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고등학생 시절 기독교학교를 다녔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이런 학교는 영어로 ‘크리스천 스쿨’이라 불러야 할 것 같은데 ‘미션 스쿨’이라 했다. 지금 생각하면 하나님 섭리이다.
당시 필자는 예수전도단 예배를 다니며 은혜를 받았다. 그때가 70년대 말이었다. 그 집회를 통해 ‘영혼구원,’ ‘비전,’ ‘열방’이란 말을 처음 접하며 가슴이 뛰었던 기억이 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며 나도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영혼을 사랑하는 것 때문에 기꺼이 목숨도 바치겠다고 결단하는 친구들이 그때는 많았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나는 2007년도부터 터키선교를 시작했다. 그때 만난 선교사중에 이스탄불에서 ‘기도의 집’ 사역을 하던 허정학 선교사 부부가 있다. 그들이 바로 예수전도단 파송 선교사들이었다. 평신도로서 예배 인도 사역에 허 선교사처럼 깊은 영감으로 예배를 인도하는 사역자를 본 일이 없다. 그분의 찬양 인도는 깊은 기도로 이어지면서 찬양이 정말 하나님께 향하는 기도가 된다. 그분의 예배 찬양 인도는 찬양 중 기도로, 기도 중 말씀으로, 또다시 기도로, 찬양으로 그러면서 점점 더 깊은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로 이끌어진다. 신비하기까지 하다.
아! 이것이 예배구나. 나는 20여년 목회를 하며 교회에서 얻지 못한 신비한 영적 교제의 체험을 하면서 참예배를 회복하고, 참된 교회로의 정체성을 회복하게 되었다. 허 선교사 부부는 터키를 품고 예배를 올려드리는 예배사역을 담당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목회자이든 일반 성도이든 여러분은 예배를 얼마나 오랫동안 드려 본 경험이 있는가?” 묻는다. 대부분 주일예배 시간이 유행처럼 1시간 전후 10분 정도로 정해져 있는 현대 예배에 익숙해져 있지 않은가? 1시간 20분이 넘어가면 주리를 틀고 인상을 쓰고 조금 더 길어지면 온갖 불평을 하며 예배당을 나서는 교인들을 보지 않았는가?
우리 교회는 중국 파송 선교사가 있어서 나는 몇 번 중국 선교지를 방문할 때 중국 한족들의 가정교회 예배에 가서 함께 예배 드리거나 혹은 말씀을 전한 적이 있다. 그들의 예배는 마치는 시간을 정하지 않는다. 오전 9시에 시작한 예배가 오후 1시가 되어도 끝나지 않고 진행하다가 인도자가 일단 여기서 멈추고 점심 먹은 후에 다시 예배드리자고 하는 것을 보았다. 예배에 참석한 교인들은 눈이 퉁퉁 부은 이들이 많았다. 그들의 예배는 열정이 있고 간절하다. 절박하고 진실하다. 온 힘을 다하는 그 예배가 중국교회를 일으킬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그런데 이스탄불 허 선교사 부부의 사역은 일주일간 24시간 연속으로 총 144시간 동안 쉬지 않는 예배의 탑을 하나님께 쌓는다. 1시간짜리 맞춤형 예배에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그런 예배는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가능하다. 아니 그 예배가 터키를, 이스탄불을 살리고 있다. 정말 목숨을 걸고 드리는 예배다. 고단하고 지치는 중에, 포기하고 싶고 딱 멈추고 싶은 한계를 극복하며 드리는 예배. 찬양과 기도와 말씀의 예배가 계속하여 이루어지는데 시간마다 새롭다. 부흥을 실감한다. 참여하는 이들의 영성의 부흥이다.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영혼들을 품고 드리는 그 예배에 꼭 한 번 참여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