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중형교회에 대해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중형교회의 어려움에 대해서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심층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다. 그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교회에 40대 초반을 기준으로 하여 사람들이 없다는 것이다. 30대나 40대로 구분하지 않고 구체적으로 40대 초반을 콕 짚어서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했다. 잘 생각해 보면 40대 중반이후는 세대가 다르다.
그들은 소위 이야기하는 밀레니얼세대이다. 21세기가 들어오는 때에 대학생의 나이였고 더는 중고등학생이었다. 이들은 이해찬세대로 그 윗세대와는 결이 다른 교육을 받았다. 문화대통령이라고 일컫던 서태지의 세례를 받아 교실로 대표되는 기존 교육의 틀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저항하는 법을 배웠다. 더군다나 이들은 인터넷의 혜택을 온전히 받은 이들이다. 사이버 민주주의의를 시작한 이들이다. 자기 의견을 만들줄 알고 표현할 줄 아는 이들이다. 거기에 개인적으로 핸드폰을 가지기 시작했고, 스마트폰으로 더욱 쉽게 사이버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은 TGIF라고 하는 트위터, 구글, 아이폰, 페이스북에 익숙하다. 사이버 네트워킹에 생활화되어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과 쉽게 친구가 되고, 의견을 나누고, 사회적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우리 세대들은 학교에 다닐 때 선생님에게 질문을 해 본 적이 없다. 초중고, 대학교까지 질문이라는 것을 자발적으로 해 본적이 없다. 선생님들에게 질문을 하는 것 조차도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그 기세에 눌려 입을 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질문할 수 있는 사고가 없었다. 주어진 대로 사는 것이지 내 의견을 만들고 질문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들은 다른 환경에서 자랐다. 질문이 아니라 의견을 말한다. 생각이 있는 것이다. 거기에 부당하다면 저항할 줄 안다. 무엇이 억울한 줄 아는 것이다. 대학교에서도 학기말이 되면 성적에 대해서 따지는 학생들이 많이 있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낮은 점수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왜 그런 성적을 받아야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 세대들은 확실히 다르다.
이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었다. 생각도 있고, 의견을 말할 줄 알고, 저항할 줄도 아는 이들이 어른이 된 것이다. 그런데 교회는 이들을 아직 아이 취급하고 있다. 40대만 해도 교회에서 발언권을 얻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30대로 내려가면 청년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사회에서 이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40대로 들어서면 회사를 은퇴하고 자기 일을 찾아야하는 때인데도 말이다.
아직도 가부장적인 권위구조를 가지고 있는 조직은 드물다. 그런데 교회는 그게 유지되고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에 없이 더욱 그렇게 굳어지고 있다. 일반사회가 노령인구, 즉 65세 이상의 어른이 14%가 되어 고령사회라고 하는데, 교회는 그 보다는 두 배 이상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어른들이 정정하셔서 교회의 리더십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젊지만은 않은 어른들이 교회에서 버티지 못하고 뛰쳐 나간다. 3.40대가 그러하다는데 20대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와 노인 중심의 사회는 다르다. 한국교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젊은 세대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그들이 숨통을 트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자신들의 신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