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기독교계는 근본/보수 주의에 대한 비판에 있어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할 만큼, 저마다 동일한 주제에 대해서도 상이한 관점을 넘어 본질을 벗어난 모순된 논리로 꽤나 무질서한 느낌이다.

최근 본 어떤 댓글엔 필자가 그간 숱하게 들어온 바, 진보나 비기독교인들이 보수를 보는 공통적 시각이 잘 나타나 있었다.

1. 이념 공포 아닌 영적 전쟁

내용인즉 교회발 확진자와 태극기 부대의 현상은 전쟁과 분단의 상처를 겪은 이들이 '이미 시효가 끝난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에 대한 두려움이 해소되지 않은 '이념(공산주의) 공포'가 낳은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주장의 속내는 그동안 분단적 정치 상황에 의해 특권적 이익을 누려온 기성 교회가 공포의 시효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 떄문에 파괴적 충동을 일으키고, 특정 대상을 악마화한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이는 말씀과 그리스도의 신앙 가치관과 대척점에 선 히틀러식 광기요 본회퍼가 적시한 '적그리스도'라고까지 표현하고 있었다.

그러면 한 번 생각해 보자. 과연 광화문 집회자들과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시기에 교회 예배를 수호하려는 자들의 열망의 실체가 그런 것이었겠는가를.

과연 우리나라 보수 교단의 현 상태가 '1914년의 이념'으로 무장한 채 왜곡된 민족적인 우월감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후 패망한 독일인의 피해의식이나 폐쇄성과 견줄만한 것일까?

나아가 아리안족의 세계 지배라는 야망을 이룸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 패전의 굴욕을 만회하고자 했던 독일 국민의 광기적 분출에 비유될 수 있을까?

전광훈 목사라는 이는 과연 나치즘이 인종 이데올로기를 통해 독일 국민으로 하여금 히틀러를 추종하게 했던 것처럼, 교인 일반들에게 이념(공산당) 공포를 조장하여 여지껏 한국 기성 교단이 정치적 상황에 의해 누려온 특권을 끝까지 움켜쥐고자 극우적 충동을 정치화 신학화하여 이 나라를 파괴하려는 시도를 한것인가?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한국이 처한 분단의 상황은 아직 '시효가 끝난 상황'도 아닐 뿐더러, 여전히 그리고 도리어 갈수록 더 큰 위협 앞에 놓여있는 정치적 현실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맑시즘에 근간한 세습 수령 우상적인 엘리트 지배의 전체주의의 실체로서 한반도뿐 아니라 전 세계 안위를 위협할 정도의 핵보유국이자 준히틀러적 광기로 자기 체제 속 인민들의 사고와 믿음의 자유를 극렬히 억압하고 인권 유린의 노예적 삶으로 박해하는 북한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조국의 현실에 경계를 늦추지 말고 민감하게 깨어 있어야 하는 현실임을 말이다.

본회퍼에 따르면 교회는 세상의 죄악과 싸우는 삶의 특성을 가지므로 국가의 행동에 대해 정당성과 책임성을 물어야 하며, 국가가 질서와 권리를 보장하는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보일 때 자동차 자체를 멈추게 하는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다.

신자나 신앙 리더의 개인적 영성에 따라 시국적 현황을 읽어나가는 온도나 위기감의 정도가 다를 수 있고, 시대를 분별하는 예언자적 사명과 더불어 초자연적인 비전에 맞닥뜨릴 수도 있는데, 요는 내적 동기의 진정성과 정황의 추이를 지켜보는 인내심과 현실적인 사인을 구하는 판단력이 중요할 것이다.

바르트가 나치운동을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우상숭배요, 유대인과 집시 등 다른 민족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악마적인 것으로 보아 대중강의와 설교를 통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냈듯, 크리스천들도 북한의 1인 독재 신격화를 우상숭배로 보고 공산당 체제에 동조하지 않는 공민이나 기독교인들을 차별하고 박해하는 것을 악마적인 것으로 보아 얼마든지 대중강의와 설교를 통해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현실적 행동에 있어 정황적 사인이 따라오지 않고 결과가 무산되더라도 그런 과정적 행위가 사회에 미친 여파가 실보다 득이 많다면, 진보라도 같은 기독교 서클인 만큼 현실적 성패만을 기준 삼아 행위의 동기를 폄훼하고 질타하기보다 침묵하고 근신하는 편이 차라리 더 하나님 나라에 유익을 가져올 것이라 본다.

