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박찬기 역 | 민음사 | 244쪽

드라마 속 이야기가 우리 삶 움직이듯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청년들 움직여
이뤄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 유럽 삼켜

드라마 속 이야기가 삶을 움직인다. 2016년 방영된 <태양의 후예>. 그 덕분에 온 나라가 군복을 입고 다녔다. '밀리터리 룩'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도 얼룩무늬 군복을 입었다. 심지어 갓 제대한 남성들도 다시 군복 패션을 입게 만들었다.

그보다 더 오래 전 드라마. <파리의 연인>. 그 때는 군복이 아니라 커다란 빨간 돼지 저금통이다. 남자 주인공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돼지 저금통을 하나씩 샀다. (물론 나도 하나 샀다.) 드라마가 주는 힘이다.

심지어 어떤 할머니 권사님은 새벽마다 '하나님! 겹사돈은 안 됩니다. 겹사돈은 막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당시 유행하던 일일 연속극 <보고 또 보고>에서 두 자매가 한 집안의 며느리로 시집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일은 막아달라고 새벽마다 기도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삶을 움직인다.

1774년 출판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주인공 베르테르의 이루지 못한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 유럽을 움직였다. 거리에는 노란색 조끼와 푸른색 연미복을 입은 '베르테르 복장'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여인들은 베르테르가 사랑했던 샤를로테(로테)를 따라 했다. '로테 장신구'를 하고 '로테 향수'를 뿌렸다. 로테 장갑, 로테 부채..., 소설 베르테르와 관련된 제품들은 무엇이든 만들어지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도자기 회사들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속 장면들을 묘사한 제품들을 내놓았고, 런던에서는 '로테가 알베르트와 결혼한 이후에도 베르테르와 친하게 지낸 행동이 옳았는가?'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 한 마디로 '베르테르 광풍'이었다.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 보낸 편지로 구성
약혼자 있던 샤를로테 사랑하다, 떠나갔지만
우정으로 포장된 사랑으로 부부와 시간 보내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전 유럽이 주목하는 작가가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7세.

이 소설은 두 이야기를 바탕으로 14주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하나는 괴테 자신의 이야기다. 괴테는 약혼녀가 있던 여인을 사랑했다. 그 이야기가 소설 배경이 되었다.

또 하나는 그의 친구인 '카를 빌헬름 예루잘렘'의 이야기다. 예루잘렘은 유부녀를 짝사랑하다 결국 권총으로 목숨을 끊었다.

소설은 주인공 '베르테르'가 친구 '빌헬름'에게 보낸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베르테르의 편지는 2-3일 혹은 보름에서 한 달 간격으로 이어진다. 이 편지를 통해 독자들은 베르테르의 사랑과 삶을 만나게 된다.

베르테르는 집안의 상속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시골 마을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법무관의 딸 샤를로테(로테)를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로테에게는 이미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었다.

베르테르가 로테를 만날 당시 알베르트는 여행 중이었다. 그 동안 베르테르는 로테를 향한 사랑을 키워간다. 알베르트가 여행에서 돌아오자, 베르테르는 로테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곳에서 먼 공사관으로 일자리를 구해 떠난다.

자유로운 마음과 열정을 가진 베르테르. 그는 공사관 일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결국 다시 로테가 살고 있는 마을로 돌아오고 만다. 그때는 이미 로테와 알베르트가 결혼한 상태.

베르테르는 그곳에서 우정으로 포장된 사랑을 하며 이들 부부와 시간을 보낸다. 시간이 지날수록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은 겉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진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사랑 눈치챈 샤를로테 남편, 베르테르 못마땅
샤를로테도 베르테르 부담스러워해 결국 떠나
떠나야 하지만 못 떠난 베르테르, 자살로 마감

그런 마음을 눈치챈 알베르트는 내심 그를 못마땅해한다. 로테도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인간' 베르테르를 사랑하지만, 점점 깊어지는 베르테르의 사랑이 부담스러워진다.

베르테르 역시 점점 커지는 자신의 사랑을 감당하지 못하고, 또한 단념하지도 못한다. 그러던 중 로테가 자신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하는 로테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그는 로테를 위해 떠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미 너무 커져버린 사랑. 그 사랑 때문에 로테를 떠날 수도 없다. 떠나야 하지만 떠나지도 못하는 베르테르.

