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아테네 아레오파고스에서 설교했습니다. 아레오파고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광장의 이름입니다. 또 하나는 아테네 최고 법원의 명칭입니다. 바울이 설교한 곳이 법원인지 광장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아레오파고스 법원의 초청으로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설교했을 수 있습니다. 아레오파고스 관원 디오니시우스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회심하여 신자(제자)가 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사건입니다.
바울은 아레오파고스에 강사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적절한 논리와 학문적 소양을 갖춘 새로운 방문객을 아레오파고스의 관원들이 공식적 연설자로 초청했습니다. 이것은 아테네 사회의 관행이었습니다. 아테네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학 도시였습니다. 아테네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출생지이고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제논의 제2의 고향입니다.
아테네는 헬라 철학과 문학을 꽃 피운 헬라 문명의 요람이었습니다. 바울이 방문했을 때에 아테네 영광은 쇠락한 상태였지만 옛 영광의 흔적이 당당히 버티고 있었습니다. 웅장한 신전들, 헬라문명의 발상지라는 시민의식, 그리고 당대 최고를 자부하는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상황에 설교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바울의 아테네 설교는 행17:22부터 31까지 10절입니다. 이 10절의 설교는 신약 신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본문입니다.
바울의 설교는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아테네 시민들과 철학자들의 잘못된 신관을 지적합니다. 바울 설교의 청중은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였습니다. 스토아학파는 만물에 신적 생명이 있다는 범신론(Pantheism)을 따랐습니다. 반면 에피쿠로스학파는 신적존재는 저 멀리 우주 밖에 있다고 믿는 이신론(Deism)을 따랐습니다.
바울은 헬라 철학과 헬라 문학으로 두 학파의 철학자들을 설득합니다. 세네카의 글을 인용하여 우연으로 세상 만물이 존재한다고 믿는 에피쿠로스를 공격하는 한편 스토아 철학자들을 감동시킵니다. 이 설교에서 바울은 세네카의 말을 간접적으로 다섯 차례, 에피메니데스와 아라투스의 말을 각각 한차례씩 직접적으로 인용하며 예배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당대 최고를 자부했던 철학자들이 바울의 설교에 아무런 반박을 못합니다. 헬라 철학과 문학을 아는 사람이라면 담긴 바울의 인문학적 소양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당대 헬라 철학자들이 애송했던 시구들을 활용하면서 아테네 철학자들을 압도해 버렸습니다. 바울은 아라투스(Aratus)와 에피메니데스 (Epimenides) 시구(詩句)를 유창하게 인용합니다.
28절 전반부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For in him we live and move and have our being.)"는 에피메니데스의 싯귀입니다. 에피메니데스는 그레데(Crete)섬 출신입니다. 바울이 그레데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보낸 디도서 1장12절에 인용한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라는 시구의 시인입니다. 바울은 에피메니데스를 잘 알았습니다.
에피메니데스는 신적 영감을 받은 사람이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선지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57년 동안 동굴에서 잠이 들어서 초인적인 능력을 갖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플루타르코스가 쓴 '솔론의 전기'에 의하면 에피메니데스가 솔론과 함께 아테네 개혁을 주도했다고 합니다. 작품과 행적으로 메피메니데스는 아테네 유명인사였습니다.
28절 후반부에 '우리는 그의 소생이라(We are his offsprings)' 구절은 아라투스(Aratus)의 시입니다. 그는 바울과 고향 길리기아 출신으로 B.C. 3세기 학자요 시인입니다. 그는 "파이노메나(Phainomena)", "찬가", "에피그램" 등을 썼으나 남은 것은 제우스를 찬양한 파이노메나 뿐입니다. 아라투스는 제논의 제자인 철학자 "클리앤데스(Cleanthes)"의 글을 인용하여 이 시를 썼고, 바울이 인용했습니다. 이 시는 당시 아테네시민들이 애송했습니다.
에즈베리 신학교 위더링턴(Witherington)박사는 바울의 아테네 설교가 사회문화적 환경을 활용한 모범적 설교라고 주장합니다. 천주교 신약학자 핏츠마이어는 '아테네는 헬라 문화 향기를 품은 고품격 도시였지만 바울은 압도되지 않고, 오히려 헬라 문화를 활용해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다소에서 헬라문화를 체득한 바울은 아테네 철학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설교가 헬라철학의 한 분파였던 견유학파(Cynics)의 가르침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견유학파에서 시니컬(Cynical)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이 바울을 '말쟁이(Babbler)'라고 부릅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꼭 한번 사용된 단어인데 견유학파 디온 크리소스토모스의 상용어랍니다. 대표적 견유학자 디오게네스가 아테네와 고린도를 오가며 활동했는데 바울도 아테네 후에 고린도로 갔습니다. 바울은 철학을 냉소적(Cynical)으로 압도했습니다. 바울에게 철학은 복음에 비해 시시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냉소적으로 보는 여유와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헬라 문화의 심장부에서 순수 복음을 전합니다. 헬라 철학과 문학을 충분히 활용한 인문학적 설교로 하나님을 정확하게 전합니다. 바울은 이 설교를 통해서 "설교자는 청중의 문화를 존중하고, 청중과 래포(Rapport)를 세우고, 청중의 지성을 존중하지만 타협하지 말고 복음의 핵심을 전하라!"고 가르칩니다. 현재 선교사와 설교자가 맘에 담아야 할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