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제자들, 안식일 예배 후 다시 모여서 '만찬'
일요일이 쉬는 날 되면서 안식일 쉼 계명과 연결
일요일의 역사
후스토 L. 곤잘레스 | 이여진 역 | 비아토르 | 314쪽
코로나19 사태는 '온라인 예배'와 '가정 예배', 각종 모임 취소 등 기독교인들에게도 각종 신앙생활의 변화를 안겨주고 있다. 가장 주된 논란은 역시 '주님의 날'에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주일성수'에 대한 문제로 모아진다.
교회 역사가 후스토 L. 곤잘레스 박사의 <일요일의 역사>는 기독교인들이 초대교회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왜 일요일에 예배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피고 있어, 작금의 논란을 이해하고 대처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책을 통해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을 바라보고 기념하면서 누린 즐거움과 흥분을 재발견하는 것, 기쁨과 기념의 날이 안식의 날이 되고, 그 다음 엄격한 금욕의 날이 된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주일성수' 비상상황인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더불어 "기독교에 대한 무관심 또는 적개심마저 더 커져가는 이 21세기에, 똑같이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살아가던 시대의 교회가 일요일을 대하던 시각들이 우리 시대에도 어느 정도 도움과 영감이 될 수 있음을 발견"하는 일도 지금 우리에게 간절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은 '주일'에 예배드리지 않았다. 초창기 예수의 제자들뿐 아니라 몇 세대 동안 기독교인 대부분은 유대인이었고, 그들은 '안식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리고 회당에서의 유대교 예배에 계속 참여했다.
예수의 부활은 '안식일로부터 첫째 날', 즉 '그 주의 첫째 날' 일어났다. '주의 날(the Lord's day)'은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종말론적 뉘앙스가 담겨 있다.
이후 2세기 중반쯤 그리스어권 교회에서는 '키리아카(주의 날)'라는 용어를 일주일의 첫째 날 이름으로 사용했고, 라틴어권 교회도 지금의 일요일을 '도미누스(주)의 날', 도미니카(Dominica)로 지칭했다.
그 날은 로마 제국에서 '태양의 날'이었다. 당시 기독교인들은 태양 숭배를 거부했지만, 이따금 당시 사람들처럼 주의 날을 기꺼이 '태양의 날'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그리스도인들이 비신자들을 위해 주일을 '일요일'이라 말하듯.
로마 제국이 기독교화되면서 교회 지도자들은 요일 이름에서 이교도와의 연관성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많이 했지만, 라틴어권이나 게르만어권에서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고, 이교적 요일 이름을 유지하는 일에 대한 기독교의 반대도 시들해졌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안식일날 유대인들과 함께 예배하면서도, '주의 날'에 떡을 떼기 위해 모이는 고유의 관습을 행했다. 유대교는 저녁(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겼으므로, 그 모임은 보통 '안식 후 첫날(주의 날)' 저녁 만찬에 있었다.
그러나 점점 이방인들이 늘면서, 저녁 만찬 시간에 모이기 힘들어졌다. 이들 대부분 노예, 가정주부, 예속 평민, 피고용인 등이어서, 아직 할 일이 남은 저녁보다는 할 일이 없는 해가 뜨기 전, 이른 아침을 선호했다.
더구나 로마인들은 유대인과 달리 자정부터 다음 날 자정까지가 하루였기에,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였던 '토요일 저녁'은 아직 '주의 날'이 오기 전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주의 날'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었고, 이는 곧 '새 창조'가 시작된 날이었으며, (안식일 다음날이었기에) 창조의 첫날이었고, 한 주의 '여덟째 날'로서 '만물의 완성을 가리키는 (종말론적) 소망의 날'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그날은 기쁨과 승리를 기념하는 날이었기에, 금식과 무릎 꿇기를 삼갔다. 그날에 드려진 예배의 핵심에는 포도주와 떡을 나누는 일을 중심으로 하는 식사가 있었고, 떡과 포도주를 사복음서에 나오는 형식에 따라 축사하고 떼어서 줬다. 그러나 성찬은 세례를 받은 이들만 참여할 수 있었다.
세례를 받기 전 '예비 신자(catechumens)'들은 기도와 찬양, 성경 읽기와 해석으로 구성된 예배의 첫 부분에 참여한 뒤, 성찬식이 시작되기 전 흩어졌다. 이 '말씀의 예배와 식탁의 예배'는 결국 '예비 신자 미사(Mass of catechumens)와 신자들의 미사(Mass of believers)'로 발전했다. 세례를 받는 데는 지금과 달리 많은 교육과 훈련이 뒤따랐고, 기간도 당연히 오래 걸렸다.
이러한 관습들은 "존귀한 태양의 날에는 각 도시 재판관과 백성을 쉬게 하고, 모든 일터의 문을 닫게 하라"는 내용의 321년 3월 7일 '콘스탄티누스 칙령'으로 변화한다. '주의 날'은 공식적으로 휴일이 됐다.
저자는 "이 칙령은 일요일의 역사에 참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제껏 기독교인은 일요일 의례를 안식일에 쉬라는 계명과 관련짓지 않았다. 쉬는 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며 "일요일이 쉬는 날이 됐으므로, 교회법도 일요일에 허용되는 활동과 금지되는 활동을 정했다. 이제 일요일이 안식일의 쉼과 연결됐고, 그 쉼을 명하는 계명과도 연결된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분석했다.
이후 책에서는 기독교 예배에서 일어난 변화들과 안식일에 대한 기독교의 관점, 중세 시대 일요일 의미의 새로운 변화, 그리고 종교개혁과 그 이후 현대까지 '주의 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곤잘레스 박사는 논의를 맺으면서 "지금껏 말한 역사 전체를 톺아보면서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분별해 보자면, 일요일이 사회 전반에서 점점 더 세속화되고, 그와 동시에 교회 안에서는 일요일이 그 중요한 의미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2020년 3월,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전체가 일요일을 홀대할수록, 믿는 이들은 더 환대할 것이다"라는 저자의 '예언(?)'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일요일'에 대한 부분만 발췌한 저자의 안목이 놀랍고, 이를 새신자들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평이하게 풀어쓴 작법도 놀랍다. 각 장 끝에서 친절하게 주요 내용을 정리·요약해주고 있다. 원제 'A brief History of 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