳의 기초임에도 불구하고, 이집트 귀족들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이 알파벳 체계를 채택하지는 않았다. 한글을 창안한 이후에도 여전히 조선의 양반 사대부들이 복잡한 한문을 선호하던 것과 유사하다.
반면 원시나이어(원셈어) 알파벳으로 불리는 이 시나이 알파벳이 바로 가나안, 페니키아, 아람, 그리스 문자들과 고대 히브리어로 발전한 원시 문자였으니, 이 알파벳에서 라틴어와 이탈리아 반도의 에트루리아어를 거쳐 현재 유럽의 알파벳으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즉 셈어의 원형은 시나이 반도에서 시작되어 가나안에서 다양한 문자들로 파생되었다가, 함의 아들 가나안의 장남 시돈의 후손인 페니키아인들의 활발한 지중해 무역 활동과 더불어 유럽 최초의 알파벳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즉 문자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으나, 알파벳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자를 융합하면서 시나이 반도에서 태어났다 볼 수 있겠다.
모세(애굽 탈출 시대)와 다윗 시대(가나안 입성 시대) 사이, 히브리인들은 자신들만의 히브리어를 구축해 가면서 원셈어와 여기서 파생된 다른 셈어 문자들의 단어에 담긴 우상 문화 코드들을 구분, 정리하고 히브리 민족에게 계시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바르게 기술할 필요가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주전 450년 제작 추정, 비블로스의 석비(Byblos Stele). ⓒ루브르박물관 |
여기서 비로소 오늘날 인류가 접하는 창세기 1장과 토라가 탄생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각 민족들은 이들 알파벳 문자들을 자신들 민족과 문화의 상황에 맞게 채용, 변형하면서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
가나안은 함의 마지막 넷째 아들이었다. 가나안은 노아의 16명 후손들 가운데 셈의 아들 욕단 다음으로 많은 자녀의 이름을 성경에 남기고 있다. 함의 아들 형제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11명의 자녀 이름을 남겼다.
가나안은 시돈(Sidon)과 헷(Hittites)을 낳고, 여부스족(Jebusites), 아모리족(Amorites), 기르가스족(Girgasites), 히위족(Hivites), 알가족(Arkites), 신족(Sinites), 아르왓족(Arvadites), 스말족(Zemarites), 하맛족(Hamathites)의 조상이 되었다. 이들은 우리가 가나안이라 부르는 지역을 중심으로 흩어졌다.
성경은 가나안의 지경(地境)에 대해 시돈(Sidon)에서부터 그날을 지나 가사(Gaza)까지, 그리고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와 아드마(Admah)와 스보임(Zeboiim)을 지나 라사(Lasha)까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0:19).
▲주전 5세기 무렵, 시돈 에쉬무나르 2세 왕의 석관. ⓒ루브르박물관 |
즉 '가나안(Canaan)'은 훗날 로마인들에 의해 팔레스틴(Palestine)이라 불린 오늘날 이스라엘과 요르단 지역의 히브리식 이름이었다.
이렇게 가나안은 같은 함족인 블레셋 민족과 더불어 팔레스틴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과 정면으로 접촉한 민족이 되었다.
알파벳의 전파자 페니키아를 이룬 가나안의 장남 시돈
가나안의 장자 시돈(Sidon)의 이름은 오늘날 고대 페니키아 사람들의 고대 도시 이름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대상 1:13).
시돈은 오늘날 레바논 수도인 베이루트에서 남쪽으로 약 36킬로미터 떨어진 '사이다(Saida)'에 위치하였다. 시돈은 성경뿐 아니라 '아마르나 서신(Amarna Letters)'과 호머의 저작들에도 그 이름이 남아 있는 고대 유명 도시였다.
예수님과 바울도 이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막 7:31; 행 27:3). 예수님은 갈릴리 지방에 있는 이스라엘 도시들보다 오히려 이방의 도시 두로와 시돈을 더 높게 평가하였다.
▲페니키아 문자. |
갈릴리 고라신(Korazin)이나 뱃새다(Bethsaida)에서 행한 기적과 표적들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했다면, 그들은 일찌감치 굵은 삼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을 거라고 갈릴리 지방의 완악함을 책망하였다(마 11:21-22).
