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교회당서 설교하는 목사 심정 참담할 것
이 정도 위협에 앞다퉈 교회 문 스스로 폐쇄...
마음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 가능했다
한국의 많은 대형교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폐쇄한 대한민국 교회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 일어났다. 과거 일제시대 때 핍박 때문에 혹은 6.25 전쟁으로 할수 없이 교회 문을 닫은 적은 있어도 교회가 스스로 먼저 나서서 주일예배를 중단하고 교회를 폐쇄한 사건은 처음 있는 일이다.
물론 교회가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온상이라는 사회적 지탄을 피하고, 성도들의 건강을 배려해서 내린 특단의 조치이다. 어떤 교단에서는 우한코로나 확산이 심각해질 때에는 아예 교회 문을 닫고 온라인으로 대체하라는 행동지침까지 나왔다. 미국에는 벌써부터 문을 닫은 교회가 나타났다. 미주 한인교회들 중에도 주일예배가50%수준으로 떨어진 교회들이 많다고 한다. 지금 텅 빈 교회당에서 인터넷으로 매 주일마다 설교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심정이 얼마나 참담하겠는가?
그런데 과연 예수님 앞에 정당한 조치인가? 성경에는 그 정도 위험에서 공동체 예배를 포기한 예가 나오지 않는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하 묘지, 지하 동굴 속에 들어가서 죽음을 무릅쓰고 공동체 예배를 유지했다.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총칼 앞에서도 교회문을 닫지 않았다. 차라리 함께 모여 예배드리다가 감옥으로 끌려가고, 불을 지르면 그 안에서 타죽을지언정... 먼저 교회를 폐쇄하는 일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모이기를 폐하려는 사회적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모이기를 힘썼다.
이것은 교회당 예배를 절대시하는 말이 아니다. 비상시에는 반드시 교회당에서 모여서 예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피하기위해서 가정에서 모인 것은 잘한 일이다. 중세시대 페스트가 창궐할 때 하나님께서 무조건 보호해 주시겠지 하면서 막무가내로 교회당에 모여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믿음이 아니고 미신적일 수 있다. 진정한 예배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예배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정도의 위협 앞에서 앞다투어 교회 문을 스스로 폐쇄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태도가 과연 올바를까? 중세시대의 페스트가 창궐하던 때를 비교하면서 정당화시키는 글을 읽었다. 그렇지 않다. 잘못된 비교이다. 당시 급성페스트는 감염된 지 24시간 내에 죽었다. 밤중에 장례식에 온 친구들과 장례식을 집례한 신부가 다음 날 시체가 되는 상황도 있었다. 치사율도 50-80%나 되었다. 지금과는 전혀 다르다. 오늘날 인터넷 예배라는 대체 수단이 있다고 너무 성급하게 교회를 폐쇄하는 것이 아닐까?
얼마든지 다른 선택이 가능했다. 만약 성경의 원리대로 주일예배를 사수하겠다는 마음만 있었다면 어떤 비용과 수고를 감수하면서 철저하게 방역하고 최고의 위생적 조치로 합리적 수준으로 감염을 예방하면서 교회를 폐쇄하지 않는 길이 얼마든지 있다. 비록 소수지만 목숨 걸고 함께 모여서 주일성수하고 싶은 성도들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구속의 은혜에 감격해서 모든 영역에서 성경의 원리대로 살고 공동체 예배로 성수주일을 하려는 이들의 순수한 믿음을 존중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회적 공동선, 하나님의 선과 충돌하는 부분 있다
오늘날 성도의 삶, 초대교회와 비교할 때 너무 멀어
그리스도인들은 목적론적(공리론적)으로 사고하면 위험하다. 사회적 공동선이(심지어 교회내의 효용성까지도) 하나님의 선과 충돌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원리에 따라 의무론적으로 사고해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세상 흐름과 역행해도 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는 무리들이다. 성경에서 "모이기를 폐하지 말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말아야 한다. 정말 예수님의 교회라면 어떤 위험과 위협에서라도 스스로 문을 폐쇄할 권리는 없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교회 폐쇄 결정을 보시면서 속 시원한 마음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약 선지서에도 반복해서 나오듯이, 주님은 웅장한 교회당에서 멋진 음악과 함께 십자가 복음의 알멩이가 빠진 설교를 듣고 감동하는데... 삶은 전혀 변하지 않는 오늘날 많은 한국교회의 예배를 결코 기뻐하지 않으셨을 것 같다.
오늘날 성도들의 삶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삶과 비교해 볼때 너무 멀리 나갔다. 주일예배 때마다 가슴을 찢는 회개와 통회하는 심령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예배 때마다 하나님의 엄위한 임재 때문에 불신자들도 거룩한 두려움에 휩싸여 "과연 여기에 하나님이 계신다" 외치는 교회가 얼마나 있을까? 자신의 죄 뿐만 아니라 '자기 의'까지 철저히 회개하면서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예수님이 채찍을 들고 성전을 파괴하신 복음서의 사건을 떠 올릴 때마다 말 1:9이 생각난다. 말1:9은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요약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짓예배가 얼마나 역겨우셨으면 "성전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을까? 예수님은 이런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고 2,000년 전에 직접 채찍을 들고 행동으로 보여주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 한국교회 내의 혼합주의, 좌경화, 자유주의, 세속화, 음란, 교권주의, 물질주의, 성장주의 등의 타락상이 극에 달한다. 그런 가운데 참된 회개도 없이 그저 주일마다 형식적으로 드려지는 수많은 예배를 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 어쩌면 이번 기회에 아예 영원히 성전문을 닫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안 하셨을까?
