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달력을 붙들고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둘째 녀석에게 제가 무얼하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녀석은 아주 환한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제 생일이 얼마나 남았는지 세고 있어요..." 아마도 녀석에게 뭔가 갖고 싶은 것이 생긴 모양인데, 자기 생일이 되면 아빠가 그걸 사주지 않겠나...하는 마음에 달력을 보며 그 남은 날들을 세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던 터라 녀석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근데 넌, 예수님이 언제 돌아가셨는지 아니?"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지, 녀석은 무심코 이렇게 말했습니다. "1999년..." "엥? 뜬금없이 웬 1999년?" 아빠의 표정이 좀 이상했던지, 녀석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아니 그게 아니라... Friday에 돌아가셔서 Sunday에 다시 살아나셨어요"라고 곧 정정했습니다. 그래도 대충은 알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녀석이 왜 하필이면 1999년이라고 대답했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제 얼굴에 웃음이 번졌습니다. 1999년은 다름 아닌 둘째 하영이가 태어난 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언제 돌아가셨는지를 물어보았지만 녀석의 머리 속엔 온통 생일 선물뿐이었고, 그래서 무심코 1999년이란 말이 나와버렸던 것입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이런 하영이의 마음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재밌고, 또 그 세상에 바라는 것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분의 십자가 고난을 잊은 채 늘 세상을 목말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 한 사람이 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0절에 보시면 예수님의 제자 중 하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나라에서 나의 이 두 아들을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그리고 바로 그 앞 절은 이런 말을 듣고 계셨던 예수님의 마음이 과연 어땠을 지를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 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생각하고 계신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은 영광을 꿈꾸고 있습니다. 철저한 동상이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열화와 같은 환영 속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이 그토록 고독해보이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맞는 고난주간입니다.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는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로 나아가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할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저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예레미야 29:11). 우리의 평안을 위해 우리의 십자가를 온몸으로 견뎌주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또 그분이 당하신 고난을 묵상하며 그 안에서 깊은 평안을 누리실 수 있는 한 주간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실 수 있다면, 날과 때를 정하여 금식하면서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을 더욱 깊이 묵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