(과거 성경을 모를리 없는 전 목사가 했다던 두가지 망언 중 하나에 대해 필자는 이런 식의 이해를 모색해 보았다. 가령 예의범절을 못배우고 시골에서 응석받이로 버릇없이 자라는 어린 아들이 툭하면 아버지 코 앞에 조그만 주먹을 흔들어대며 겁을 주는 시늉을 하는 상상을 해보니, 이도 일종의 나름대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친근감의 표시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인 여교인에 대한 망언은 한국/한인 교계에 뻔뻔스러울 정도로 만연한 바 가해 목회자를 호위하는 측근들의 비양심적 대동단결과 피해 교인에 대한 파렴치하고 불공평하며 음해적 2차 가해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이도 충분히 준우상숭배와 차별과 박해의 악마적인 것으로 보고 마땅히 대중강의와 설교를 통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성토해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결론적으로, 한반도의 특수한 정치 상황에서 현실적 위기의식의 신앙적 표출은 단순한 '이념 공포'의 발로가 아닌, '영적 각성 내지 영적 전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제는 '이념 공포'가 아닌 '이념 해이"일 것이다.

2. 경계해야 할 신앙의 이념화

토마스 만이 제1차 세계대전을 '문화 전쟁' 관점에서 설명한 '1914년의 이념'은 독일인들의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이념은 독일 민족주의 진작이 목적으로, 독일 민족과 관련한 역사와 문화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독일 혁명을 위해 미화와 과장한 것들이었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 등의 서방 국가에 대해서는 적대의식을 나타내었다.

도올을 위시한 진보 정당과 진보 신학에서 중공과 북한을 우호적으로 여기고 미국과 일본을 적대시하는 트렌드가 최근 한동안 휩쓸다시피한 것도, 동양 사상을 바탕으로한 민족주의란 이름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왜곡·미화·과장하여 친사회주의적 성향을 드러냈던 사례로 기독교계에 누룩처럼 스며들었던 '어떤 이념'이었음이 분명하다.

또 나치 개신교인 게르만 기독교는 루터 르네상스를 일으켰으나, 칸트와 헤겔의 영향 때문인지 개신교 신학에서 구약을 경시하여 긍정적 기독교(Positive Christianity)란 이름으로 구약에서 유대적 요소들뿐 아니라 예수의 신성과 같은 거의 대부분의 전통적인 기독교 교리들을 거부하였다.

역시 기독교 내 진보 신학이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을 신약으로 대체하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을 분리시킴으로써, 통전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실례로 도올식 신학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구약의 하나님을 편협한 유대 민족만의 신이요 질투의 화신으로, 예수를 권력과 바리새인들의 부패와 유대 물질주의에 대항해 투쟁했던 존경스럽고 위대한 인간으로 여기는 것과 같이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든 미제 기독교니 국산 기독교니 운운하는 이는 스스로 통전적인 하나님 이해에 큰 결함이 있음을 드러낼 뿐 아니라, 내막을 보더라도 순수한 우리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감성적인 민족주의나 유치한 동서 대결을 부추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도올은 기독교를 때에 따라 서양 종교로 또는 동양 종교로 주장한다.)

이와 같이 기독교 신앙이 이념화될때 그 신앙은 도구화된 죽은 신앙이고 타락한 신앙이고 파괴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3. 보다 중요한 기독교 정신의 문화유산

또 기독교 신앙은 혹자들이 잘못 생각하듯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 사변 언저리의 잡다한 놀이 마당이 아니다. 신앙의 이념화는 신앙의 브랜드화조차 유행시키려 한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절대 보편적인 진리의 실체이므로, 결코 동서, 남녀, 인종, 국경 등으로 브랜드화될 수 없다. 그러기에 혹자의 'K-영성' 같은 신조어는 도올 류의 우스꽝스런 망발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배경엔 모국의 민족문화를 보다 앞세우고자 하는 욕심이 서려있다.

사실 한국 근현대사가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을 거쳐오는 동안, 사회 전반적으로 기존의 전통적 제도와 문화가 급속히 서구화 되어오는 과정에서 주로 미국적 영향력을 크게 받아왔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급격한 국력 신장에 따라 애국심과 국가적 자부심의 고취를 위해 민족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이해하더라도, 이런 성향의 과잉이 K-pop, K-방역 등 아직 넉넉치 않은 자원으로 성급히 선진국의 지표를 삼으려는 섣부른 민족 우월주의로 비화할 소지도 있는 것이다.

