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과 조국'에 '충성자금' 바치기 위한 희생?
청부 노동자, 단체합숙 노동자들 만나보니...
건설현장 크레인마다 북한 노동자들 아픔이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강동완 | 너나드리 | 480쪽
<평양 밖 북조선>의 저자 강동완 교수(동아대)가 러시아 현지에서 만난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의 삶과 인권을 글과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폭로한 책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를 펴냈다.
이 책에는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자금'을 위해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저자는 그들이 살며 일하는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 러시아 연해주에서 부단히 걷고 달려, 그들과 직접 인터뷰했다.
1부 '삶을 보다'에서는 그들이 타국에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당과 조국을 위한 충성자금이란 무엇인지, 어느 건설현장에서 일했는지 등을 기록했다.
러시아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주로 체류하는 곳은 블라디보스토크(Vladivostok), 우수리스크(Ussuriysk), 하바롭스크(Khabarovsk), 사할린(Sakhalin) 등지다.
저자는 러시아에서 그들의 마치 노예와 같은 힘겨운 생활과 노동실태를 알게 된 뒤, 북한 주민들이 해외 노동자가 되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고 한다. 이들은 강제로 차출되는 게 아니라, 뇌물을 써가면서 '발탁'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들의 출신 지역도 대부분 '성분이 좋은' 평양이다.
"이러한 의문은 그들이 북한 체제와 정권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만약 그들이 정말 '충성자금'이라는 표현처럼 '당과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그렇게 열악한 노동 상황을 참고 견딘다면, 정권에 대한 충성도와 체제 내구력은 매우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노동자로 나오려면 간부 중에 친분이 있어서 뇌물을 바치되, 거주지는 반드시 평양인 사람들인 셈. 그리고 가족들이 반드시 평양에 남아있어야 한다. 개인별로 차이는 있지만, 뇌물은 대략 3천 달러 정도를 바친다고 한다.
저자의 현지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에 체류 중인 북한 노동자들은 충성자금 '계획분' 때문에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개인별로 돈을 벌어 회사에 바치는 청부 노동자와 회사 소속으로 단체합숙을 하는 노동자들이다.
'청부 노동자'의 경우를 살펴보자. 러시아에 단체로 파견된 후 2-3년이 지나면 대략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언어를 습득하고 숙련공이 된다. 숙련공은 특정 분야의 일을 전문적으로 하기보다, 배관부터 타일, 전기, 수도, 인테리어까지 모든 분야의 일을 다 할 줄 아는 형태다.
러시아에 파견된 회사는 북한 당국에 '계획분'을 바쳐야 하는데, 이 숙련공들을 '청부 노동자'로서 개별적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숙련공 청부 노동자가 회사에 바쳐야 하는 '계획분'은 매월 1천달러 규모이며, 바치고 남는 금액은 자신의 수입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러나 '청부 노동자'직을 유지하기 위해 중간 관리자와 고급 관리들에게 별도로 뇌물을 바쳐야 해 본인의 수입은 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더구나 1천달러는 일당으로 치면 30일을 꼬박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인데,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3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더욱 큰 문제는 러시아 지역의 날씨 사정을 고려할 때, 일할 수 있는 날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겨울이면 건설 일감이 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러시아 현지 노동자들과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온 해외 노동자들과도 일감을 두고 경쟁해야 한다.
힘들다고 말하면 "조국에 돌아가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몇 년 동안 일해서 돈 한 푼 없이 돌아갈 수는 없기에, 이를 악물고 참고 또 견뎌낸다는 것.
강 교수에게 한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와서 아무리 뼈 빠지게 벌어도 다 양반놈들한테 가지, 우리한테 돌아오지를 않아요. 노동자들한테는 차려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조선은 간부들의 세상이에요."
