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 김용옥 한신대학교 석좌교수가 지난 3월 16일 방송된 KBS 1TV '도올아인 오방간다'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말해 비판을 받았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자신의 생각만을 가지고 망언을 쏟아내고 역사를 왜곡해서는 안 될 것임을 경고하는 바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현재를 탐구하는 안목도 필요하다. 그 안목은 지난 역사를 제대로 알 때 길러질 수 있다.
도올은 한국 사회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를 재고하고 성찰하면서, "우리가 미처 몰랐고 잘못 알려지기만 했던 우리 현대사를 다시 정리한다"면서 "우린 너무 몰랐다"고 했다.
석좌교수 정도 되는 인물이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을 모른다고 한다면, 누가 이를 믿겠는가? 과연 방송에 출연한 공인이자 석좌교수로서 자질과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추억이 새삼 피어오른다. 필자는 <독립협회 청년 이승만>이라는 영화를 감상했다. 당시의 이승만과 지금의 이승만은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일까? 가늠하기 어렵다.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당시 초대 대통령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대한민국의 발전상도 목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승만이 건국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위해 정말 큰 일을 했음을 분명하게 인정하는 것이 순리다.
그는 해방 후 입국해 미군정 및 한민당과 손잡고 과도 민주주의를 거쳐, 유엔(UN) 결의안에 따라 제헌의회 총선거를 실시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는데 이바지한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최초로 사병급여를 지급했고, 농지개혁법을 실행했으며, 의무교육을 실행해 1948년 당시 80%에 달했던 문맹률을 재임 막바지이자 11년만인 1959년에는 22.1% 수준까지 낮췄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승만은 외교통으로서, 독립운동 내내 일관되게 외교를 통한 국가의 독립을 추진했다. 그는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독립협회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이다.
특히 국제정세를 읽어내는 안목만큼은 한국 독립운동 지도자들 중 가장 탁월했다. 1941년 이미 「JAPAN INSIDE OUT」라는 책을 저술, 태평양전쟁 이전 일찍이 일본의 미국 침략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는 미일 관계, 미일 개전의 중요성을 일찍 간파하고, 미국에서 일본의 위험성과 호전성, 잔혹성 등을 알리는 활동을 끊임없이 전개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평화선 선포와 한미방위조약으로 국토안보와 경제개발의 초석을 마련했다. 북한의 일방적 남침으로 1950년부터 3년간 계속됐던 6.25 전쟁의 파괴로부터 경제를 복구함은 물론, 국민의 의식주 기초생활을 위한 원조자금을 유엔의 지출 경비 등으로 충당했다.
6,25 전쟁 도중에는 (반공) 포로들을 전원 석방해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 대담함과 위대함은 북한의 김일성이 국군 포로들을 석방했는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나라의 부름을 받거나 자원해서 전쟁에 갔던 젊은이들은 포로가 되어 지금까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데, 도올 김용옥 교수는 고령의 우리 국군 장병들을 위해 무슨 노력을 했는가? 생이별해야 했던 1천만 이산 가족은 또 어떤가?
뿐만 아니다.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어찌 그리 함구하고 있는가? 도올 김용옥 석좌교수는 입이 있으면 말해보라! 미국은 사병 한 사람을 구출하기 위해서도 수많은 인력과 물자를 투입해서 결국 데려오는데, 하물며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젊음을 송두리째 불태운 우리국군 포로들에 대해서는 어찌 말이 없는가?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재임 후반 고령의 나이 때문에 판단력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했다. 인재를 등용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탓에 자유당의 부정선거를 방관하다 결국 하야하고 말았다.
이후 하와이로 망명해 생을 마감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청빈 사상을 갖고 자신의 부를 축적하지 않았으며, 양말까지도 꿰매어 신을 정도로 검소한 생활을 했던 모범적인 가장 이기도 했다.
역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쳐서는 안 될 것이다.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사실 그대로 정확하게 짚어주되, 이후 판단은 개개인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미국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추앙을 받는 에이브러햄 링컨 같은 인물도, 도올 김용옥 같은 시각으로 바라볼 경우 흠이 없을 수 없다. 그렇다면, 링컨 대통령의 무덤도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세계 10위권의 강대국이 되어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는 것은, 결국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건국이 아니었다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이런 점에서 도올 김용옥은 역사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한신대학교에 묻는다. 이런 사람을 어찌 석좌교수로 앉혀 망신을 당하고 있는가? 즉시 그를 석좌교수에서 물러나게 해야 옳을 것이다.
역사는 옳고 그름을 함께 판단하고 기록하며 알려야 한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편만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위험하다. 이는 후손들에게 치명적인 실수를 물려주는 것임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3.1운동을 생각해 보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던 비폭력 주권회복 운동이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순교와 피로 지켜낸 대한민국이다. 이 대한민국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투철한 그리스도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또 다시 6.25 전쟁과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의 평화란, 절대 강자 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강하지 않고는 평화를 논할 수 없다. 강대국이 아니라면 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쳐야 하고, 노예나 다름없이 늘 간섭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제 한국 기독교가 나서야 할 때다. 믿음의 선배들이 피로 값 주고 사신 이 땅을, 적그리스도의 손에 넘어가게 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늘 깨어 기도하면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를 위해 보혈 흘리신 주님의 공로를 가슴 깊이 묵상하면서, 적극적인 행함으로 나아가는 십자가 군병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KBS를 비롯한 방송사들에 대해 말하고 싶다. 지난 2월 27일 초유의 관심 속에 북미 정상들이 다시 만났다. 트럼프와 김정은, 두 정상의 회담은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우리 대한민국에서 실시하는 회담이 아니었기에, 뉴스 시간에만 방송해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시 종일 모든 방송들에서 똑같은 내용들을 반복하고 있었다.
물론 두 정상의 회담 성공 여부에 대한민국의 안보와 경제 등 국익과 국격이 달려 있었다. 하지만 언론과 방송은 공정해야 한다. 모든 방송사들이 정규 프로그램을 뒤로 한 채, 계속해서 똑같은 내용을 반복해선 내보내는 것은 분명 편파적이다.
특히 KBS는 늘 공정한 방송, 국민의 방송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너무 다르다. 언론은 어떤 조건이나 환경을 탓하지 않으며, 권력이나 폭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보도해야 한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깊은 믿음과 신뢰를 구축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대로 전달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언론이 자기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후진성을 면치 못할 뿐 아니라 미래를 위한 민주주의와 국가 부흥은 기대하기 힘들다.
같은 내용을 계속 방송하면, 이를 보는 국민들은 뭐라고 하겠는가? 아마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이제는 방송사들도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방송은 오롯이 국민의 눈치만 봐야 한다. 어떠한 힘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눈치를 보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자멸의 길이다.
역사는 반드시 살아서 움직인다. 그러므로 KBS는 공영방송으로서 그 사명과 소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 또 다시 그들의 대변인 노릇을 할 것인가?
특히 올해 46주년을 맞는다는 공영방송 KBS는 구습에서 탈피해 새로운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염원을 결코 가벼이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독교 방송 역시 기독교의 발전을 위해 달콤한 소리로 치장만 하지 말고, 가끔은 쓴 소리도 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뜻을 제대로 전파하면서, 21세기 나단 선지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복음의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든 신앙인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을 기원한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새언약 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