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국민일보 기사를 보니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대한 선결과제를 “물질주의”라고 꼽는다 했다. 부연하면, 한국의 신문과 방송, 그리고 인터넷 언론 기자들(한기언)의 인식조사 결과 한국교회의 최대 선결과제의 44.4%가 “물질주의와 세속화”요, 그 다음 34.2%가 “목회자의 자질 문제”라고 답했다는 게다.
그렇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갑론을박 문제의 가장 큰 중심에는 분명히 돈과 세속화가 자리를 잡고 있다. 교회 지도력 문제의 중심에도 돈과 세속화가 자리를 잡고 있고, 그것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비판하는 자들의 관심 역시도 결국은 물질에 대한 집착이 그 중심에 있다. 성경은 분명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라고 말씀하지만, 교회 문제의 중심에 돈이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의 최고 관심 역시도 돈에 대한 집착인 게다.
퇴니스(F. Tonnis)는 그의 명저 “게마인샤프트와 게젤샤프트”(Gemeinschaft und Gesellschaft)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과연 무엇인가를 그 누구보다도 잘 정의해주고 있다. 인간의 유대관계는 언제나 “자연의지와 합리의지”에 따라 공동체로 발생하게 되는데 “자연의지"는 “게마인샤프트”를 가능케 하고 “합리의지”는 “게젤샤프트”를 발생케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즉 혈통과 우정으로 엮어진 공동체는 “게마인샤프트”요, 거래 타산적 유대관계에 의한 공동체는 “게젤샤프트”라는 게다. 그렇다면 오늘날 돈 때문에 그토록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한국 교회 신앙 공동체의 정체는 과연 “게마인샤프트"일까? “게젤샤프트"일까?
“게젤샤프트”적 교회는 언제나 맘모니즘 “물량주의”적 가치관에 빠져서 물질지향의 세속가치들이 교회 안에 만연되어 있다. 그래서 순수한 신앙 공동체가 되어야 할 교회 공동체가 결국은 맘모니즘의 물신(돈)에 의해 비난의 나팔을 불고 비틀거리며 쓰러지는 게다. 교회는 결국 “비즈니스 마인드”의 세속가치에 의해 그 의미와 목적을 두는 천박한 모습으로 전락하는 게 당연하다. 교회가 결국은 이런 세속적인 가치와 잣대로 인한 비 신앙적 수단들의 노예가 되고 만다는 게다.
더구나 교회가 세상과 사회 공동체를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책임에는 엄두도 못 내게 되고, 오히려 교회의 우물 안에만 갇혀서 “기존의 질서”안에서 힘겨루기에 전력하거나, 서로에게 상처만 안기는 우를 범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교회 공동체로 인해 교회가 정녕 “게마인샤프트”가 “게젤샤프트”로 변질되고 말았다는 세상으로부터의 신랄한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한국 교회들이여, 아니 교회를 이루는 거룩한 구성원들이여! 남의 눈의 티끌을 보고 정죄하기 전에, 먼저 내 눈의 들보를 바라보며 옷을 찢고 마음을 찢기로 하자. 누가 누구를 정죄할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우리 모두는 정녕 주님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로 살아가는 죄인들일 따름,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이 사도가 외친 절규를 처절하게 가슴에 새기며 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