25년 만에 모국에 돌아왔던 필자로선 우리나라의 문화가 사반세기 전과 비교해 급속히 미국화가 된 것에 몹시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예전엔 일상의 말이나 글 혹은 표기에 영어를 사용하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간혹 사용하더라도 사람들의 거부감이 심했는데, 이젠 누구나 마음놓고 외래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화가 되었다.

또 미국에 사는 동안 할리우드 스크린에서나 볼 뿐 현실에선 대개 보수적인 분위기의 미국 젊은이들과 달리, 눈에 띄게 자유분방한 한국 젊은 세대들의 성문화와 더불어 무슨 유행처럼 남녀 대학생들의 말끝마다 후렴구처럼 따라다니는 두 음절의 상스런 욕설엔 정말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필경 도올 같이 대단한 학자연 하는 이를 비롯해 일부 인기 방송인들이 방송 때마다 단골로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걸 무슨 미국식 첨단을 달리는 멋이나 되는 것처럼 유행시킨 듯 하다.

아마 헐리웃 스크린에서 자주 구사하는 F-word의 영향 때문인 것 같은데, 실제 미국인들 중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그런 용어를 일상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한국이 미국식이라면 좋지 않은 것들도 무분별하게 정신없이 따라가는데, 한국보다 기독교 신앙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에서, 아니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신앙의 선진들이 남긴 빛나는 신앙의 유산이나 유익한 모본을 따라가지 않을 이유란 하등 없을 것이다.

필자가 미국 생활에서 절감한 바는 비록 비신자나 무신자라 하더라도 미국인들의 의식 속엔 일상의 삶에서 타자를 돕고 베푸는 봉사와 희생의 DNA 가 기본적으로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로 한켠에 세워진 남의 차를 보고 일부러 주행을 멈추고 내려 작동이 될 때까지 밧데리를 충전해주는 친절이나, 한겨울 추운 밤 몇 시간이고 고장난 이웃의 차 밑에 교대로 들어가 수리를 해주는 청년과 노인을 볼때 이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을 듯했다. 이들의 무의식적 배경엔 2천년 동안 면면히 내려온 기독교 정신이 문화유산으로 깃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의심쩍고 기만적인 도올식의 '한류적 기독교/ K-영성' 같은 포퓰리즘에 미혹되지 말고, 초문화 초인종 초국가적으로 오고 오는 세대를 관통하며 '동양적 가치' 그 이상을 품고 있는 진정한  우주적 스케일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적 의미와 파워를 성실히 궁구하고 깨달아 우리의 자녀들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물려줄 사명을 재 다짐할 필요가 있다. 

한편 어딘가에서 본 '인간의 본성 창조' 운운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 역사를 부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험한 발언이다. 인간은 본성에 있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나 타락하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인간이 본성 중 하나인 창조성을 계발할 수는 있어도 본성 자체를 창조한다는 것은 창조자가 아닌 창조성을 궁극적으로 보는 신-인 합일 사상으로서 초월적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의 영원함과 불변성을 부인하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적인 도올 류의 발상이다.

생각해 본다. 나치즘만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미망에 빠져 프라이부르크 대학 총장이 되어 학생들에게 "오직 히틀러 총통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라고 연설했던 하이데거에게 있어 인간 존재의 의미는 유한한 시간성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그런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근거를 유한한 시간성을 넘어서는 무한한 항구적 가치이자 궁극적 터전인 '새 예루살렘성'의 '생명 나무'에 두었더라면, 그에겐 "오직 예수만이 독일의 진정한 현실이자 법"이 되었을 것이고, 미친 운전자의 자동차를 멈추게 했을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요즘 한국 기독교가 망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교회가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의 심각한 감퇴를 염려하는 뜻에서가 아니라면, 한 마디로 하나님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도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십자가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결코 퇴색될 수 없는 항구적 가치와 능력을 지닌 것이어서, 십자가와 부활의 생명력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오늘도 지구촌 곳곳 에서 눈물과 땀과 피로 심어지고 움트고 솟아나고 뻗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박현숙 목사
인터넷 선교 사역자
리빙지저스, 박현숙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9awEs_qm4YouqDs9a_zCUg
서울대 수료 후 뉴욕 나약신학교와 미주 장신대원을 졸업했다. 미주에서 크리스천 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해 왔다.
시집으로 <너의 밤은 나에게 낯설지 않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