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단이라 불렀던 땅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할할 때 단 지파는 블레셋 평야 부분(소라와 에스다울과 이르세메스와 아얄론, 에그론, 욥바, 맞은편 경계)을 할당받았지만 당시 우수한 철기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의 땅을 차지하지 못했다. 결국 단 지파는 블레셋에 패하여 할당받은 지역에 주거하지 못하고 그 땅에서 북쪽으로 90마일 이상 올라간 당시에 레센(삿18:29)이라 불리던 이곳을 점령하여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 하였다.(수19:40-48)
사사기에는 단 지파의 라이스(레센) 지역의 점령 장면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삿18:11-29) 단 지파 가족 중 600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기랏여아림을 거쳐 미가의 집에 이른 후 라이스 땅에 대한 탐지 소식을 접한다.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로 치고 불로 그 성읍을 사른 다음 단 자손은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있었다. 북이스라엘 여로보암 시대에 금송아지 제단이 단 자손의 신상 위에 다시 세워진다. 처음부터 단 자손은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결국 이러한 우상 숭배는 북이스라엘을 앗수르의 말 발굽아래 놓이게 만들고 BC722년 앗수르에 의해 철저히 나라가 파괴된다. 지금 단에 가면 고대 가나안 시대의 성벽의 모습을 볼 수 있고(BC2700-2400), 여로보암이 만들어 놓았다는 금송아지 제단의 기초를 볼 수 있다.(BC930)
고고학이 말하고 있는 텔 단
“텔 단”은 언덕을 말한다. 텔은 언덕이고 단은 지명이다. 고대 사회에 도시의 흥망에 따라서 옛 도시 위에 새 도시가 건설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형성된 언덕을 텔이라고 부른다. 고대 폐허의 무더기 즉 토총을 의미한다.
텔 단은 가나안 시대부터 북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유적이 있는 곳이다. 텔 단의 첫 발굴은 1966년에 이루어지는데 이때 지금 보이는 성문과 벽들 그리고 북이스라엘 시대에 세워진 금송아지 제단을 발굴하였다. 이곳에서 가나안 시대의 도자기들이 발견되었다. 단 지파가 오기 전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셈이다. 1993년 7월 21일 히브리대학 고고학 발굴팀이 텔 단의 성문 밖에서 돌담을 파헤치던 중 돌 조각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 조각에는 히브리어와 모양이 비슷한 아람어로 된 글이 새겨져 있었다. 길이 32cm 폭22cm 크기의 조각에는 13줄이 기록되어 있었다. 전체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아람의 한 왕이 이스라엘의 왕을 죽이고 정복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이것은 서기전 9세기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세력 다툼 속에 유다 왕 아사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북이스라엘을 징벌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조공을 바치었다는 기록이다.
텔 단은 자연 환경이 뛰어난 곳이다. 텔 단에 들어서면 마음이 시원해지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 샘과 레센 샘(에덴가든)에서 솟구치는 샘물은 상류 요단강의 근원이 되며, 엄청나게 쏟아지는 물의 양은 측량할 수가 없다.
생명수 넘치는 아름다운 곳
북이스라엘 시대의 단은 금송아지 제단이 있어 생명이 희생되는 곳이었지만 현대의 단은 생명이 터지고 분출하는 시원한 모습으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네게브 광야와 유다 광야를 지나온 사람들은 단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들을 보며 이곳 이야말로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동안에 광야의 메마름만 보아온 사람들에게는 물이 솟구치는 모습만 보아도 은혜가 아닐 수 없다. 단에서 발원하는 샘물은 상류 요단강이 되어 갈릴리 바다를 거쳐 하류 요단강을 통해 염해에 이른다. 이스라엘에 유일하다고 볼 수 있는 상시천이자 생명의 젖줄인 셈이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경계를 브엘세바에서 단까지로 하였다(삿20:1, 삼상3:20). 광야인 브엘세바에서 물이 터지는 샘물의 근원지인 단까지는 17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결국 단에서 시작한 생명의 물이 브엘세바까지 적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왜 단에서 가나안 땅의 삶을 시작하지 않고 브엘세바로 내려갔을까? 아브라함은 그의 생애 동안 물을 찾아다니다 끝난 인생이었다. 거의 1백년을 물 근원을 찾아다닌 것이다. 그럼 아브라함이 단에 대하여 몰랐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북쪽 사람이라 북쪽 지역 환경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럼 왜 많은 물이 있는 단을 내버려 두고 물이 없는 브엘세바 근방에서 일생을 살았고 그 자녀 이삭과 야곱도 역시 그 뒤를 이어 물이 없는 곳만 찾아다녔나? 구약을 대표하는 3대 족장은 약속만 가지고 살았지만 신구약을 대표하는 예수님은 물을 찾으러 광야에 다닐 필요가 없다. 그 자신이 생명의 물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단의 물은 마르지 않고 그 길고 깊은 건기에도 계속하여 흘러내리고 우기가 시작되면 더욱 많은 물이 흘러서 갈릴리 바다로 가게 된다. 이 물은 이스라엘을 살리는 생명의 물이 된다. 단의 물이 이스라엘의 육신의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면 복음의 물결은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소생시키는 생명의 물이다. 거침없이 복음의 물결이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전역에 흐르기를 기대하며 단 숲의 길을 따라 오늘도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