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식에도 가라지와 알곡이 있듯 선지자들 중에도 거짓선지자가 있다. 한국교회도 사이비와 거짓선지자들이 많은데 짝뚱처럼 식별하기 어렵다.
사이비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이단에 대해서는 강조하지만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지식은 가르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신자들도 이단은 알지만 거짓선지자들에 대해서는 무지한 형편이다.
[거짓 선지자 관련 말씀]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다고 경고한다"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마7:15~16)
"또 많은 거짓 선지자가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24: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큰 표적들과 이적들을 보여 주어 할 수만 있다면 그 택함받은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24:24)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할 때 너희에게 화 있으리라! 이는 그들의 조상도 거짓 선지자들에게 그렇게 하였기 때문이라" (눅6:26)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 (벧후2:1)
"사랑하는 자들아, 모든 영을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일4:1)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그 곳에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영원 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으리라" (계20:10)
하나냐는 앗술의 아들로 세습받은 선지자였다. 그는 민심과 정치를 야합하는 거짓선지자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로 여호와의 참 예언에 도전하여 백성들을 안일에 빠지게 했다. 70년 동안의 바벨론 포로기간에 대항하여 2년만에 평화가 도래할 것이라고 거짓예언했다. 많은 교회가 목회자의 탐욕때문에 분쟁하고 온갖 수단과 불법들이 자행되어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양들은 흩어지고 실족하여 넘어진다.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며 흩어지게 하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렘 23:1)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10:12)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었기 때문에 구분하기가 힘들다그러나 말씀에 비추어보면 모순이 발견되거나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다는 것이다진짜를 알면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거짓선지자의 정의는 진리를 왜곡시키는 사람을 의미한다. 성경의 권위를 배척하고 자기 생각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현상이다.대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장들은 거의 무의식적 신념으로 깊이 자리잡고 있어 설득시키기 어렵다.
한국교회는 이미 실패사례인 유럽교회처럼 높은 건물을 쌓아 안주하려고 한다. 예수님은 성을 쌓아 추종자를 모으고 자신을 높은 자리로 올리려고 하지 않으셨다. 바람직한 교회의 모형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처럼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살아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것이었다. 자신의 영광과 명성을 내기 위해 교회를 이용하고 성을 쌓는 거짓선지자들이 너무많아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다.예수님처럼 살지 않는 선지자들로 한국교회는 만원이다.
선지자로 부름받은 사람은 높은 도덕수준은 물론이고 말씀의 표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항상 살펴야 한다.그러나 현대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는 인본주의와 정치사상에 물들어 있고, 그들이 배우는 과목은 성령충만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체험이 아니라 교회의 CEO로 어떻게 고도로 비즈니스를 성공시킬 수 있는 방법론을 배운다.
그들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나 성령세례를 받은 경험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올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으니 그들의 설교는 귀를 간지럽히지만 생명력이 부재하다포용력과 인품이 있고 거룩해 보이지만 하나님의 방식에 반하는 불법을 행한다. 이것이 양적으로 부흥하는듯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죽어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십일조의 대해 알아보자사람의 돈에 대한 애착은 겉으로 드러난 것보다 더 크다사람의 본성상 십일조를 드려 복을 받기 위한 욕심이 클까? 당장 아까운 십일조를 드리는 그 믿음이 클까?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며 십일조를 비판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 까지는 십일조를 강요하며 무슨 공식처럼 십일조=물질축복이라고 가르친 일부 목사님들 때문에 일어난 부작용이다.
그러나 이런 부작용때문에 말씀의 본질을 부인하는 것이 거짓선지자의 유형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왜 다들 더 많이 갖지 못해 안달일까?선지자들마저 맨날 더, 더 주십시요자식대까지 먹고 남도록 쌓아놓으려 한다. 그런면에서 빈손으로 은퇴한 한경직목사님의 리더십이 아쉽다. 천하의 모세와 엘리야도 다음 세대를 위해 깨끗하게 물러났다. 하나님이 아예 그들을 데리고 가셨다.
내려놓지 못하고 계속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하려 하는 목회자들은 그들의 내려놓는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한국교회 목사님들은 종이 되어야 하는데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처럼 처신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과도한 재물을 가지고 은퇴하는 목회자들은 막상 하나님 앞에서는 상이 없을 것이다. 이 땅에서 자기의 상을 이미 다 받았기 때문이다. 평생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어리석은 부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다만 잘 몰라서 저런 일을 했다면 돌이키고 회개하여 참 선지자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소망이다.
[출처: 카이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