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박사(東方博士)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동쪽으로부터 별을 보고 찾아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던 점성술가(占星術家)들입니다.
일설에 따르면 그 이름은 멜키오르, 발타사르, 카스하르이며, 멜키오르는 '황금'을, 발타사르는 '유황'을, 카스하르는 '몰약'을 선물하였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동방은 이스라엘 기준에서 동쪽이므로, 메소포타미아 곧 현대의 이라크와 이란 방향입니다. 고대 페르시아는 이란 땅의 중심지였고, 동방박사들은 페르시아 사제 계층으로 추정되며 왕실에서 임금을 섬긴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특히 동방박사들은 주변국 임금들의 즉위나 몰락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 헤롯왕은 심상치 않은 별의 움직임도 문제이지만, 동방박사들이 찾아왔다는 뜻밖의 소식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헤롯은 당시 유다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로마의 힘을 얻어 왕위에 오른 자이므로, 바짝 긴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점성술가들이 과히 긍정적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때로는 이방 임금들을 도구로 사용하시고, 때로는 이방의 점성술가들도 사용하여 뜻을 이루시는 분이심을 알게 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다가오는 메시아의 탄생을 위한, 대림절을 맞이합니다. 특히 내 안에서,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채워야 할 골짜기가 있다면 채우고, 높은 산과 언덕은 눕히고, 굽은 길은 곧게 하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고르면서, 우리에게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즐겁고 기쁜 맘으로 행복하게 맞이해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을 그저 즐거운 공휴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고, 장사꾼들은 성탄절을 통해 한몫 챙기려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신앙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과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경배하기 위해 머나먼 이국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별을 따라 찾아왔던 동방박사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사건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오직 그 분에게 경배해야 할 것을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해주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종 구분 없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높이고 그 분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했습니다(마 2:11). 예수님 당시 고대근동 지역에는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이는 등 다양한 경배 방법이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경배 자세는 부복(扶伏), 즉 바닥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경배의 대상을 최고로 존중한다는 것을 그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오직 하나님만을 부복하여 경배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경배하더라도, 그 마음에 그 분을 향한 의존과 신뢰가 없다면 그것은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이번 성탄을 맞이하여 예수님을 향한 의존과 신뢰를 품은 순종의 참된 예배로 경배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동방박사를 세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성경에는 그들이 몇 명인지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선물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 세 가지이므로, 동방박사를 세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친 '몰약'은 예수님의 '죽음'을, 제사에서 사용되는 '유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황금'은 '왕권'을 각각 상징한다고 합니다. 특히 아기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에 대해서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유향(Arabic frankincense). |
동방박사들의 행보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큰 울림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권력을 쥔 헤롯 왕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더 이익이겠지만, 그들은 겸손자의 혜안으로 진리를 분별했기에, 헤롯 왕의 요구를 무시하고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곳으로 돌아감으로써 유대인들에 앞서, 메시아를 만나는 큰 행운과 기쁨을 누렸음을 우리 신앙인들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헤롯 왕처럼, 우리 교계 안에도 거룩한 종교의 탈을 쓴 대제사장, 곧 삯군 목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매일 시간 날 때,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늘 찬송하고 기도하며,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행함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이 깨어있는 삶이며,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과 십자가상에서 죽임을 당할 때의 상황처럼, 메시아가 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지 않았던 당시에는 대제사장과 서기관, 바리새인, 그리고 그들의 등에 업고 함께 즐기는 많은 민중들이 그들의 꾐에 빠져 예수님의 탄생과 죽음을 무참히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더 부러울 것 없는 세상 향락과 연락에 젖어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의 등장이 달갑지 않았고, 또한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갖은 흉계를 엮어 메시아를 결국 십자가 나무 형틀에 매달았던 것입니다.
만약 내일 예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내 생명을 취하신다면, 그래도 그들은 반갑게 맞이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매일 같이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짐 없이 참석하고 1년에 성경을 몇 독 하고, 성경 필사를 몇 번 해도, 또 주중에 성경공부나 집회를 참석해도, 예수님의 탄생과 재림이 달갑지 않고 알면서도 행하지 못한다면, 예수님이 어디에 태어나시는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바로 나, 아니면 우리가 아닌지 한 번 되짚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