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한인교회협의회(회장 김종국 목사)가 주최하는 2017 호산나복음화대회가 23일부터 25일까지 한소망교회에서 진행 중인 가운데 대회 이튿날인 24일 권준 목사가 1세대를 향한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1.5세 목회자인 권준 목사는 전형적인 고령화된 교회였던 시애틀형제교회 부임 후 현재까지 끊임없는 변화를 외치며 다양한 세대가 함께 동행하는 현재의 교회로 이끌었다. 권준 목사는 이튿날 집회에서 정체된 이민교회의 부흥은 1세대들의 철저한 회개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해 주목된다.
권준 목사는 이날 ‘사랑으로 하나되자’(계2:1-5)는 제목의 말씀에서 “이민교회에서 자녀들이 교회를 많이 떠나는 안타까운 상황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1세대들의 회개로부터 교회부흥이 시작된다”면서 “오래되고 고령화된 교회들에서 1세대들이 회개하고 사랑의 관계를 회복할 때 교회 부흥의 기초가 다시 쌓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히 권준 목사는 사랑의 관계와 관련해서도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듯이 사랑의 관계가 먼저 형성되면 상대의 단점보다는 장점이 보이게 된다”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먼저 서로 부둥켜 안고 이 사랑의 관계를 바탕으로 아메리칸 드림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 나라 킹덤 드림을 꾸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둘째날 집회는 육민호 목사(서기)의 사회로 뉴저지온누리교회 찬양팀 경배찬양, 오범준 목사(뉴저지방주교회) 기도, 실버선교, 밀알선교, 원주민선교 보고, 윤석래 장로(감사) 성경봉독, 필그림교회 성가대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찬양, 권준 목사 말씀, 뉴저지 권사합창단 ‘주 함께 하시네’ 특별찬양, 김은범 목사(사랑의글로벌비전교회) 통성기도, 민경수 목사(감사) 봉헌기도, 뉴저지남성목사합창단 봉헌송, 장동신 목사(총무) 광고, 정성만 목사(증경회장) 축도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다음은 권준 목사 이튿날 집회 말씀 주요 내용이다.
‘사랑으로 하나되자’(계2:1-5)- 권준 목사
여러분들이 교회를 섬기면서 직분은 공로가 아니라 은혜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사역이라는 것은 내가 그 사역을 할 수 있을만한 능력이 있어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다. 사역이 없으면 진전이 없다. 사역이 없으면 살아날 수가 없다. 어떤 사역이든 한 가지 이상하시기 바란다. 나를 위해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것이다. 직분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여기까지 와 있는 것이다. 공로가 아니다. 내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라는 사실이다. 나는 행복하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형제교회를 방문하시는 분들은 격려를 해주시는데 목사님 성도들의 얼굴빛이 다릅니다. 그렇게 증거 해 주신다. 이 교회는 살아 있네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죽은 교회가 있다는 것도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하게 됐다. 가장이 인상 쓰고 들어오면 아이들도 슬금슬금 자기 방으로 들어가게 된다. 지도자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지도자가 원망과 불평의 말을 한다면 그 공동체는 패배의식에 젖을 것이다. 목사여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의 목사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기 바란다. 사랑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구체적인 행동은 목회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신앙이 병들 수밖에 없다.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를 위해 기도해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도록 인도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보다 중요한 킹덤 드림 꾸자=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 더러운 생각을 갖지 말기 바란다. 생각도 내 마음대로 못하느냐고 하는 분이 있었다. 마음대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란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시고 그런 고백과 소망과 믿음을 가지시기 바란다. 완벽한 교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금도 좋지만 5년 뒤 10년 뒤 이 보다 더 좋을 수 있는 교회라는 소망을 갖고 함께 전진하시기 바란다. 패배의식에 사로 잡혀서 비교 의식 가운데 열등감에 빠지면 안 된다. 저 사람은 똑똑한데 나를 왜 이런가. 너는 택한 백성이고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분의 지으심을 받았다. 우리는 걸레가 아니라 걸작품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신 사명이 있다.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 올 때 어떤 꿈을 가지고 건넜는가. 거의 대부분 가져 온 꿈이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대부분 가지고 왔을 것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 성공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우리가 인격적으로 만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꿈이 심겨지는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 그것이 바로 꿈이다.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창세기에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은 모든 족속과 모든 민족이 복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약속이다. 내가 믿겠다고 고백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는 것이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내가 너로 복의 근원으로 삼겠다고 하셨다. 내가 할 일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것이다. 익숙한 삶, 내 중심의 삶, 나 중심의 편안한 삶에서 떠나라는 것이다. 내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말라는 것이다. 절대로 안주하지 마시기 바란다. 안주 하면 술이 따라 나오고 망하게 돼 있다. 무엇을 마실지 무엇을 입을지 구하지 말하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 필요를 다 아신다. 그것을 염려하는 것이 인생의 삶의 방향이 아니라고 하셨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이다. 재정이 필요하면 재정을 붙여주실 것이고 지식이 필요하다면 지식을 붙여주셔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하실 것이다. 우리는 아메리칸 드림이 아니다. 킹덤 드림이다. 우리 교회들로 말미암아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3년 전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님은 이들을 만나 주신다. 너희는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인생이 아니고 물고기를 잡는 것도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라고 하셨다. 인간을 변화시키는 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 이것이 하나님의 꿈이라는 것이다. 그 비전이 주어졌다. 그 비전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대표적인 인물이 베드로다. 베드로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정말 예수님의 제자로 멋지게 살고 싶었다. 정말 이 사명 이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었다. 목숨을 내 놓고 따르겠다고 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던 사람이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이들에 대항해 칼을 뽑아 들었던 베드로다. 그런데 이런 베드로가 한 계집종의 말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다. 이것이 베드로의 꿈이 아니었다. 목숨을 내놓고 따르고 고백했던 사람이 베드로다. 갑자기 죽음의 그림자가 덮치는데 살고 싶은 공포심에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 실패로 베드로가 얼마나 울었는가. 그 실패가 그를 짓누르고 있다. 멋지게 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사건이 내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나를 무기력하게 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섬기고 있는 형제교회의 문제였다.
