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예수의 복음
마이클 F. 버드 | 신지철 역 | 새물결플러스 | 684쪽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복음서 이야기는 때로는 내용이 서로 겹치고, 때로는 어긋나는 것 같다. 이런 책이 어떻게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되었는지 연구하는 것은 흥미로운 주제이다.
기원후 30년경 예수는 갈릴리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했는데, 180년경에 이레니우스는 '넷'이라는 수의 장엄함과 강력한 특성을 언급하면서, 복음서는 사복음서 이상도 이하일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예수 전승에 대한 이야기가 어떻게 수집돼 전달됐으며, 그 기준은 무엇일까? 예수 전승과 복음서 전승 사이 연속성은 무엇이고 불연속성은 무엇일까? 이 둘 사이 많은 것들이 추가되거나 삭제되지는 않았을까? 불트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어 연속성은 불가능하고, 예수의 실제 말과 행동에 대한 것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인가?
그 외에도 초기 교회가 단 하나의 복음이 아니라 왜 네 개의 복음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할 수 있고, 이것은 사회적·역사적·문학적·신학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다. 또한 복음서가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종류의 문헌이며 누구를 위해 기록됐으며 어떻게 전파됐는지에 대한 것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 복음서의 양식은 이야기의 성격을 결정하기에 우리가 파악해야 한다.
또 신약성경으로 들어가는 문으로서 복음서의 위치는 정경적 의미로도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주는데, 거기서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고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복음서는 예수의 가르침과 죽음과 부활을 중심으로 형성됐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세워지고 펼쳐지는 구원의 진리이다. 즉 복음서는 모세오경이 구약을 여는 열쇠인 것처럼, 복음서 역시 신약을 여는 아이콘이다.
그리고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우리 마음 가운데 참회와 회심의 역사를 경험하게 되고, 그 분을 주님으로 인정하고 제자도의 길을 걸어간다. 복음서는 우리를 순종하게 만들고, 새로운 삶으로 초대한다. 모든 성경이 그렇듯, 복음서는 영혼과 생명의 전환점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삶과 십자가와 부활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이 놀라운 복음서, 가장 많은 사본을 포함하는 복음서, 과연 이것이 어떻게 사복음서가 되어서 우리 손에 오게 되었을까?
우선 책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면, 1장 '서론: 예수에서 복음서로'는 예수님 당시 복음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시대적 상황과 구약의 배경을 통해 정확하게 설명하고, 하나님 나라를 안내하는 성령의 사역은 예수님의 사역과 말씀을 중심으로 펼쳐짐을 소개한다. 2장 '예수 전승의 목적 및 보존'에서는 예수 전승이 초기 교회의 신앙을 위해 전승된다. 각기 스승으로서, 영웅으로서, 운동의 창시자로서, 목격자들에 의해 비망록 등 다양한 증거들이 제시된다.
3장 '예수 전승의 형성 과정'에서는 베일리의 '비공식적으로 통제된 구전'과 스칸디나비아 학자들이 제시하는 '랍비 교육 방법'의 장단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이 두 가지의 장점을 보완하여 제임스 던의 '사회적 기억 이론'을 기초로 한 설득력 있는 예수 전승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즉 개인의 기억은 변형되고 왜곡돼 신뢰할 수 없지만, 사회적 기억은 이런 것들을 통합하여 바른 인식을 도와줘 예수에 대한 바른 상을 회복시켜 준다는 것이다.
4장 '복음서의 문학적 유전학'에서는 복음서 사이에 관계를 추적하고 밝히는 부분이다. 복음서는 서로 연관돼 있기에 그것을 정확하게 밝히는 것은 단순하지 않다. 거의 확실한 것은 마가복음이 가장 먼저 저술됐다는 것이고, 누가와 마태가 마가복음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단순히 공관복음에 의존한다거나 독립적이라 말할 수 없으며, 저자가 창의적인 방법으로 구조와 장르를 작성했다.
5장 '복음서의 장르 및 목표'에서는 장르가 이야기와 내용을 전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복음서가 어떤 장르인지 추적하고 복음서의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많은 이들에게 복음서가 새로운 문학 양식이고 그 자체로 독특하며 유일한 기독교 문학의 유형이라고 알려진 것에 비해, 저자는 유대교 문학과 당대의 문학을 비교하며 복음서의 장르와 목적을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6장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중복음'에서는 초기 교회가 어떻게 사복음서를 채택하게 됐는지 여러 교부들의 주장과 글들을 통해 밝혀내고 있다. 당시 사복음서가 광범위하게 널리 읽혀지고 유통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 시대에 널리 알려진 예수 전승과 교회의 주인인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복음서들이 많이 있는 상황 속에서 사복음서는 점차 존경받게 되는데, 가장 사도와 연관성이 있고 예수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책은 복음서에 대한 학문적이고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다룬다. 또 사복음서가 형성되기 전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그 환경들을 다루고 있기에,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저자의 장점은 이런 아카데믹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에서 '믿음에 기초한 비평(believing criticism)'이라는 것으로, 기존 비평의 한계를 극복하여 원 의미에 다가가도록 인도한다.