모이기를 더욱 힘쓸 때... 마귀 전략에 말리면 안 돼
정말 지역사회 사랑한다면 감염지역 적극 찾아가야
하나님께서 지금 마지막 때 각 나라의 교회를 흔들고 계신다. 앞으로 두 가지로 갈라질 것이다. '흔들리는' 교회와 반대로 이런 동요 때문에 오히려 '더 견고해지는' 교회다. 우한코로나 사태는 앞으로 교회에 불어닥칠 거대한 환란과 위협에 대한 작은 구름으로 받아드려야 한다. 머지않아 거대한 태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올 것이다. 마지막 때 교회는 환난에 대비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 목회자들의 가장 큰 임무는 성도들을 환난을 통과해서 승리하는 정복자로 키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모이기를 더욱 힘써야 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마귀의 전략에 말려들면 안 된다. 며칠 전에는 좌파들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까지 나서서 종교집회 자제를 권고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보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분당의 모교회를 다닌다는 이모 지사는 "우한코로나 확산을 막기위해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까지 검토한다"고 SNS에서 밝히는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가 치밀었다.
대형교회들이 스스로 문을 닫는 모범을 보였으니 아직도 문 닫지 않은 다른 교회들에게까지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근거가 생겼다. 이제는 정부가 당당하게 교회를 향해 문닫으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헌법 상의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고 교회를 말살하려는 악한 시도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제는 모든 교회가 일어나서 함께 저항해야 할 때이다.
지금은 한국교회의 가장 큰 위기다. 유일한 대책은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다.이미 폐쇄한 교회들은 빠른 시일 내에 다시 여는 것이 주님의 명백한 뜻이다. 주일예배 뿐 아니다. 주중의 소그룹 기도회 모임까지 오히려 더 확대해야 한다.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가장 지혜롭게 철저한 과학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 동시에 교회가 감염의 온상이 되지 않도록 하나님께 필사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특징은 '매일' 모였다. 날마다 성전에서 집에서 모였다 (행2:46). 요새는 인터넷 온라인 모임이 가능하므로 얼마든지 '매일' 기도회로 모일 수 있다. 온라인 집회는 물리적 집회를 대체할 수는 없지만 보완하는 좋은 도구이다. 함께 모여서 기도해야 부흥이 임한다. 지금은 위기에 처한 나라와 교회를 위해 회개하고 통회하면서 기도할 때다! 지금 교회가 겼는 어려움은 주님께서 한국교회를 사랑해서 주신 귀중한 기회라고 믿는다. 지금은 함께 모여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할 때이다.
끝으로 교회가 정말 지역사회를 사랑한다면 감염을 피하기 위해 교회 문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감염지역으로 찾아가서 그들 속에서 위로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AD 165-180년 안토닌 전염병(천연두)이 창궐해서 5백만명이 죽었다. AD251-266년에 키프리안 전염병이 다시 창궐해서 소위 Pandemic이 되어 로마의 각 도시들을 황폐화시킬 때 고위 관리들 심지어 의사들 까지 다 도시를 떠났다고 한다. 감염된 사람들의 50%가 죽었다.
그러나 교회사를 보면 두 시대 모두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가 버린 환자들에게 다가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죽어가는 환자들 바로 곁에서 따뜻하게 희생적으로 돌보았다. 그 결과 당시 전염병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죽었다고 한다. 그들은 목숨 걸고 이웃들을 섬겼고 심지어 적들까지 돌아 보았다. 그러다가 대신 희생되어서 평온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죽어갔다는기록이 있다.( 260년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 감독의 부활절 설교)
로드니 스탁(Rodney Stark)은 "The Rise of Christianity" 책에서 로마시대에 기독교가 급격하게 확산된 이유를 초대교회 성도들이 이런 죽음의 위험속에서도 기꺼이 자신을 던져서 희생적인 사랑을 실천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한국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기 원하는가? 지금 굳게 닫힌 교회 문을 다시 열고 성도들을 기도로 무장시켜야 한다. 그리고 두려움 속에 휩싸인 사회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그들을 돌보고 위로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의 실천이고 선교적 삶이다.
현 사태는 주님의 경고... 철저히 회개하고 회복되길
이번 우한 코로나 사태는 주님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주시는 경고이다. 이 경고를 바로 받아서 바르게 반응하면 오히려 큰 축복으로 변할 것이다. 아직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세계선교의 역할이 너무 크다. 주님께서 결코 이대로 무너지게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온 교회들이 다시 깨어나 철저하게 회개하고 신약교회로 회복되는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한다.
김궁헌 목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최대 한인교회인 마라나타비전교회의 담임으로, 전 경희대 교수이자 GAP(세계협력선교회) 공동대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