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여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를 통해 친구들 서넛이 그 여학생을 동시에 알게 되었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예뻐서 그랬는지 그 친구들이 동시에 그 여학생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암튼 그 여학생의 마음을 먼저 얻기 위해 서로 간에 피 튀기는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서넛 중에 한 녀석이 선수를 칠 것 같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저도 이제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고민을 하다가 무작정 그 여학생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갔습니다. 당시는 '삐삐'도 흔하지 않았던 때라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만을 고대하면서 무작정 아파트 앞 공원 벤치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나고, 세 시간이 지나도... 이제는 자정이 가까 왔는데도 그녀는 오지 않았습니다. 아주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도 늦은 가을이라 무척 추웠던 것 같고, 저는 그렇게 벤치 위에서 밤을 꼬박 세우고 말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그 여학생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지금 제가 제 아내에게 완전히(?) 매여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그 벤치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그 벤치를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 벤치를 떠나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긴긴 밤을, 그렇게 서리를 맞으면서도 견뎌냈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 여학생에게 매여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무언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매여 삽니다. 어떤 사람은 돈에 매여 살고, 어떤 사람은 명예에, 또 어떤 사람은 권력에 매여 삽니다. 그래서 그런 가치들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벤치에 앉아 그곳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떠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까짓 배고픔 쯤이야 상관 없습니다. 그냥 벤치에 앉아 밤을 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늘 내가 무엇에 매여 살고 있는가...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철학자요 노벨상 수상자였던 벌트랜드 러쎌은 '나는 왜 크리스천이 아닌가?'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예수님과 예수님의 가르침은 온갖 허구와 비논리로 가득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철학적 논리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자기 교만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에게 예수는 자기 인생을 다 바쳐 사랑해야 할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은 30을 얻기 위해 팔아버려야 할 가치였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에 매여 살고 계십니까? 남은 인생을, 거룩하고 영원한 것에 매여 살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