솔직히 필자에게 복음서 연구는 신대원 시절부터 어려웠던 과목이고, 사본학 또한 흥미롭지 않았던 분야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읽고 설교를 듣는 복음서가 어떻게 형성되고 왜 네 개가 되었는지, 목사로서 당연히 성도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된다는 생각에 의무감으로 읽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결과 책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첫째로 예수 전승의 다양한 의미를 보여준다. 우리는 예수 전승을 단순히 말로만 전달됐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데, 저자는 여러 학자의 다양한 의견을 정리하여 패러다임을 전환시킨다. 즉 이것은 오직 언어만으로 다른 이에게 전달된 것이 아니라 실천 및 행위와 행동을 통해서도 전달됐고, 그 방식은 공동식사, 세례의식, 치유, 기도, 세족식, 축귀, 예수의 행동 모방 등 다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전승은 당시 교육적이고 수사적인 장치가 발달하여 예수의 가르침이 효과적으로 기억됐음을 알 수 있다. 또 목격자의 역할은 살아있는 목소리로서, 전승의 결정적 역할이 되었다. 아울러 비망록이 있어 예수 전승을 더욱 설득력 있고 풍성하게 했으며, 기존 공동체나 교육집단이 늘 스승의 어록을 외우고 남기는 전례대로 동일하게 예수 전승을 형성시켰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예수 전승의 형성 과정에서 '사회적 기억 안에서의 예수'라는 모델의 발견이다. 예수님의 기억은 결코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사회적 배경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개인적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은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에 그것을 검증해줄 집단이 요청된다. 그래서 기억은 사적인 마음으로 지지되기보다, 공동체를 통해 분류되고 공유되며 퍼져나간다. 예수 전승 역시 사회적 기억 안에서 공동의 기억으로 보존되고 전달된다.
즉 사회적 기억 이론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술성과 텍스트성 사이에서 가장 확실한 예수 전승을 전달해 준다. 그래서 복음서가 만들어내는 것은 역사적 예수를 신화화시킨 억지스럽거나 강요된 믿음이 아니다. 복음서는 공동의 기억을 통해 우리를 진실된 믿음으로 초대한다. 복음서 저자들은 실증주의적 인식론을 만족시키는 목적으로 전승을 받고 저술했다. 그리하여 이 이론은 우리에게 전승의 형성을 효과적으로 이해시켜 주고, 오늘날에도 예수의 음성을 듣게 해 준다.
세 번째로 복음서 장르를 확정한다. 그 동안 복음서 장르는 다양하게 제시됐고 이것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지 않았기에, 비극, 희극, 전기, 서신, 예언서 등 여러 갈래의 해석들이 존재했다. 저자는 다양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종합해, 복음서의 장르라는 본질적이고 역사적이고 해석학적인 과제를 해결한다. 그는 주장하기를 복음서는 '그리스-로마의 전기'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당시의 전기와 마찬가지로 복음서의 목적이 다양하다고 설명한다. 즉 변증, 교훈, 사회적 합법화, 예배, 복음 전파 등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복음서가 당대의 초기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전기가 그렇듯 모든 이들을 위한 책이었으며, 이것을 읽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게 되기를 바랐다. 즉 이 책의 독자들은 초기 교회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공동체였지만, 글의 형식상 광범위하게 퍼졌을 것이고 이방인을 위한 책으로의 역할도 했을 것이다.
네 번째는 사복음서 확정에 대한 전통적 설명이다. 신약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된 것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이다. 그러나 최종 정경이 확립되기 전, 이미 사복음서 확립에 대한 치열한 의논이 있었다. 그리고 사복음서 확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리옹의 위대한 주교 이레니우스, 사도들의 신학에 꽃을 피웠다고 할 수 있는 어거스틴이었다.
특히 이레니우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동서남북 4지역으로 나뉘고 바람이 네 곳에서 불어오고(겔 37:9) 교회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며 교회의 기둥과 기초는 복음서와 생명의 영이라고 한다. 물론 그의 해석이 알레고리적인 면이 있으나, 저자는 그의 시대와 환경이 이 신학적 취향과 일치한다고 판단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복음서는 사도 전승의 뿌리를 내리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복음은 하나의 복음이지만, 네 개라는 복수성이 있다. 결코 하나의 이야기만이 독점권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복수성은 다른 저자의 관점과 풍성함을 통해 예수님을 입체적이고 신비롭게 보여주고, 그분의 사명과 목적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는다. 즉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시고 치유하고 고치시고 싸매시고 가르치시고 회복시키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에게 헌신하고 순종하도록 도와준다.
또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우리가 이해하는 예수님에 대한 한계와 경계선을 제공받는다. 즉 순전히 인간으로만 이해하거나, 환영이나 꿈에서나 나타나는 존재나 또는 천사와 같은 존재, 국가를 부정하는 예수나 국가주의적인 예수 등 우리가 이해하고 상상할 수 있는 예수님에 대해 명확한 선을 제시해 준다. 그래서 사복음서는 우리가 예수님에 대한 분명한 믿음을 갖게 하고, 우리에게 합당한 정체성을 바르게 심어준다.
끝으로 사복음서는 신약의 아이콘이고, 저자의 표현대로 신약의 리허설이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구주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을 배우고 그분이 걸어가신 길을 뒤따라 간다.
복음서를 통해 그분의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와 하늘나라에 이르는 삶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임마누엘이시고 왕이시며 치유자시고 인성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우리는 구약을 성취해 복음을 영광스럽게 드러내는 사복음서 연구를 통해 더욱 예수를 향하게 된다.
방영민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열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