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칭찬이나 칭찬을 받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하는 사람에게 칭찬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칭찬은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남이 나를 칭찬으로 인정해 주면 만족감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는 내가 칭찬의 달콤함과 칭찬의 만족감을 구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을 향한 헌신과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한 헌신은 비슷해 보이고 작은 차이가 나기에 구별을 잘해야 합니다. 그 차이가 위험한 차이요 치명적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의 수고가 겉으로 보기에는 엄청난 헌신과 내려놓음과 희생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가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람을 무지 하리만큼 어리석게 만들어 버립니다. 인정욕구에서 나오는 헌신입니다. 이런 헌신은 가짜입니다. 반복하다보니 가짜를 진짜라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짓 만족에 속아 그냥 살게 됩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하나님의 인정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실체를 감당할 용기까지 없게 됩니다. 이렇게 거짓된 인생을 살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무너지게 됩니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인정하면 세상이 덤벼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얻으면 강건해 집니다. 고난을 이깁니다. 외로움을 이깁니다. 세상의 어떤 공격도 이기게 됩니다. 그러나 칭찬과 인정을 듣다보면 자꾸 달콤해 집니다. 기도하기보다는 사람에게 가게 되고, 사람에게 기쁨을 얻으려 하고, 사람에게 만족을 느끼려 합니다. 사람 중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독에는 금단 현상이 있습니다. 없으면 끝내는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인정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니 허탈해 지고 마는 것입니다. 심하면 자괴감과 분노, 거절 감과 심한 우울증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람들은 상처와 아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상처나 아픔이 아닙니다. 치명적인 사람 중독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헌신 하는 것입니다. 중독의 해독은 은밀함입니다. 그래서 은밀한 기도와 은밀한 구제와 은밀한 금식입니다. 느끼지만 보이지 않는 은밀함이 회복을 주게 됩니다. 그래서 회복은 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헌신은 없을 때 비로소 존재감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잘하면 느끼지를 못하지만 못하면 느낍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헌신인 것입니다.
[김병규 칼럼]헌신은 느끼지만, 보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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