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양들 1

이정명 | 은행나무 | 280쪽

밤의 양들 2
이정명 | 은행나무 | 256쪽

군복무 시절, 가장 하기 싫었던 건 불침번을 서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주로 바깥 입구의 보초를 섰었는데,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루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을 잘 때우기 위해 별자리 책을 사서 읽으며 밤하늘에 보이는 별을 가지고 별자리를 맞추며 의미를 생각하면서 보냈습니다.

재미있는 건 별자리를 보면서, 한 번도 수긍한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책에서 나온 별자리도 찾을 수 없을 뿐더러, 선을 다르게 이으면 다른 그림이 되기 때문입니다.

팩션(사실과 허구의 조합)이라는 건 별자리와 같습니다. 역사적 사실이라는 별들을 작가가 상상력을 가지고 선을 그어, 하나의 별자리를 만들고 의미를 부여한 겁니다. 작가가 어떤 선을 잇느냐에 따라 별자리의 모양이 달라지고 의미도 달라집니다.

작가 이정명은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처럼 역사적 사실을 기반 위에 두고 문학적 상상력을 얹은 팩션 소설가로 유명합니다. 팩션은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작가는 분명히 소설이기에 '가짜'라 하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일을 근거로 두고 그것을 사실처럼 여겨지게 쓰다 보니 '진짜'로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책 <밤의 양들>도 팩션 소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일주일 전 예루살렘에서 4일 연속 네 번의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집니다.

성전수비대 대장 조나단이 이 사건을 풀 적임자로 로마인 백부장을 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마티아스를 빼내어, '사건을 해결하면 사면해 주겠다'는 조건으로 수사를 맡깁니다. 여기에 로마인 총독 빌라도도 본인의 출세를 위해 이 사건을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여겨 로마인 현자 테오필로스를 예루살렘에 보냅니다. 팩트(사실)는 예수님이 못박힌다는 것이고, 살인사건과 인물들은 픽션(허구)입니다.

팩션 소설의 핵심과 지향점은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팩트'로 믿게 해야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작가가 '이것은 소설이니 허구다, 가짜다'라고 해도, 독자가 읽으면서 '이것은 가짜다!'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면 그 팩션 소설은 실패한 소설입니다.

없는 사건이고 없는 인물이지만, '실제로 일어났고 그런 인물이 있었을거다'라고 확신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작가의 많은 조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실제로 일어났겠는가. 그런 인물이 실제로 있었겠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이 소설은 성공적입니다.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사건과 인물이 등장하고, '가짜다'라고 하기엔 사실적인 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 읽고 나면 '그럴 법하다'하는 수긍이 듭니다.

작가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 예수님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근거하여, 복음서 시대의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을 싫어했을 기득권자들에게 주목하여, 그들의 관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선을 이어 복음서를 이해하게 합니다.

복음서 중에서 특히 마태복음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특기를 살려, 알려주는 건 조금씩 알려주면서 끝까지 읽게 합니다.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이 작가의 전작들이 자주 생각난다는 점입니다. 특히, <뿌리 깊은 나무>가 그렇습니다. 기존 세력을 전복하는 자와 이를 지키려는 자의 대치. 전복하려는 자를 처리하는 지키는 자의 세력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 있으면서 거처를 지하에 둔 것, 사건을 처리하는 방식이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작가의 소설을 지난 2011년 드라마화한 ‘뿌리 깊은 나무’.
작가의 소설을 지난 2011년 드라마화한 ‘뿌리 깊은 나무’.

예수님이 자신을 수사하는 마티아스에게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기 위해 쓴 화살표 예화도 너무 현대적이면서 뻔해, 살짝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중간에 몇 번 실망하기도 하지만 끝에 가면서는 감동이 옵니다. 이 감동은 소나기처럼 퍼붓지 않고, 가랑비처럼 독자 모르게 잔잔히 스며들게 하는 감동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두 명의 죄수 이야기와 마지막 부분 마티아스와 함께 공조 수사한 테오필로스의 '변심'을 극적이거나 지나친 포장으로 처리하지 않고, 평범하게 한 것이 더 큰 감동을 줍니다.

제목에 대해 언급해야겠습니다. '밤의 양들', 여기서 양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의 죽음과, 그들이 왜 죽어야 했고, 그들이 왜 '낮의 양'이 아닌, '밤의 양'이 되었는지를 말하는 책입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영어 제목입니다. 우리나라 소설임에도 표지에는 영어 제목이 들어가 있습니다. 'GOSPEL OF MURDER', '살해된 복음', 복음이 스스로 죽었다(death)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죽임을 당했죠.

한글 제목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 대해 말하고, 영어 제목에서는 예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지켜보고 수사하던 자는 마지막에 가서 예수님을 따르게 됩니다. 죽지 않은 거죠. 죽었지만 살아난 거죠. 죽기 전보다 더 왕성하게 살아서, 많은 이들에게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놀랍다고 느낀 건, 작가의 시도였습니다. 작가는 대중 소설가입니다. 대중 소설가가 인기를 얻기 어렵고 흥행하기 쉽지 않은 '기독교 소설'을 썼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작가의 유명세와는 달리, 성적이 그다지 좋지는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성경의 빈 기록들을 메우는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특히 만화로 되어 있는 책들이 유명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건, 빈 기록을 메우는 상상력의 글은 소설가가 써야 한다는 점입니다.

'기독교 소설'은 기독교를 잘 알고 신학에 정통한 사람이 쓰는 것보다, '소설'을 잘 아는 사람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줍니다.

소설의 구조를 모르고 소설의 진행 방식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신학적인 조사를 한다 해도, 지극히 어려워 머리가 아프게 하거나 지극히 유치하게 그려내 어이없는 웃음만 나오게 하는 책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소설가가 쓴 상상력 속 성경이, 얼마나 무게감이 있으면서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전범이 될 겁니다.

모처럼 자신있게 소개해 줄 만한 품질 좋은 기독교 소설이 나와, 기독교 소설 애호가로서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꼭 읽어보기 바랍니다.

이성구(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