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배경이 되는 헬라, 로마 시대에는 사람의 이름을 따라 명명된 도시들이 많습니다. 제국이 전쟁을 통해 땅을 정복하면 황제의 이름이나 공로를 세운 장군의 이름으로 정복한 도시들을 명명했습니다. 욕심이 많은 황제는 자신의 이름을 많은 도시에 붙였습니다. 또 지역 통치자들에 의해 존경받는 황제나 장군의 이름이나 난폭한 황제나 장군의 이름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전자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도시 이름을 명명했고, 후자는 통치자나 실력자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로 도시 이름을 명명했기 때문입니다.
신약 성경에 사도행전과 복음서에 등장하는 도시들 가운데 많은 도시가 황제와 장군의 이름을 딴 도시입니다. 얼마 전에 살폈던 것처럼 갈릴리 바닷가에서 위용을 자랑했던 디베랴는 로마 2대 황제인 디벨리우스의 이름을 딴 도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라 빌립보(Caesarea Philippi)를 지나시면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하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습니다. 이 대답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칭찬하시며, 그 고백적 믿음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도시가 가이사라 빌립보임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가이사라 빌립보는 이스라엘의 최북단 헤르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BC 20년 당시 로마의 황제였던 아우구스도(Augustus: Caesar divi Filius Augustus)가 헤롯 대왕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감격한 헤롯 대왕은 이 도시를 개발하며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신전을 건축하고, 도시를 하사한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가이사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주전 4년 헤롯 대왕이 죽자 아들 헤롯 빌립이 분봉왕으로 이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헤롯 대왕은 이두메 출신으로 정통유대인이 아니었지만, 유다 분봉 왕이 됩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네 명이었습니다. 헤롯 안디바, 헤롯 빌립1세, 헤롯 빌립2세, 헤롯 아켈라오인데 요절한 헤롯 빌립1세를 제외한 모든 아들이 분할 지역의 분봉 왕이 됩니다.
헤롯 빌립 2세가 가이사라 지역을 차지합니다. 그는 '가이사라'를 자신의 영토에 수도로 삼고 도시를 대대적으로 개발하고 확장한 다음 자기 이름을 덧붙여 가이사라 빌립보로 부릅니다. 황제의 환심도 사고 자신의 권세도 자랑합니다. 가이사는 아부를 빌립보는 과시를 의미합니다.
유적 발굴로 가이사라 빌립보의 옛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로마의 황제 신전, 판 신전, 염소 신전 등등 크고 작은 신전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습니다. 구약 시절에는 바알 신전이 있었고 헬라시대에는 '판(Pan)'신을 섬기는 판 신전이 있었습니다. 판신은 허리 위쪽은 사람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진 신으로 공포의 신입니다. 패닉(Panic)이라는 말이 "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가이사라 빌립보는 신전이 즐비한 우상의 도시였습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헤롯 빌립이 건설한 황제 신전 주변에 신비스러운 동굴이 있었습니다. 이 동굴은 저승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 불렀습니다. 이 동굴 안에는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Chasm)가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가이사라 빌립보는 구약시대에는 바알 신과 판신을 믿는 장소였고, 헬라 시대에는 제우스 신전, 거룩한 염소의 무덤 신전 등 다양한 신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신으로 숭배하는 황제의 신전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가이사라 빌립보는 '신들의 도시'라고 불릴 만큼 각종 신상과 신전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아울러 야망으로 황제의 이름을 부르고 자신의 이름을 넣은 권력의 도시입니다.
가이사라 빌립보는 유대 땅에서 대표적인 헬레니즘 정신이 가득한 도시입니다. 헬레니즘이 융성했던 도시들에는 신전들이 있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과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 그리고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이 좋은 예입니다. 아울러 헬레니즘이 융성한 도시는 당시 황제의 영향력과 권세를 즐겼습니다. 황제와의 관계를 자랑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이사라 빌립보는 헬레니즘의 기운을 가득 품고 위용을 자랑한 도시입니다.
이런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제자들이 신앙을 고백하게 하신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가이사라 빌립보는 우상의 환상과 권력의 탐욕이 지배하는 세속적 욕망의 상징적 도시입니다. 신앙 고백은 세속적인 삶의 자리에서 요구됩니다. 하나님보다 더 가까운 곳에 뭔가 효험이 있을 것 같은 모습으로 유혹하는 우상 앞에서 신앙 고백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탐욕과 세상 권력을 추구하는 세속의 현실을 극복하는 신앙 고백이 필요합니다.
우상들의 신전들이 가득하고 권력과 탐욕이 배어 있는 가이사라 빌립보 같은 환경에서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고백 되는 신앙을 주님께서 기대하십니다. 베드로처럼 신전 앞에서, 황제의 권세와 왕의 욕망이 출렁이는 삶의 현장에서 토해지는 우리의 신앙은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