여기에 청부 노동자들은 매주 회사 합숙소에서 이뤄지는 '학습, 생활총화'에 참석해야 한다. 그곳에서는 주로 '김씨 일가의 위대성'을 반복해서 교육받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낯선 타국에서 왜 이렇게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을까. "조선 돈 80만원이 100달러에요. 100달러만 벌어오면 가족이 함께 먹고 살 수 있지 않나 생각하고, 지방 사람들이 지원을 해요. 근데 이제 평양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아요."
회사 소속으로 단체합숙을 하는 노동자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들은 파견 2년 이내 사람들로 대형 건설현장에서 합숙하고 있으며, 거의 감금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의 월급은 50달러가 채 되지 않는데, 그마저 생활비 명목으로 다시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평양에서 출발할 때부터 소요된 모든 경비를 갚아야 해, 실제로 손에 쥐는 건 거의 빚뿐이다. 그들이 단체 구매해 지급받는 '솜옷'에는 솜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한 노동자는 "생활하면서 힘이 드니까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고, 치약과 비누 같은 소모품도 필요하다"며 "할 수 없이 남에게 돈을 꿔서 사니까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증언했다.
저자는 시내버스로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누비면서 공사장이나 북한 노동자들이 보이는 곳이면 무작정 내려 그들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그러면서 북한 노동자들과 직접 소통한 내용들을 책에 고스란히 남겼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사장 크레인이 선 곳 어디나 북한 노동자들을 볼 수 있다. 구소련 시절에 건설된 낡은 건물들을 허물고 새롭게 도시가 바뀌고 있다. 그 변화의 시작에 북한 노동자들의 절규가 녹아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른 블라디보스토크의 하늘 아래, 건설장 크레인이 위용 있게 섰다. 북한 노동자들의 아픔도 함께 허공을 향한다."
저자 강동완 교수는 앞선 9월 북한 담배 200여종의 색상과 디자인, 서체와 콘텐츠, 브랜드에 담긴 정치선전을 탐구한 책 <북한담배: 프로파간다와 브랜드의 변주곡>도 펴냈다. 북한 담배에 대해 일반적 상품가치로서의 브랜드와 정치사상 관점에서 살폈다.
'담배'에 주목한 이유로는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지키자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작 북한 사회 깊숙이 자리한 자본주의 행위 양식은 이미 사회 변화의 주요한 동력"이라며 "정치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상표를 만들지만, 동시에 소비자를 의식해 디자인과 색상, 서체, 포장형태 등 브랜드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북한 당국의 이중적 고민이 담배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전했다.
북한 사회를 가늠하는 또 하나의 창(窓)으로서, 북한담배에 감추어진 선전(propaganda)과 또 다른 선전(advertise)이 어떤 변주곡으로 울리는지 파헤친 것이다. 저자는 이를 위해 <러시아에서 분단을 만났습니다> 속 내용처럼 북한담배를 일일이 구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저자 강동완 교수는 위험을 무릅쓰고 북·중 국경과 러시아 연해주 등을 계속 누빌 정도로 '통일'과 '북한 주민들'을 위한 일에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다. "통일을 보지 않고 죽는 일 따위는 결코 없을 것"이라 말하며, '통일 크리에이티브'로서 '문화로 여는 통일'을 주제로 북한 내 한류 현상, 남북한 문화, 사회통합, 탈북민 정착지원, 북한 미디어 연구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북중접경 시리즈 <그들만의 평양: 인민의 낙원에는 인민이 없다>와 <평양 밖 북조선: 999장의 사진에 담은 북쪽의 북한>, <북중 접경지역 5,000리길: 그곳에도 사람이 있었네>, 그리고 <김정은의 음악정치: 모란봉악단, 김정은을 말하다> 1·2권, <엄마의 엄마: 중국 현지에서 만난 탈북여성의 삶과 인권>, 2016년 세종도서 선정작 <사람과 사람: 김정은 시대 북조선 인민을 만나다>, <한류, 통일의 바람>, <한류, 북한을 흔들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