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에 소담스런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내린 눈으로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내리는 눈 때문에 대부분 들뜬 모습입니다. 늦은 시간 까지 낄낄거리며 눈을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참 좋을 때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눈이 올 때면, 전도사 시절 함께 교회를 섬겼던 장로님 생각이 납니다. 내리는 눈을 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신 목사님이, "오늘 같은 날 스키나 타러 갔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을 듣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한텐 오늘같은 날이 얼마나 힘든 날인데..."라며 말 끝을 흐리셨던 장로님... 그 장로님의 얘기를 듣고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나는 나중에 담임 목사가 되면 아무리 눈이 와서 신이 나도 저런 말 하지 말아야지..." 아무리 신이 나도,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밤이 깊어지면서 눈 발이 굵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온통, '내일 학교에 갈 것인가'에 쏠려 있는 것 같습니다. 날씨 채널을 보면서 자기들끼리는 이미 내일 학교가 없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도 연신 학교 홈페이지를 확인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No School~" 이층에서 쿵쾅거리던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니 학교가 캔슬 되었다는 공지가 뜬 모양입니다. 개구리가 올챙이적 생각 못한다고, 학교 안가는 것이 뭐 그리도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과 20년 전, 눈만 내리면 저도 학교가 캔슬 되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유학까지 와 비싼 등록금 내고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도, 왜 그렇게 눈만 오면 수업이 캔슬 되기를 바랬었는지... 그런데 지금은,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그 때를 추억할 때마다 내게 다시 그런 시절이 올 수 있다면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공부를 해서 내 인생을 준비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철이 들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철이 들었다기 보다, 그 시간들을 살아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미 살아봐서, 이전에 의미없이 보냈던 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 시간이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 126:6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지금'이라는 시간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가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오늘이라는 시간들이 모여 내일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우습게 여기는지 모릅니다. '낭만이란 것을 잊어버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눈이 내리면,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거워 하는 마음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즐거움으로 인해 오늘 우리가 뿌려야 할 씨를 뿌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후회스러운 내일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오늘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내게 주어진 오늘에 감사합시다. 그리고 오늘이라는 시간을 살며 우리가 뿌려야 할 씨가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오늘도,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실 수 있는 우리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