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야만 했습니다. 한국 쇼트트랙의 간판 심석희 선수가 오랜 동안 코치로부터 폭행을 당해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코치에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적도 있었고, 그 후유증으로 경기를 뛸 수 없었던 적도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코치였던 조재범은 이렇게 핑계를 댔습니다.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소위, 사랑의 매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등지상주의'에 물든 한국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으로 그렇게 끝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심석희 선수는 다시 용기를 내어, 지난 4년 동안 육체적인 폭행 뿐 아니라 성폭행도 당해왔다고 추가 고발했습니다. 이번엔 핑계를 댈 수 없었습니다. 어떤 핑계를 대 봐도 말이 안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부인을 할 뿐이었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잘못되고, 어긋나고, 실패한 일에도 '자기 입장'이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잘못된 '원인' 때문에 잘못된 '결과'가 나왔겠지만,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자기 입장에서는 할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그런 것이겠습니까?
언젠가 장례식에 가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있는 무덤들마다 사연들이 있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왜 그런 삶을 살았냐고 물으면, 나는 이러 저러 해서 그런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이유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기억해야 할 것은, 핑계하지 못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기억하시고, 그 때 품었던 모든 마음들을 꿰뚫어 보시는 심판자 앞에 서면 그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이유가 환경이나 상황 때문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가득한 죄 때문인 것을 고백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 어린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지 않으면 영원한 심판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6 에 보시면 예수께서 천국에 관한 한 비유를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잔치에 오는 것을 꺼려했다고 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은 밭을 사서 밭에 나가 봐야 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소를 사서 그 소를 시험해 봐야 한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장가를 들어 그 잔치에 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마다 잔치에 가지 못할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 주인이 종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그렇게 하고도 자리가 남자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명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핑계하지 못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영원한 천국 잔치에 초대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반응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실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