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3일 동안 대구반야월교회에서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103회 총회(합동)에 참석했습니다. 무리한 남미일정과 귀국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빡빡한 목회일정을 소화하느라 결국 감기 몸살을 앓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총회 현장에도 늦게 도착했고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총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우리 총회는 수요일 저녁으로 마쳤습니다. 저의 경험상 이렇게 빨리 끝난 총회는 처음 봤습니다. 이승희 총회장님께서 특별한 지혜와 회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총회 기간에 하루에 한 사람이 두 번 발언은 못하도록 하고 그것도 2분 이상 발언하지 말 것을 결정을 해 놓고 시작하니까 빨리 끝난 것입니다. 아무래도 일부 발언하기 좋아하는 분들은 불만이 있었다고 하지만 저는 몸도 좋지 않아서 빨리 끝나니까 너무나 좋았습니다. 지금까지 총회의 모습은 한 안건을 가지고 충돌을 하고 격돌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한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 장로이지만 같은 사안을 놓고 찬성, 반대가 치열하고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내세우는 것을 봤습니다.
저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폴 리쾨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해석의 갈등'(한길사)이라는 책에서 해석학적 순환을 통한 새로운 인간이해와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시하였습니다. 그에의하면 똑같은 사건도 보는 각도와 측면에 따라서 해석과 판단이 다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갈등과 충돌을 야기 시킨다는 것이죠. 그에 의하면 모든 시대마다 시대를 해석하는 키가 있다는 것이죠. 예컨대 근현대에 이르러서는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시각으로 시대를 해석하려고 했고,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키(key)로 시대를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요즘에 와서는 진보적인 시각과 보수적인 시각이 해석의 갈등을 이루고 있지요. 또 정의의 시각과 사랑의 시각도 충돌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의 갈등이 교회 안으로도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성경을 자기 입장에서 보고 하나님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여서 해석의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주장하는 말에는 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그 일리와 일리가 교회 안에서 충돌하는 것입니다. 한국교계가 분열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충돌하고 분열하는 이유는 다 자기들이 주장하는 해석의 일리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도 얼마나 반대를 위한 반대, 상생이 아니라 보복과 파괴, 조악한 말꼬리 잡기나 조롱이 판을 치고 있습니까? 무조건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우기며 상대방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려고만 합니다. 이것을 심리학적으로 '선택적 지각' 혹은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가면갈수록 교회나 교회의 행위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르고 해석도 달라질것입니다. 그래서 폴 리쾨르는 이 세상의 어떠한 사상과 철학도 시대를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시대를 온전히 꿰뚫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진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적어도 그 진리를 믿는 사람이죠. 그렇게 볼 때 무조건 시류와 시대논리로 교회 잘잘못을 따지고 자기 편견으로 상대를 정죄하는 것은 일리의 노예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러므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떤 사건을 보고 해석하는 키(key)가 언제나 성경이어야 하고 그리스도여야 하며 성령의 감동과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정서나 자신의 편견으로 해석을 잘하고 일 결정을 잘하는 것처럼 보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공동체를 분열시키거나 어느 한 쪽을 파멸시켜서 그것이 하나님께 누가 되게 한다면 얼마나 무지하고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인간적으로만 보면 다윗도 너무나 부정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밧세바를 범한 죄인이었습니다. 물론 회개하였지만요. 그리고 죽기 전에 솔로몬에게 요압과 시므이를 죽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래서 어떤 성경학자는 다윗을 아주 부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어떻게 보셨느냐는 것이죠. 하나님 보시기에는 다윗의 생전에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얼마나 칭찬해 주셨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시대 흐름을 간파하고 트렌드를 관통하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만큼은 시대정서나 논리, 혹은 자신의 일리에만 갇혀서 서로 갈등하고 다투다가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고 예수 그리스도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총회는 참으로 성총회였습니다.
우리 새에덴교회도 해석의 갈등을 넘어서 하나님이 왕이시고 진리되시는 그리스도가 주인이 되는 거룩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