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사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쁘게 살고 여러가지 일을 하는데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회사 일을 열심히 하는 어떤 분은 퇴근해서 집에 왔는데도 회사 일을 계속 합니다.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주길 바라면 바빠 죽겠는데 왜 귀찮게 하느냐며 화를 냅니다. 아내와 멀어지고 자녀들과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할 정도라면 이 사람은 도대체 왜 그 많은 일을 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보면 마르다가 나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그 가족에게 예수님은 아빠와 같고 엄마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 일행이 이 마을을 지나 가신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주님을 집에 오시라고 초청합니다. 예수님과 열 두 명의 제자, 총13명, 그리고 예수님을 보려고 우리 집에 찾아올 이 마을 사람들을 예상하니, 적어도 4~50명은 될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손님을 초대했으니 음식을 대접하는 것은 당연하고, 예수님 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참 좋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집도 깨끗하고, 음식도 맛있고, 분위기까지 좋았다는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집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마르다는 기뻤습니다. 생선도 튀겨야 하고, 마늘도 까야 하고, 계란도 뒤집어야 하는데, 손이 모자랐습니다. 그런데 동생 마리아는 저 쪽에서 예수님 발 앞에 다소곳하게 앉아서, 예수님과 눈을 맞추며 얘기만 듣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순간 마르다는 뚜껑이 열렸습니다. 뜨거운 불덩어리가 머리끝까지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은 화가 자주 납니다. '누구는 예수님 말씀 듣는 것 싫어해서 여기 부엌에서 일만 하나? 나도 예쁜 치마 입고 주님 앞에 앉아서 우아하게 말씀 듣고 싶지만, 그러면 누가 이 많은 손님들을 대접할 것인가?'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난 마르다는 부탁 아닌 부탁을 주님께 합니다."주님, 제 동생에게 말해서 바쁜 언니를 좀 도와줘야 하지 않느냐고 말씀 좀 하세요~."
겉으로는 부탁이었지만, 목소리는 명령하는 듯한 어조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마음을 이해하셨습니다. 동생 편을 들어준 것이 아니라, 일을 보는 관점을 새롭게 해석해 주셨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너는 많은 일로 염려하며 들떠 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많지 않거나 하나 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택하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것을 그에게서 빼앗지 못할것이다."(눅10:41. 새번역) 마르다는 자신에게 왜 기쁨이 사라지고 짜증이 생겼으며, 평안 대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겨났는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은 언니보다 동생을 더 예뻐한 것이 아닙니다.주님은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편애하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은 유한하지 않고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우선순위(Priority)를 잘못 판단하면 화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분노하기 쉽습니다. 휴가도 없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칼퇴근하는 다른 직원이 게으르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취향이 다른 것 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다른 사람의 기준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찬양하면서 기쁘게 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일처리가 부족해도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주님도 기뻐하지 않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