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한나 무어는 "용서는 마음의 경제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용서는 분노의 비용을 절감시켜 영혼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다(It saves the expense of anger, the cost of hatred, the waste of spirits)."라고 주장합니다. 참으면서 용서하는 것이 분노와 증오의 비용을 없애고 영혼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쌓이고 쌓인 마음의 고통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것이 용서의 힘입니다.
용서는 신앙생활에 중요한 개념입니다. 용서는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며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의미이고(눅23:34), 예수님 메시지의 핵심이었습니다(눅11:14).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용서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사항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 자신을 용서하심과 같이 나도 용서하여야 합니다(엡4:32). 만일 우리도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습니다(마18:35). 이 말씀에 대한 해석학적 정리가 필요하겠지만 본문에서 주님은 용서 실천을 강하게 도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용서를 의무로 간주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의 용서 범위는 더 도전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숫자적인 490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없는 용서를 말씀합니다. 현대는 용서에 인색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반격하고 복수하겠다는 각오로 삽니다. 용서하거나 양보하려 않습니다.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심리학과 에버렛 워딩턴 교수는 1955년에 어머니가 살해되는 고통을 경험합니다. 청소년 강도들에 의한 피살이었습니다. 밤새 어머니가 살해되는 장면이 떠올라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에버렛은 '용서'를 공부하고, 용서에 대해 가르치며, 용서에 대한 글과 책을 쓰고, 여러 나라를 다니며 용서에 대해 강연을 하고 또 용서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막상 자신은 용서하고 싶지 않았답니다.
용서는 큰 도전입니다. 용서를 시도해본 사람은 용서가 쉽지 않음을 압니다. 우리는 용서 받아야 하고, 용서해야 할 연약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용서란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인간에게 불가능한 용서!'를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연약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서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에버렛 워딩턴 박사의 고민이 남의 일이 아닙니다. 아마 이 글의 독자 중에 상당수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원수"들이 있을 것입니다. 목사인 필자에게도 불가능해 보이는 용서의 문제가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용서는 우리 인간들의 것이 아닙니다. "실수는 인간의 것이요, 용서는 하나님이 하는 것이다(To Err is Human, To Forgive is Divine.)" 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소관사항입니다. 용서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용서는 내 결심과 내 능력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은혜로서 용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게 임한 용서의 의미를 알 때 용서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서의 용서를 이해할 때 우리도 누군가를 용서할 힘을 얻게 됩니다. 용서하기 힘들 때,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부터 은혜로 받은 용서를 생각할 때 용서받은 자의 감격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를 입은 자의 자존감과 당당함을 갖습니다. 타인을 용서하는 것은 용서받은 자의 당당함과 부유함을 가질 때에 훨씬 쉽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셋째 '용서받은 채무자의 용서!'의 부담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빚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빚진 자입니다. 아울러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용서받은 용서의 빚진 자입니다. 이 빚진 자의 마음이 사명감이 됩니다. 바른 신앙인은 빚진 자의 채무감이 있습니다. 빚진 자의 채무감이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독일인 아버지와 월남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졸지에 고아가 된 소녀는 중국 식당에 팔려갑니다. 죽지 못해 사는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미국 군사 고문관의 양녀로 미국에 옵니다. 양부와 미국 정부의 도움으로 공부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교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빚진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칩니다. 1985년 올해의 교사라는 상을 받은 테리 도저(Terry Dozier)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빚진 자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정리하면 신학적 용서의 개념은 우리는 용서해야 하고, 그 용서는 하나님께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용서를 결심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완전한 용서는 우리 능력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서를 해야 합니다. 용서가 우리들의 심각한 고민이 되는 이유도 하나님의 명령인 까닭입니다. 나아가 용서의 최종 결정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용서하는 자의 마음도 용서받을 자의 마음도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믿고 맡겨야 합니다.
행복 디자이너 강태광 목사 (World Share US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