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친중 역사: 국가와 민족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
학창 시절 국사 교육을 받을 때 가장 많이 들어온 말 중 하나는 한민족이 '끊임없는' 외침에도 불구하고 헌신적으로 국난 극복에 힘써 온, 자주적 민족성을 지닌 족속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 나라 사람들 대다수는 이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
그런데 외부에서 보다 객관적이고 학문적인 관점으로 보기에 이런 믿음은 일련의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역사적 피해의식을 양산하는 주된 원인으로 확인된다.
브리검영 대학교 명예교수이자 세계적인 한국학 석학으로 손꼽히는 역사학자 마크 피터슨(Mark Peterson)의 논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적은 수의 대규모 외침을 받은 나라이며, 사회 변혁의 정도 역시 미미했던 나라인 것으로 확인된다.
여기에는 지정학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피터슨의 견해에 따르면,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가 진정으로 외적의 침략에 취약해진 시기는 구한말 대원군 시절, 영국과 미국, 러시아 등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한국에 접근하면서부터였다.
그 이전까지 한국이 국가 괴멸의 위기를 맞이할 만한 대규모 침략을 받은 경우는 원나라의 침략과 임진왜란 두 차례였을 뿐이라고 피터슨은 밝힌다. 나머지는 왜구나 여진족을 맞아 싸운 해안 및 국경 지역의 소규모 국지전이었을 뿐, 흔히 생각하는 대규모 외침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결국 구한말 이전까지 한국은 서쪽으로는 중국이, 동쪽으로는 바다가 외적의 침략을 막아준 셈이다.
그래서일까. 한국인들의 의식 깊은 곳에는 대국이자 상국(上國)인 중국에 의지하면 나라의 안녕과 문화적 번영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수백 년 이상 자리잡아온 듯하다.
세계사의 거대한 변혁의 흐름을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한 중국의 힘에 기생하는데 완벽하게 길들어져 버린 것이다.
안보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화와 사상마저 중국에 의존하기를 수백 년,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 칭하던 습성이 정신 깊숙이 박힌 나머지, 오늘날마저 친중사대 외교에 나라의 미래를 거는 정치 지도자들이 용인되고 환영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 중국의 정치적, 문화적 영향력에서 한 차례 제대로 벗어난 시기가 있었으니, 일제시대 40여년과 6.25 전쟁 이후 한중수교 전까지 40여년, 도합 80여년 정도이다.
그러나 그 정도 시간으로는 수백 년간 몸에 스며든 중국 숭배 습성을 버리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중국 우한에서 창궐하기 시작한 역병에 국민들이 신음하고 죽음을 맞이하는데도, 현 정권 지도자들은 집요하게 중국을 옹호하는 외교적 스탠스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이 거꾸로 중국인들로부터 바이러스 보균자 취급을 받으며 격리되는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
심지어 국내에 이런 행태를 옹호하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하니, 친중사대는 한국인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DNA, 밈(meme)이 되어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친중 현실: 자주적 주권과 종교 자유를 위협하는 위태로운 길
우리나라는 분명 소국이다. 영토가 작고, 인구도 적고, 천연자원도 많지 않고, 식량조차 자급자족하지 못해 다량 수입에 의존한다(식량자급률이 48%에 불과하다).
자력으로 미국과 같은 패권국가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패권국가들, 제국 수준의 힘을 가진 나라들과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나라의 존망을 좌우한다.
국제관계 현실을 봤을 때, 이렇게 강대국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지난 역사를 봐도 그렇고 오늘날의 현실을 봐도 그렇고, 실질적으로 완벽한 자주적 국권을 누리는 나라는 전 세계에 그리 많지 않다.
대다수 국가들은 강대국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쓰며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애를 쓴다. 우리나라 역시 세계화 조류와 국제무역에 편승하는 데 나라의 명운을 걸고 있는 만큼, 패권국가들의 눈치를 보는 것이 큰 흠이 되지는 않는다. 이는 생존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다.
