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년 10월 31일을 계기로 일어난 종교개혁운동은 종교뿐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르네상스 운동과 자연과학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종교개혁의 주동자였던 루터의 관심은 사회를 개혁하거나 세상을 바꾸려는 데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의 가장 깊은 고민은 자신의 죄 문제였습니다. 나의 죄, 나의 죄 하면서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신부님을 찾아가서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어찌나 자주 찾아오는지 그의 고해를 듣던 신부가 "루터야, 한꺼번에 가져 오거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사실 수도원에 살던 그가 죄를 지어야 어떤 죄를 짓겠습니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요,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요, 세상 권력을 놓고 다툴 일도 없던 그 곳에서 루터는 자신 안에 미움과 시기와 이기심과 교만 등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괴로워했습니다.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는 고행을 해도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아무리 선행과 봉사를 해도 죄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죄 문제를 안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구원은 인간의 지식이나 노력이나 공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받을 자격 없는 인간에게 주시는 은총의 선물임을 인식하게 된 것이지요. 교황이나 그 어떤 성자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할 수 없고, 사람은 영광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님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섬김과 봉사의 직분이 종교적인 권위주의로 계급화하면서 교회는 변질되었음을 애통해하였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달라져야 가정도,교회도, 내가 속한 회사나 공동체도 달라질 수 있음을 하나님은 루터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Total Woman』이라는 책에서 모건 여사는 자신의 결혼 생활 이야기를 합니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살아본즉, 남편의 일상생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남편의 성격을 바꾸고자 계획을 세웠습니다. 아침이면 늑장을 부리는 남편을 깨워서 출근을 재촉했습니다. 또한 그 날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적어서 지시하고, 꼭 해야만 한다고 몇 번이고 거듭 당부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라고 다그쳤습니다. 그렇게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그녀는 자기의 성격까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부부관계가 파경에 이를 것 같아......' 그래서 그녀는 중요한 결단을 내립니다. 남편은 그대로 놔두고, 자기 자신 스스로를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침이면 전보다 더 일찍 일어났습니다. 남편이야 일어나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자기가 해야 할 본분에만 집중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남편이 일찍 돌아오든 말든 자기는 자기대로 정성껏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며 준비했습니다. 혹시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있어도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남편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설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완전히 내 편에서 생각을 고쳐 먹은 것이지요. 상대방에게 무엇을 바라거나 기대해서 이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무 기대나 바람없이 실천했던 이 행동에 뜻 밖의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생활태도가 서서히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7:3)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 제가 문제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외면하실까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한 사람을 두고 더 기뻐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