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바닷가에서 하루를 지냈습니다. 저는 언제나 바다를 좋아했고 소녀 시절, 바다는 제게 낭만과 신비의 상징이었습니다. 아득한 수평선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궁금하여 무작정 수평선을 향해 나아가다가 어른들을 놀라게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불혹의 나이를 훌쩍 넘긴 바쁜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다는 변하지 않았는데, 바다를 바라보는 저의 시각은 많이 달라졌음을 이번에 느꼈습니다. 이번에 저는 끝없이 펼쳐진 모래 사장에 앉아 물결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인생과 세상과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속으로 묵상 여행을 떠났습니다.

성경은 바다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지요. 때로는 순풍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풍랑을 만나 두려워 떨기도 하는 망망한 바다 위의 선척처럼, 우리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의 바다를 항해합니다. 저의 인생에도 순풍이 불어오기도 했지만 놀랄만한 돌풍이나 큰 풍랑이 몰아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다의 지형을 완벽하게 알고 계시며, 모든 풍랑을 다스리는 가장 위대한 선장의 인도 하에 있었기에 그 어떤 순간에도 저는 평정을 잃지 않을 수 있었으며 그 모든 폭풍우들이 사실은 놀라우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로 저를 인도하였음을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저는 여전히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망망대해와도 같은 인생의 바다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저는 위대하신 선장과 함께 하기에 가장 안전하고 즐거운 항해를 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성경은 바다를 세상에 비유합니다. 바다는 세상의 악과 더러움의 상징으로 묘사되었지요. "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사 57:20) 실제적으로 바다는 이 세상의 모든 쓰레기와 오염 물질들을 흡수하는 곳이기도 하지요. 결국 요한 계시록은 바다의 종말을 예언합니다. "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1) 바다는 사단이 임금 노릇하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수많은 사랑스러운 물고기들이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오끼나와 수족관에서 본 바다 속의 광경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물 속의 세계였는지, 문자 그대로 환상이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 비유된다면 바다 속 생물은 인간들에 비유되겠지요. 어쩌면 이 세상 사람 숫자와 물고기 숫자가 일치하지 않을지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어부출신 베드로에게 물고기 대신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두렵고 더럽고 악한 바다라 할지라도 물고기가 살고 있기에 우리는 바다로 나아갑니다. 바다의 용이 살고 있다는 험한 바다이지만 어여쁜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 그 바다를 우리는 사랑합니다. 사단이 분내어 내려갔다는 이 세상에,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이 살고 있기에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고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경은 물이 바다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이 세상 가득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 합니다. 바다 속 수많은 생명들의 생존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물처럼, 인생들은 생명수 되신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요. 물이 바다를 덮듯이 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게 된다면 이 땅의 모든 인생들은 물 오른 싱싱한 물고기처럼 생명을 얻되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검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보며 저는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 가득하게 되는 날을 그려보았습니다. "물이 바다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리라.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조용히 찬양하며 바다를 바라보는데 어느 덧 눈물이 고여옵니다. 그날 저는 바닷가에 앉아 다짐했습니다. " 물이 바다 덮음 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교회와 이 나라와 온 세상 가득하게 되는 그 날을 바라보며, 위대하신 선장님과 함께 인생의 바다를 희망차게 노저어 가리라! 다가올 영광의 그 날을 바라보며 더럽고 악한 바다와도 같은 이 세상에 생명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힘을 다하여 전하리라! "

글/이성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