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일반 관객들에게 처음 공개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마침 불어닥친 태풍으로 관람 행사가 취소됐다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비바람을 뚫고 찾아온 몇 명의 관객들에게 인사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행사장을 찾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영화는 다 태풍 때문에 상영이 취소됐을 정도였다.
7명이 엘리베이터를 올라갔다는 말에, 그 정도만 해도 감사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시사회장에는 무려 150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방송국에서 촬영하고 있는데도 '찌질하게' 눈물이 흘렀다. 일반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는데, 중반 이후 울음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북한에서 고등학교 교사가 폴란드에 갔던 이야기를 했다는 탈북민의 증언도 있었고, "북한 고아들을 품어 주셔서 감사하다"던 다른 탈북민의 증언에 모든 관객들이 울음바다가 됐다.
얼마 전 기자 시사회까지 진행된 가운데,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민감한 소재일 수 있지만, 최근 남북 간 해빙 무드와 함께 늦었지만 준비해야 할 '통일'에 대한 기대 혹은 우려와 맞물려 많은 관심을 얻고 있다. 일반 언론들도 영화와 함께 꽃제비와 탈북 청소년, 그리고 감춰져 있던 폴란드의 선생님들 이야기 등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다음은 추상미 감독과의 두 번째 이야기.
-크리스천 혹은 넌크리스천 관객들은 영화를 보고 무엇을 느꼈으면 하시는지요.
"크리스천이든 아니든, 이 시대는 그들에게 과도기입니다. 북한의 문이 열릴 것 같고, 경제부터 모든 영역에서 통일을 향한 준비를 실제적으로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통일'이고, 이를 위한 '마음의 연합'이 이뤄지기까지는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통일의 여정에서 원하시는 것은 '사람의 통일'인 것 같습니다. 한 민족이 서로 총부리를 들이대고 죽였던 부분은 상식적으로 봐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를 용서와 화해와 십자가로 끌어안는 일들이 아마 통일의 여정 가운데 일어날텐데, 지금 그 출발선상에서 우리의 속도가 조금 빠르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며 눈물짓는 폴란드 선생님. ⓒ커넥트픽처스 제공 |
경제 교류는 바로 시작할 수 있고, 물리적인 여러 교류들 역시 할 수 있지만, 서로 마음이 모아지지 않고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다른 교류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런 물리적·경제적 통일이 먼저 이뤄지고 너무 빨리 간다면, 굉장히 큰 혼란이 올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전쟁의 상처를 경험하신, 자기 눈앞에서 부모와 형제가 죽어갔던 어르신들이 있습니다. 그 분들에게 '시대가 변했으니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해' 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한 모순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분들을 버리고 가는 분위기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저는 모든 세대가 함께 통일을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좀 느긋하게, '여정'이라는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출발선에 서 있을 뿐입니다.
여기서 성찰해야 할 것을 돌아봤을 때,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한국전쟁 초기, 그 역사의 상처가 우리를 갈라놓고 남한 사회도 갈라놓고 증오를 생산하고 이데올로기를 양산하고 프레임을 만들어냈지만, 결국 이 상처가 남북한을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남북이 함께 겪은 '공통의 상처'가 바로 한국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쟁과 역사의 상처를 바라보는 관점이 역사를 통해 재조명되길 원합니다. 그 이면에는 아름다운 스토리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 개인에게 상처와 시련을 허락하셨을 때, 당시에는 굉장히 아프고 힘들었지만 주변에 누가 진짜 함께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있었고, 그 시련 가운데 진정성 있는 것들을 드러내고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역사의 상처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 이면의 아름다운 이야기들, 전쟁의 가장 비참한 결과물인 고아들을 돌봤던 폴란드 선생님들, 남한의 많은 고아들을 입양한 푸른 눈의 엄마·아빠들, 이 세계인들이 우리의 전쟁을 수습했던 아름다운 실화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것들이 드러나는 게 하나님 뜻이 아닐까요?"
▲추상미 감독이 탈북소녀 이송과 포옹하고 있다. ⓒ커넥트픽처스 제공 |
-송이는 잘 지내고 있나요.
"탈북민들은 가정이 무너진 경우가 많아 사랑받은 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으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폴란드 선생님들은 북한 아이들이 얼마나 착하고 부지런하고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이야기해 주셨고, 송이는 난생 처음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남한에 온 뒤 무시당한 일들과 탈북민임을 숨겨야 하는 것에 대한 수치와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 있었지요. 지금은 저와 함께 '모자이크'라는 신앙 공동체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송이와는 가족 같은 관계가 됐습니다.
'모자이크'는 탈북 청년 연합이랄까, 문화예술 콘텐츠에 종사하는 탈북 청년 5명과 함께했는데, 지금은 한 명이 유학을 가서 4명입니다. 매주 한 번씩 만나고 있습니다. 남한 청년들과도 함께하는데, 그들 역시 문화예술 콘텐츠와 치유사역을 주로 합니다. 각자 비전을 세우고 브레인스토밍도 해 주면서, 이 시대의 문제나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 친목 도모도 함께하고 있습니다(웃음).
-종교적 성향이 있는 감독으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신지요.
"그것은 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이고 정체성이라 불편함이 없지만, 작품에서는 그런 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전략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게 만드는 하나의 수단이어야 하기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분들이 시사회에서 많이들 우셨는데, 한 분은 '눈물이 나는데 왜 나는지 모르겠다'고 하셨습니다.
▲60여년 전 폴란드에서 함께한 아이들. ⓒ커넥트픽처스 제공 |
저는 그게 하나의 힌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두신 장치가 양심이라면, 그 양심에 자극 혹은 찔림이 온 것이지요. 세상을 향한 복음이 담긴 콘텐츠가 그렇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많은 피드백을 들으면서 정리해 가는 중입니다."
-요즘 기독교 영화가 많이 나오는데, 어떻게 보셨는지요.
"할리우드에서 만든 기독교 영화들은 재미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좀 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더 많고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기독교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하고, 세상을 향한 기독교 콘텐츠가 많아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대놓고 복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 콘텐츠인데, 제가 받은 부르심도 그것입니다. 하지만 크리스천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그런 콘텐츠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세상을 향한 기독교 콘텐츠에 대한 팁이 있을까요.
"영화 속 폴란드 선생님들은 굉장히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들이 북한 고아들을 가족처럼 돌보고 사랑하게 된 데는 신앙적 이유도 컸을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은 도처에 널려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크리스천들과 넌크리스천들, 교회와 세상을 완전히 분리해서 역사하시진 않으니까요. 일반 역사의 주인이시기도 하지 않습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을 더듬어 찾게 만드는 수많은 개인들의 삶이 있습니다. 기독교 콘텐츠를 녹여내는 방법은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단 그 스토리 자체에서 어떤 복음적 메시지를 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통찰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