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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는 'C. S. 루이스를 통해 본 상상력, 이성, 신앙' 이다. C. S. 루이스를 가장 잘 나타내는 세 단어이다. 송인규 교수는 C. S. 루이스의 작품이 특별한 이유에 대해 논리적인 이성과 상상력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라 말했다. 이성적인 사람들은 주로 상상력이 없고, 상상력이 있는 사람들은 논리적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루이스는 극과극인 두 가지 자질이 통합된 사람으로 평가한다.

어떻게 한 인물 안에서 이성과 상상력이 그렇게 아름답게 통합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찾게 되었다.

1. 상상력의 사람

C. S. 루이스의 상상력은 타고난 기질이기도 하지만, 그의 가정환경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루이스가 10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었다. 어린 나이에 아파하는 어머니를 보는 것도 힘들었고, 하나님께 어머니의 병을 낳게 해달라고 기도했지만 그것이 좌절되었을 때 느끼는 고통도 있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열 살 소년의 마음은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현실을 도피하는 상상의 세계로 그를 이끌었을지 모른다.

루이스는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형이 만들어준 모형 화분을 통해서 처음으로 미적 아름다움을 만났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놀이방 창문너머로 보이는 능선을 통해 이름 모를 푸른 꽃을 보면서 미적 아름다움의 숭배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에 무신론자가 된 루이스를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첫 번째 계획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해 루이스 안에 있는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그 후에 그가 상상력이 세례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1916년 3월 레더헤드 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사게 된 조지 맥도날드 목사의 '판타스테스'라는 동화를 만난 것이다. 조지 맥도날드는 스코틀랜드 목사이며 동화작가였기에 그의 작품은 단순한 상상력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 상상력이 현실의 경험 너머의 세계를 보게 하고 그로인해 오늘의 현실을 더 의미있게 만드는 작품들이었다. 루이스는 그 경험을 이렇게 고백했다.

"(이전에는 현실의 세계를 넘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면 현실로 나오기 싫었는데) 그런데 '판테스테스'를 통해 책이 실제 세상에 밝은 그림자를 드리워 모든 평범한 사물을 변모시키면서도, 정작 그 그림자 자체는 변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평범한 사물이 그 밝은 그림자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이다. ... 그 당시 (무신론으로) 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지적 무지로 완강하게 무장하고 있었을 때 ... 그날 밤 나의 상상력은 어떤 의미에서 세례를 받았다."(예기치 못한 기쁨, 홍성사, 262쪽)

2. 이성의 사람

C. S. 루이스가 상상력과 이성이 통합된 데에는 하나님의 섭리적 예비하심이 있었다. 루이스의 아버지는 무신론으로 바뀐 아들을 위해 큰 형의 선생님이었던 커크패트릭을 가정교사로 임명하고 루이스를 교육하게 했다. 그러나 커크패트릭은 이미 무신론자가 된 지 몇 년이 지난 상태였고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루이스에게 무신론을 체계화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커크 선생님은 '예기치 못한 기쁨'에서 '위대한 노크(커크) 선생님' 이라고 한 장을 할애할 만큼 어린 루이스에게 영향을 준 사람이었다.

"만약 인간이 완전히 논리적인 실체가 될 수 있다면, 커크 선생님이야말로 거기에 가장 근접한 분일 것이다. ... 진실을 발견하거나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을 위해 인간성대를 사용한다는 것은 선생님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별생각 없이 쓴 말도 논쟁의 불씨가 되었다."

이렇게 논리로 무장한 선생님으로부터 이성적 사고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았다. 비록 그 당시는 무신론적 사고가 더 견고해지는 시간이었지만 그의 교육은 훗날 기독교 변증가로 탁월하게 사용된다. 또 그 당시 배웠던 고전어와 외국어를 통해 문학책을 읽게 된 것은 이성과 상상력이 함께 자란 배경이 되었다. 루이스의 상상력이 조지 맥도날드의 책 '판타스테스'를 통해 회심을 경험했다면, 그의 이성은 G. K. 체스스턴의 '영원한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체스스턴의 글을 읽으면서 또 관념론이라는 철학을 배우면서 종교가 주관적 감정과 기분에 의거한 것이라는 생각이 차츰 무너지게 되었다. 영적인 실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그 실재가 감정을 넘어 객관적 존재일 수 있다는 인식이 자라게 된 것이다.

