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엘에이 한인타운에서 5년을 목회한 목사에게는 고개를 숙여야 하고, 10년을 목회했다면 절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인 타운 목회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말이다. 정인호 목사는 예수마을교회를 2004년 LA 한인타운에 개척해 올해로 15년째 목회하고 있다. 어려움과 아픔도 있었지만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이 땅에 꼭 있어야 할 교회'를 바라보면서, 또 때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예수님으로 인해 행복한 교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의 행복한 목회를 들어본다.
정인호 목사(56)는 3대째 신앙으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기도 가운데 성장했다. 한국의 모(母) 교회인 중곡감리교회 고등부 시절 참석한 수련회에서 성령을 체험한 후, '목회자가 되겠다'고 하나님께 고백했다.
"그때는 목사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저녁 기도회에 참석했는데, 제가 정말 대단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 모든 죄를 당신의 보혈로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됐습니다."
정 목사는 1980년 감리교 신학대 입학 후, 1987년에는 감리교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에는 한국 만나교회에서 부목사 사역을 경험했고, 30대 중반이었던 1997년, 목회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 풀러 신학대로 유학을 왔다. 학업과 동시에 UMC 소속 한인연합감리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다. 이때 정 목사가 UMC에서 경험한 새로운 교회 구조는 예수마을교회 개척의 터전이 됐다.
"한국에서는 장로, 권사, 집사와 같은 유교적인 개념이 강한 직분제를 가지고 있는데, UMC 교회는 당시 직분제가 아닌 사역 위원회 위주로 직분에 관계없이 교회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감리교회는 임원 회장이 당연히 목사인데 UMC는 임원 회장이 평신도일 정도로, 수직적이었던 한국교회에 비해, 교회 구성원들이 매우 유기적이며 활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저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회의하는 사람이 일하고, 일하는 사람이 회의한다
정 목사는 '회의는 목사와 장로가 하고 일은 집사가 하는 수직적 교회'가 아니라, '회의하는 사람이 일하고, 일하는 사람이 회의하는 유기적인 교회'를 꿈꾸며 예수마을교회를 시작했다. 예수마을교회를 초교파로 시작한 것도 직분제 때문에 교회가 적지 않은 불협화음을 내고 타락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직분제 없이 교단에 얽매이지 않고, 복음적으로 설 수 있는 교회를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진 마음이 '또 하나의 교회가 아닌, 이 땅에 꼭 있어야 할 교회'였습니다. 많고 많은 교회에 플러스 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개척하기 전 100일 동안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교회라는 확답을 얻게 해달라고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목회의 길, 순종의 길
정 목사가 교회 개척을 위해 100일 동안 기도하면서 얻은 것은 '엘에이 한인 타운에서 개척하라'는 마음이었다. 교회 개척을 위해 몇 가정이 함께 기도에 동참하기도 했지만, 선뜻 한인타운 개척까지 동참하겠다는 가정은 없었다. 동역자 없는 교회 개척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인타운에 특별한 연고지나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도 가운데 너무나도 확실히 받은 응답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렇게 정 목사 한 가정으로 예수마을교회는 시작됐다.
"제가 추진력이 강한 스타일이 아닙니다. '교회 개척을 위해 기도하면서 받은 응답이 한인타운 교회 개척이라고 할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신 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마음으로 '많은 교회 가운데 플러스 원이 아닌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으로 교회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모든 가치를 목회와 교회에 뒀다. 큰 돈은 없어도 먹이시더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붙들고 시작한 교회 개척은 기적의 연속이었다. 아니 기적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개척 초기 교회 렌트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미국 교회를 렌트할 수 있었지만, 24시간 언제라도 편하게 기도하고 예배할 수 있는 곳을 성도들에게 마련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은 아직도 변함이 없다. 그리고 또 하나, 한인 타운 개척교회 목회자, 사모라고 하면 으레 '투잡'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목회에 전념하기로 하고 정 사모가 안정적으로 일하던 소셜워커 일도 그만뒀다. 그 옛날 예수님을 바라보고 바다로 뛰어들었던 베드로와 같이 정 목사 가정 역시 예수님만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갔다.
"당시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교회 렌트비부터 가정에 필요한 재정까지 계산을 해보니... 계산이 안되더라고요(웃음). '하나님 일 하다가, 굶어 죽기야 하겠나' 싶었는데, 이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동안 교회 렌트비, 집 렌트비 안내서 쫓겨난 적 없고, 큰돈은 없어도 지금까지 먹이시더라고요."