▽1세대가 변화할 때 교회의 부흥이 시작 돼=형제교회는 71년도에 개척됐다. 다운타운에 미국 제일장로교회의 작은 예배당 공간을 빌려서 71년도에 얼마 되지 않는 유학생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렸다. 시애틀 가 보신 분도 있지만 도시가 남북으로 길게 형성돼 있다. 한국 사람이 시애틀에 오면 살고 싶어 하는 마이크로 소프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도시가 생겼다. 71년도에는 한인들이 얼마 없었다. 2000년 1월에 제가 3대 목사로 부임했다. 유학 와서 4년 동안 다녔던 교회다. 85년 여름방학에 시애틀에 형제교회를 갔다. 남쪽이 집이었는데 북쪽 친구의 집으로 갔다. 부모님의 눈치가 이상해서 오래 못 있었다. 친구 집에 전화하면 부모님이 전화 받으면 할 말이 없어서 끊기 일쑤였다.
자녀들이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냐면서 떠나가는 것이다. 장로님의 자녀들은 다 어디에 갔느냐는 것이다. 다른 교회로 갔으면 모르겠지만 아예 신앙을 버렸다. 1세대의 회개 없이는 다음 세대의 부흥은 없다. 우리 자녀들이 부모님이 믿는 하나님이 구원의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가. 제가 부임했을 때 건축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깊은 상처가 나오게 됐다. 마을 회관과 같은 주차장도 없는 오래된 건물에서 이전을 해야 하는데 실행을 못했다. 제가 부임하기 7년 전부터 건축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아무것도 결정을 못했다. 남쪽에 뭐가 났다고 하면 북쪽에 계신 분들이 반대했고 북쪽에 좋은 위치가 생겼다고 하면 남쪽분들이 반대했다. 그동안 건축헌금으로 150만불을 현금을 갖고 있었다. 상처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북쪽의 권사님이 급하게 연락이 왔다. 급하게 만나야 한다고 해서 무슨 일인지 전화로 설명 좀 드릴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안 된다고 만나자고 해서 갔더니 교회는 북쪽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했다. 또 그 소식을 듣고 남쪽 교인들이 남으로 교회가 와야 한다고 했다. 함께 모여서 식사도 하고 교제도 하지만 아직도 그 마음의 상처 때문에 부르르 떤다. 복음을 위해 힘 있게 전진해야 하는데 과거 상처에 붙들려서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모습이다. 이것이 형제교회의 모습이었다. 이런 과거의 상처와 실패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었겠는가. 회복의 능력이 과연 무엇인가. 바로 주님의 사랑이다. 사랑의 능력이다.
1세대의 죄악을 깨닫고, 다음세대의 부흥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하자. 다음 세대가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가 고민하며 기도하는 1세대들이 되자.