그리고 루이스의 이성이 세례를 받게 된 계기는 잉클링스(Inklings) 라는 모임을 통해 만난 친구들의 영향이 컸다. 이곳에서 루이스는 '반지의 제왕'을 쓴 돌킨, 찰스 윌리암스, 오언 바필드 등을 만났는데, 특히 바필드와 '세계대전' 이라고 부르는 몇 년의 치열한 논쟁을 통해 자신이 생각했던 잘못된 세계관이 무너지고 유신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이 과정을 이렇게 진술했다.

"1929년 여름학기에 나는 드디어 항복했고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했으며,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아마 그날 밤의 회심은 온 영국을 통틀어 가장 맥 빠진 회심이자 내키지 않는 회심이었을 것이다. ... 하나님은 얼마나 겸손하신지 이런 조건의 회심자까지 받아주신다. ... 끌려오는 와중에서도 화를 내면서 도망갈 기회를 찾는 나 같은 탕자에게도 하늘의 높은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그분의 사랑을 그 누가 찬양하지 않으랴? ... 하나님의 준엄함은 인간의 온화함보다 따뜻하다. 그의 강요는 우리를 해방시킨다." (예기치 못한 기쁨, 328쪽)

3. 신앙의 사람

C. S. 루이스의 이성과 상상력은 결국 신앙 안에서 아름답게 통합된다. 루이스는 성경을 읽을 때 단순히 근본주의자들처럼 문자를 독해하는 이성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또한 자유주의자들처럼 성경의 역사성을 무시하며 신화화하는 상상력에만 집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성경의 문자를 바르게 이해하면서도 성경을 통해 단순히 문자를 넘어 그리스도의 인격에게로 나아가는 상상력의 통합을 삶으로 실천한 사람이다. 이성과 상상력이 성령님의 조명을 통해 하나가 된 것이다.

루이스의 성경읽기는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성경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아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동참의 의미에 가깝다. 오늘의 좁은 인간의 삶에 원대한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을 구겨 넣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좁은 인생 전체가 성경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의 비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경 자체를 보는 것 (looking at)이 성경을 읽는 궁극적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 본문에 적혀 있는 내용이나 배경 역사에 관한 지식을 얻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성경과 더불어 (looking along) 자아 밖을 바라보는 '탈아적' 경험까지 이어져야 한다. 성경을 통해 ... 우리는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해방되어 창조세계를 그윽히 바라보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시선에 참여하게 된다."

김진혁 교수는 이런 과정을 '재주술화'의 과정이라 말한다. 이성을 통해 고대의 신화인 성경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탈주술화라면, 루이스는 진정한 상상력과 이성을 통해 더 넓은 신비의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재주술화'를 시도한 인물로 평가한다. 그것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루이스의 유명한 소설 '나니아 연대기'일 것이다. 총 7권으로 이루어진 이 판타지 동화는 20세기 산업화된 영국 사회에서 현대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사자 아슬란이 다스리는 나니아의 세계로 우연히 들어가 여러 모험을 거치며 사람됨의 참된 의미를 배우고 성찰해가는 이야기이다. 김진혁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나니아 연대기를 읽다보면 상상력(나니아 세계의 창조), 이성(옳음에 대한 판단), 신앙(궁극적 가치의 육화라 할 수 있는 아슬란에 대한 신뢰)의 조화가 각각의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구현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C. S. 루이스에게 성경이란, 하나님의 세계에 들어가는 옷장과 같은 역할이었다. 그 속에서 철저한 이성과 거룩한 상상력이 하나가 되어 온전하게 통합된 순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C. S. 루이스의 작품을 읽고 싶어 질 것이다. 나도 올해가 가기 전에 C. S. 루이스의 전 작품을 다시 읽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루이스의 책을 통해 그가 만난 이성의 하나님, 상상력의 하나님, 그리고 그것이 통합된 순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고상섭 목사(그 사랑교회), TGC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