사도 바울은 시돈에 친구가 있었다. 당시 친구가 되려면 신앙은 아주 중요한 고려 요소였다. 따라서 이들 친구들은 그리스도인들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지역 아구사도대 백부장(근위대 대장)인 율리오(Julius)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 바울에게 친절을 베풀어 바울이 친구들에게서 대접받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행 27:1-3). 이렇게 시돈은 이스라엘 지역보다 복음에 먼저 문을 연 지역이었다.
구약은 보통 이 시돈을 페니키아라 부르고 있다(신 3:9; 삿 10:12; 왕상 5:6). 페니키안이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붉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뜻하며 히브리어로는 '상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가나안의 장자 시돈은 지금의 레바논 해안가를 따라 두로(지금의 수르), 시돈, 베리투스(지금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비블로스 (Byblos, 성경의 그발(Gebal), 오늘날의 주바일(Jebeil)), 아르와드, 우가릿 등의 도시를 구축하면서 지중해를 넘나든 해상무역국가 페니키아를 이루었다.
이들은 지금의 키프로스뿐 아니라 북아프리카 지역, 이탈리아 사르디니아와 시칠리섬, 아프리카와 유럽의 접촉 관문인 지브롤터 해협 양안까지 진출했다.
북아프리카에 카르타고를 건설한 것도 이들이었고 뛰어난 항해술로 홍해와 대서양까지 진출하여 남아라비아와도 통상관계를 가졌다. 주전 7세기경 바닷길로 아프리카를 일주한 것도 페니키아인들이었다.
활발한 지중해 해상 무역 기지를 구축했던 시돈의 공헌은 무엇보다 주전 15세기 무렵 오늘날 알파벳의 원형이 된 페니키아 문자를 지중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한 일이었다.
즉 가나안(페니키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최초로 사용한 알파벳을 지중해 전 지역에 나누었다.
22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페니키아 문자는 주전 11세기 페니키아인들의 식민지 건설과 해상 무역과 더불어 지중해 연안 지방으로 전파되어, 주전 8세기 무렵 헬라 문자와 에트루리아 문자를 통해 라틴 문자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레바논 Beirut 국립박물관에 있는 주전 11세기 페니키아 비블로스 선형 알파벳 서체(linear alphabetic script)의 아히람 왕 비문. 가장 오래된 가나안 비문들 가운데 하나로, 왕의 유물 관련 훼손에 대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다. |
지금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북쪽 약 40km 지점에는 지중해에 면한 고대 항구도시 비블로스가 있다. 알파벳 등 인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고대 해양 왕국 페니키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이집트산 파피루스 집산지로 유명했다. 비블로스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파피루스를 뜻하는 헬라어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비블로스가 오늘날 성경 즉 바이블(Bible)의 어원이 되었다.
이 성경의 그발(가장자리라는 의미)은 여호수아 때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을 방해하기도 했지만(수 13:5), 나중에는 예루살렘 성전 건축을 위해 솔로몬에게 유능한 기술자들을 보내기도 했던 도시였다(왕상 5:18).
고대 그발은 두로의 영향권 아래 있던 도시였다. 이 도시들은 지금 레바논 영역에 있다. 레바논은 오늘날 종교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늘 잠재되어 있는 국가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은 늘 안디옥과 자신의 고향 다소를 다니며 이곳 '베니게'를 거쳐갔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이곳은 복음의 은혜가 일찌감치 임한 지역이었다. 이 페니키아(레바논) 지역을 위해 기도하자.
가나안 셈어는 고대 히브리어에도 상당수 녹아들었지만, 많은 고고학자들은 고대 페니키아의 땅에서 페니키아어·헬라어·라틴어 알파벳의 모어(母言)의 원형을 발견했다.
이렇게 오늘날 모든 유럽 국가들의 언어는 함족 가나안의 후손 페니키아인들에게 결정적 빚을 지고 있다.
또 해마다 우리 한민족이 페니키아어를 원조로 하는 유럽어와 영어 알파벳에 쏟아 붓는 정력과 돈은 얼마나 많던가!<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