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성경에서 다문화 목회사역을 위해서 어떤 가르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계시는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의 비유와 가르침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다문화 목회사역의 중요성에 관하여 배울 수 있게 된다.
첫째 우리가 아는 마태복음 25장 38-40절에서 말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우리는 이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 하나를 묵상해 보아야 하는데 그 단어는 바로 “지극히 작은 자”라는 단어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예수님 자신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하고 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지극히 작은 자”란 표현은 마태복음 10:42; 18:6, 10, 14에서는 '소자 중의 하나'라는 표현과 마태복음 18:5에서의 '어린아이 하나'라는 표현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게 된다. 이 표현은 매우 축조 지향적인 묘사라고 말할 수 있는데 특히 이 단어는 “작은 자”를 “지극히”라는 단어를 추가 사용하여 최소 단위의 상태에 있는 즉 “가장 작은 자”를 표현하는 단어라고 해석해 볼 수가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지극히 작은 자”란 바로 이 땅에 살아가지만,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그렇다. 이 세상에는 소외된 자들이 많이 살아가고 있다. 어딜 가나 세상에서 소외받고 천대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와 같이 세상에서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살아가는 소외된 자들과 함께하셨고 친구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부르기를 “죄인들의 친구”라고 조롱하며 부르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이 “지극히 작은 자”로서 세상에서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방인들도 예수님 때문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마음에 평안과 용기를 얻으며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누가복음 10장 33절에서 37에서 소개하고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다문화 목회사역의 중요성과 필요에 관하여 배울 수 있게 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혹자들에게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이란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인, 혹은 히브리인들로부터 기원한 민족이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은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되기 전까지 한 나라에서 살았던 동족들이었다. 그러나 연합 이스라엘 왕국은 원전 931년 무렵 분열되어 북이스라엘 왕국은 아시리아에 점령되었고, 남유다 왕국은 좀 더 뒤에 신바빌로니아 왕국에게 점령되어 바벨론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흘러 남유다인들은 아케메네스 왕조시대에 페르시아에 의해 해방되어서 팔레스타인 지방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게 되면서 자기네들이 고대 이스라엘의 정통 후손이며 팔레스타인에 그대로 남아있던 북 이스라엘인들은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르면서 그들을 이민족처럼 차별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마리아인의 비유의 시작은 율법 교사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율법 교사는 특별히 자기의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질문하기를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 교사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려주신 후 다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냐?”고 다시 질문을 던지셨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의 목적과 방향이 무엇이었는지를 배우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들과 다른 피부색과 문화 그리고 언어와 출생지까지도 다른 이웃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과 같이 돌봐야 함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의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방향과 목표가 이 땅에 소외 받고 고통당하는 이웃인 이방인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다문화 목회의 중요성인 것이다.
지금 우리 주위에도 세상에서 소외당하고 상처와 아픔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신들을 칭하면서 그들에게 아무런 관심도 사랑도 없는 무관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누가 먼저 그들을 돌보며 사랑해야 할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해 보자. 그리고 말씀대로 예수님의 사랑과 생명의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보자. 그와 같은 우리의 모습이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 아닐까?
벌써 2017년이 시작되어 1월의 중반을 달리고 있다. 모두가 새로운 결심과 소망을 가지고 한해를 시작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한 번 마음속에 예수님의 말씀과 도전으로 활기찬 새해를 시작해 보자. 바라기는 우리 삶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가 되어 주님 앞에 올려 드릴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