성도들이 나갈 때는...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교인간 문제로 떠날 때 가장 허탈
그렇다고 한인타운 교회 개척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많은 목회자들이 공감하듯, 개척할 때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교인들이 교회를 떠날 때였다. 마치 살고 있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새로운 아파트를 찾아 떠나듯 교회를 너무나도 쉽게 떠났다. 떠나는데 익숙했던 성도들을 정 목사는 가슴으로 사랑했기에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가슴으로는 수없이 울었다. 그렇게 교회를 떠난 성도들 가운데는 정 목사가 맨투맨으로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앙의 기초부터 가르친 사람들이 많아 더욱 마음 깊이 담을 수밖에 없었다. 허탈한 마음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른 교인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보면서다.
"성도들이 나갈 때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어요. 신앙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어서가 아니라 교인들 간에 서로 문제가 생겨서, 갈등의 골이 깊어져 성도들이 나갈 때가 가장 허탈했습니다. 그 와중에 주신 은혜는 신앙이 자라지 않아 보였던 성도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초창기 예배에는 눈물이 참 많았는데요. 하나님께서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은혜를 주신 것 같습니다."
작은교회, 아이들 교육에 최우선
대다수의 한인 이민교회가 그렇듯 예수마을교회 개척에서도 사모의 역할은 빼놓을 수 없었다. 정원경 사모는 개척 초기부터 아이들의 신앙 양육을 도맡았다. 대형 교회에서 맛볼 수 있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아이들은 따뜻한 사랑의 눈 맞춤에 반응했다. 교회에 오면 사모님부터 찾아 달려가기 일쑤였다.
"많은 분들이 큰 교회에 가면 아이들이 잘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작은 교회에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주일학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척교회였지만 아이들 교육을 최우선에 뒀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주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면 아이들은 분명히 반응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개척교회가 큰 교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모든 교회 목회자가 그렇지만 사모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는데, 돌아볼 때 함께 사역에 열심히 동참해줘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크지요."
교회의 존재 이유 = 한 영혼
예수마을교회는 한인타운에 세워져 타운에서만 15년을 있었지만 더 나은 환경을 찾아 타운을 벗어날 계획이 없다. 차가 없으면 접근성이 떨어지는 외곽에 있기보다는, 타운 한가운데를 지나가다가 한 사람이라도 교회로 들어와 기도하며 쉼을 얻는다면, 교회가 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무 때나 와서 기도할 수 있고, 기도하고 싶은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들어와서 기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한 달 치 교회 렌트비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소중하고 값진 일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한 영혼의 소중함을 언제나 잊지 않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교회 작다고 하나님도 작은 것 아냐
예수마을교회에서는 수요일 오전, 교단과 교파를 초월해 엘에이 지역 목회자들이 모임을 갖고 있다. 서로의 목회 경험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다. 이 교회에서 모임이 지속된 지 벌써 7년이 넘었다. 모임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교회의 외적 성장을 외칠 때, 교회의 '본질'과 '한 영혼'을 강조하는 정 목사의 목회관이 젊은 목회자들의 목마름을 채웠기 때문이다. 멀리서는 토랜스나 부에나팍에서 올 정도로 목회자들에게 충전이 되는 시간이다.
"목회자들에게는 어디서도 쏟아내놓고 나눌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말씀을 나누고 우리의 목회를 돌아보며 서로가 힘을 얻는 시간입니다. 모임의 정확한 명칭도, 임원도 없을 정로로 어떤 조직을 만들기 위해 모임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순수하게 목회자들이 말씀과 기도 안에서 쉼과 안식을 얻는 시간입니다. 누구라도 온다면 막지 않고, 회원을 만들고자 힘쓰지도 않습니다."
정인호 목사는 한인타운의 이민교회 목회자들, 특별히 소위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영적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소망한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초라하고 무기력해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충성스러운 종이기 때문이다. 또 교회가 작다고 교회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도 작은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이민교회 목회 상황이 매우 열악합니다. 더구나 목회자들 스스로 너무 주눅이 들어있습니다. 어려운 곳을 지켰으니 더 칭찬받을 만하지 않을까요? 목회의 목적을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교회 규모가 작다고 하나님이 작은 것이 아니고, 큰 교회에서 만나는 동일한 하나님을 작은 교회에서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를 존귀하게 하는 것은 교회적 현황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니까요. 각 교회에서도 목회자들을 더욱 격려하고 세워주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으로 행복한 교회, 해답은 나눔
정인호 목사는 '어떤 교회를 세워가고 싶냐?'는 질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행복을 발견하는 교회 '라고 답했다. '세상의 물질이나 쾌락에서 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서 측량할 수 없는 행복을 맛보는 교회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행복은 '채워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서 온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작은 교회지만 선교가 우리 교회의 DNA입니다. 교회 개척 후 시작한 멕시코 선교는 13년이 됐고, 멕시코 인디언들을 위한 교회도 세웠습니다. 그 외에도 도미니카,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케냐 아이들을 위한 교육과 구제 사역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만나 누리는 구원의 감격과 행복은 세상에서는 발견할 수 없고, 나눔을 통해 더 행복해지는 비결은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행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