▽사랑의 관계 회복이 변화를 가져 온다=사명을 회복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은 사랑의 능력이다. 형제교회를 변화시키면서 기성교회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그 꿈을 가지고 부임 이후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많이 전했다. 예배 때는 좋았다. 그런데 그 이후 집에 오면 공허한 것이다. 과연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했다. 준비한 말씀을 갖고 예배드릴 때면 감격스러운데 집에 오면 공허했다. 그것이 4주를 지나 5주일째 되는 주일날이었다. 축도를 하고 계단으로 내려가 서 있으면서 사람들과 인사했다. 서 있으면 성도님들이 내려오시는데 인사드리려고 한 발을 내딛는데 갑자기 너무 사랑스러웠다. 부둥켜 안고 진심으로 인사를 드렸다. 권사님 사랑합니다. 집사님 사랑합니다. 진심으로 인사했다. 그 때 머리를 강타한 메시지가 준아 이것이 목양이고 목회라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깨달았다. 변화라는 것은 사랑의 관계, 사랑이 힘이 목적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목적이 먼저가 아니라 사랑이 목적으로 나아가게 한다. 우리 어르신들이 경배와 찬양을 부르는 것이 힘들었을 것이다. 백합 회원들은 지금까지 지내 온 것 크신 주의 은혜라 이런 찬양을 불러가 가슴이 울컥하시는 분들이다. 경배와 찬양을 도입할 때 백합 회원들에게 우리 손주들 자손들 다 어디갔는가. 우리 자손들이 함께 와서 3세대가 함께 와서 예배드리는 교회를 만들자고 했다. 알지 못하는 찬양을 따라 부르는데
회의를 했을 때 느끼는 것은 논리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었다. 감성적으로 따르는 것이었다. 사랑의 공동체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런 상황 속에서 회개를 선포했다. 자손들, 자녀들 다 어디에 갔는가 회개를 선포했다. 그리고 두 가지를 놓고 기도했다. 다른 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에 교회를 세우자고 했다. 그리고 1세대가 좋아하는 양식이 아니라 젊은 이들이 좋아할 수 있는 양식으로 교회를 짓자고 했다. 정말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며 기도하자고 했다. 성도들이 기도하고 회개하기 시작했는데 정말 하나님 앞에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했다. 상대방을 내가 용서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기 시작했다. 하나님 앞에 정말 무릎꿇고 기도할 때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서로를 감쌀 수 있는 그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데 마침 오랫동안 그 정거장에 주차된, 정차된 낡은 기차가 출발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고 하나님이 땅을 주시는데 차로 40분 떨어진 곳에 땅을 주셨다. 생각해 보시라 교회가 다 자기 집 뒷마당으로 와야 한다고 하던 사람들인데 40분 떨어진 곳에 주셨다. 그런데 성도들이 고백하기를 교회가 멀어서 힘들면 자기들이 집을 이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교회가 건축되는데 그 지역이 같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새 역사가 시작됐다. 사랑으로 하나되는 역사로 인한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질문하셨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사랑하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모르겠는가.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했으니까 상처 난 곳에 소금 끼얹는 질문이 아니다. 거기에 무슨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겠는가. 여기에는 중요한 고백과 전제가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주님은 아신다. 꿈을 향해 나가야 한다는 대화가 오간다. 주님의 사랑이 쏟아지고 그 가슴을 두드린다. 상처 때문에 무기력하게 갇혀진 하나님의 꿈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다. 베드로야 일어나라는 것이다. 그 상처로 인해 주저 앉아 있지 말고 꿈을 향해 나가고 내 양을 먹이라는 것이다. 이 주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베드로는 재개한다. 멋 훗날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고,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고 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 고난이 있다. 고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뜨겁게 더 열정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허다한 허물을 덮는 사랑의 관계=스트레스가 쌓이면 상처 나는 말을 던지고 마음을 긁는 말을 던진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 무엇보다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고난이 찾아오면 힘든 상황이 찾아오면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것이다.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것이다. 한번의 실수를 덮어주는 것이 아니라 허다한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다. 상대방의 약점이 잘 보이지 않는다. 사랑이 식을 때 상대방의 단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여러분 남편, 아내의 단점이 선명하게 보이는가. 성도의 부족한 점이 선명하게 보이는가. 목회자의 단점이 선명하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내 안에 사랑이 식어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사랑이 식으면 현미경이 된다. 현미경으로 물을 보면 물을 못 마신다. 세균이 얼마가 많겠는가. 현미경으로 보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예수님이 우리를 덮어주신 것 처럼 우리도 서로 덮어줘야 한다. 더 뜨겁게 사랑하자.
여러분의 교회가 정말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서로를 덮기를 바란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이 놀라운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자.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 죄악 한 복판에 죄와 상관 없으신 하나님이 들어오셨다. 피조물을 살리기 위해 피조물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다.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 이 사랑을 묵상하는 가운데 사랑이 타오르시기 바란다. 일어나, 일어나, 괜찮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하나님이 주신 꿈을 향해 나아가야지 라는 음성을 듣기를 바란다. 여러분,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1대1로 무릎을 꿇고 나가면 나를 누구보다도 편애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그들조차도 사랑하셔서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신다. 모두를 사랑하시는데 하나님께 일대일로 대면하면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세요.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더 사랑하세요. 여러분, 나를 누구보다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 사랑을 닮아가시기를 바란다.
목사로 예수님의 능력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 병든 자를 고치는 치유의 능력이 목사로서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말 닮고 싶은 것은 간음의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정죄하지 않고 재기시킨 그 사랑을 닮고 싶은 것이다. 지금은 배반하지만 나중에 복음을 들고 산을 넘는 발을 위해 씻기신 그 사랑을 닮고 싶다.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꿈이 정말 크다. 한 번도 나를 버린 적이 없다고 하신다. 그 꿈을 향해 전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을 가지고 영혼구원을 위해 전진하는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다.
당신은 왜 그 교회를 나가십니까 했을 때 듣고 싶은 대답, 들려주고 싶은 대답이 무엇인가. 거기에 가면 그곳에 사랑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힘은 건물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힘은 사랑의 능력에 있다. 뉴저지의 교회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하며 그 사랑에 반응해서 두 팔을 벌려 껴안아주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전진하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 가자. 교회여 일어나라. 왜 주저 앉아 있는가. 이 세상을 축복하고 열방을 축복하는 주님의 교회가 되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