그래서 그는 먼 여행을 계획한다.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떠나는 여행. 로테를 떠나지 않고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바로 죽음이다.

늦은 밤 자신의 방 의자에 홀로 앉은 베르테르. 로테를 처음 만났을 때와 똑같은 연미복을 입고 로테의 이름을 부르며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머리로 이해 못할 이야기... 가슴으로 읽어야
슬픈 이야기 유럽 흔든 이유, 심장 뛰게 해서
사랑 떠나는 '이별' 아닌, 못 떠나 남은 '사랑'

'결혼한 여인을 짝사랑하다 자살한 이야기!'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머리로 읽는 책이 아니다. 가슴으로 읽는 책이다.

베르테르의 슬픈 이야기가 유럽을 뒤흔든 이유는 소설이 가슴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로테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이 젊은이들의 심장을 뛰게 했다. 가슴을 흔들었다.

"그 순간에 태양과 달과 별들이 조용히 계속해서 돌고는 있었겠지만, 나는 그때가 낮인지 밤인지 가릴 수 없었다. 온 세계가 내 주위에서 사라져버렸던 것이다." (베르테르가 샤를로테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리며 쓴 편지)

"오, 천사여, 그대를 위해서 나는 살아야만 하겠다." (로테가 베르테르에게 건강을 챙기라는 핀잔을 주었다. 그 말을 듣고 쓴 편지)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귀중한 존재가 되었는지 모른다.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존경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로테의 마음속에 내가 들어 있음을 느낄 때에 나는 아무도 두렵지 않다." (로테도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며 쓴 편지)

"'그녀를 내게서 멀어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할 수는 없다. 그녀가 가끔 나의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녀를 내게 주십시오!' 이렇게 빌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녀가 다른 사람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루어질 수도 떠날 수도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며 쓴 편지)

"때때로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이다지도 외골수로 그녀만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해도 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나는 그녀 외에는 아무것도, 아무도 모르고, 또 그녀를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괴로워하며 쓴 편지)

소설 속 베르테르의 편지는 글이 아니라 심장이다. 심장에서 쏟아낸 사랑 이야기다. 이 사랑은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다.

당시 유명한 물리학 교수인 리히텐베르크는 이렇게 말했다. "베르테르의 고상해 보이는 이유들 때문에 세상을 버리는 것보다는 팬케이크 냄새 때문에 세상에 남을 것을 택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 있다." 정말 물리학 교수다운 생각이다.

이는 소설의 결말을 '죽음'이라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아서 그렇다. 베르테르의 죽음은 이별이 아니다. 사랑을 떠나는 '이별'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사랑'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체념이 아니다. 사랑하는 그 마음 그대로 '간직'이다. 닿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죽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사랑, 대가 바라지 않고 모두 내어주는 것
죽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한 사랑, 삶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 향한 열정, 삶이자 사랑

정호승 시인은 <사랑하다 죽어버려라>는 시집을 냈다. 이런 제목을 잡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덧붙인다. "사랑이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심지어 자기의 목숨마저 내어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내어주기는커녕 오히려 얻으려고만 한 제 모습이 그렇게 초라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제 어머니가 제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면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면서도 저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라는 단어를 눈물과 함께 부르게 된다. 닿을 수 없는 그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은 쉽게 말하지만 쉽게 닿을 수 없다. 아니 끝내 닿을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하는 말이지만, 하나님이 아니면 닿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지만, 십자가의 사랑에는 도저히 닿을 수 없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십자가 사랑을 만난 베드로, 대답하지 못했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단순히 짝사랑 이야기로만 볼 수 없다. 그 속에서 사랑의 크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으로도 다 채우지 못한 사랑.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삶으로 사랑을 채워간다.

평생, 다 하지 못한 숙제처럼. 그리고 매일 열어 보아도 다 열지 못하는 선물처럼. 부담감을 가지고, 벅참을 가지고.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은 걸어서 별까지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룰 수 없는 것을 향한 열정,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사랑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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