다만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한국은 중국 이외의 외교적 선택지를 갖고 있다. 그것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국을 압도하는 세계 최강대국을 제1의 우방으로 삼고 있다. 이 거대한 외교적 자산은 해방 이후 우리 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발전과 기독교 부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왔다.
반면 중국과 밀착된 외교는 잠시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지 모르지만, 문화적 측면이나 정치적 측면에서 한국 사회 전반에 어떤 발전적 영향을 주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중국과의 정치적, 외교적 밀착 관계가 국민들의 역병 확산을 방지하는 데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조차 어렵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만 분명하게 확인되고 있을 따름이다.
세계사적 조망 하에 우리 근현대사를 잠시만 돌아보더라도, 현재 무엇이 진정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과 그들을 옹호하는 다수의 사람들은 반대편의 길을 선택하려 한다. 그 이유는 이미 실패가 확정된 정치사상, 공산주의에 대한 집착 때문이다.
외부의 것에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며, 소모적 평등주의를 추종해온 우리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공산주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수백 년간 상국으로 섬겨온 중국이 선택한 정치사상인 까닭에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이 배가된 측면도 있다.
우리 한민족이 진정으로 자주적인 국권을 세워가는 국가가 되려면, 우선 중국에 대한 환상부터 극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19세기까지 우리 조상들에게는 중국에 기생하는 것이 불가피한 생존 전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20-21세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여전히 구시대적 발상에 기대어 친중사대 외교에서 우리 민족의 미래를 찾는다. 실상 이런 행보는 우리를 다시금 중국에 빌붙는 기생충으로 만드는 불행을 초래한다.
영화 <기생충>의 플롯은 우리 한국 사회 내부의 부자와 빈자 사이 현실을 고발한다. 하지만 이런 플롯은 현 중국과 한국 사이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혀질 수 있다.
부유한 박 사장 집에 빌붙는 것에 미래의 운명을 건 기택 가족처럼, 한국 역시 중국으로부터 기생충과 바이러스 취급을 받으면서까지 국운을 내걸고 있는 것이다.
이번 우한 폐렴 사태와 그에 대처하는 현 정권 지도부의 대응은 이런 현실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한 폐렴 발병 원인을 자국민에게 돌리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작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이런 현실은 우리 한민족의 자주를 위해서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있어서도 커다란 불행이다. 중국식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국가 자체와 그 국가를 지휘하는 공산당 지도부의 힘과 권세를 숭배 대상으로 내세운다. 때문에 유일하신 하나님을 창조주이자 구세주로 믿는 기독교 신앙을 반드시 철폐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한다.
한국교회는 이런 류의 불행을 일찌감치 일제 치하였던 1930-1940년대에 이미 겪은 바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수호하는 신토 최고신이자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御神), 그리고 그 대리인인 일왕과 일본에 충성한 영혼들을 숭배하는 국가 이데올로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회는 고문과 순교, 박해와 교회 분열이라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받은 바 있다.
다수 국민들이 이번 우한 폐렴 사태 때문에 정부에 분노하는 것은 단지 이 전염병이 중국으로부터 유입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위기 상황 가운데서도 중국에 기생하려는 구시대적 습성 때문에, 자국민의 건강과 생명은 외면하고 중국의 입장만 대변하는 태도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국민의 기본 인권, 그리고 교회의 신앙 자유를 존중할 줄 모르는 중국식 전체주의 체제와 문화에 재차 종속될까 우려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런 우려가 기우가 아님은 중국 당국이 한국인들을 격리시키고 바이러스 취급하는 행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
진심으로 우리나라가 가능한 한 최대한도의 주권과 자유를 누리고자 한다면, 그리고 한국교회가 온전한 신앙의 자유를 지속적으로 누리고 싶다면, 중국과 같은 전근대적 전체주의, 국가주의, 공산주의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함으로써 문화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잠식되어 가는 우리 나라의 위태로운 현실에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