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도 사랑은 남는다
김영봉 | IVP | 236쪽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서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아무리 피하려 애를 써도 어느 순간 내 인생을 사로잡는 그 어둠의 세력은 우리가 환영해야할 역설이다.
이 땅에서 생명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 모든 것을 다 동원해도, 신이 정해준 때가 되면 거역할 수 없는 것이 섭리이다. 요즘 같이 젊음과 건강에 집착하고 의료기술이 발달한 시대는 죽음이라는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우리가 인정하고 친숙해야 할 주제이다.
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바쁜 현대인들은 죽음에 대해 배우지 못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가족이나 이웃의 죽음을 경험해도 그때뿐이지 이내 죽음에 대해 망각한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죽음이 찾아온다는 진리를 애써 부인하고 죽음과는 상관없는 불사신처럼 열심히 살아간다. 생이 있으면 사가 있는 법이고 자연의 원리와 순환이라는 법칙이 존재하는데 생에만 집착하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가 선물이라면, 죽음 또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선물임을 알고 준비해야 하는데, 대부분 죽음에 대해 우리 삶을 침해하고 박탈하고 공포로 몰아가는 칼로 여긴다. 그러나 죽음은 잔인한 칼이 아니라, 인생 모두에게 허락된 성스러운 칼이다. 이 죽음에 대한 공부와 준비가 한 인생을 더욱 성숙시키고 생명을 존중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이해와 태도는 한 사회와 문화를 반영해 준다.
본서는 아주 의미 있고 소중하다. 저자는 자신이 목양했던 성도를 천국으로 보내면서, 그 고인에게 어울리고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고 조문객들에게는 영감과 교훈이 되는 내용으로 구성된 장례 설교문을 책으로 묶었다. 죽음에 대하여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진 학문적인 저술은 아니지만 죽음에 대한 성경적 의미와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귀한 작품이고, 저자의 깊은 묵상이 담겨져 있는 고백문이다.
저자는 다양한 죽음의 얼굴과 무게를 그 상황에 맞게 하나님의 지혜로 맞이한다. 16명의 성도를 위한 설교문으로 구성돼 있는데, 자살한 자, 분만실에서 출산과 함께 사망한 여인, 너무 갑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 등 여러 장벽 앞에서 저자는 하나님께 질문하고 지혜를 얻어 은혜롭게 장례를 인도한다.
저자는 임종의 순간이 하나님의 임재가 강하게 역사하는 곳이고 이 사역이 가장 귀한 사역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진지하게 성도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다가간다.
필자에게 인상적이었던 것은 저자가 설교문 끝에 저자의 삶과 신앙을 묵상한 후 고인을 위해 시를 지은 점이다. 저자는 오직 그 성도만을 위해 고인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낭독한다.
또한 저자는 장례를 마친 후 환송을 위해 적은 원고를 유가족들에게 기념으로 선물한다. 그리고 저자는 자신의 교리적인 지식을 가지고 결코 무례하지 않고 종교적인 신념을 강요하지 않으며 인생의 교훈과 지혜를 얻도록 도와준다.
필자도 한 교구를 담당하고 있는 부목사이지만, 지금까지 열 차례가 넘는 장례를 인도하였다. 한 성도의 죽음 소식을 접할 때마다, 여러 심방을 통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장례이든 갑작스런 장례이든 가슴이 내려앉고 제일 긴장되는 시간이다.
더구나 한 성도를 천국으로 환송하는 자리는 인간적인 슬픔이 너무 크지만, 그 가운데서도 보다 큰 소망을 드러내야 하기에, 모든 순간과 절차마다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려 한다.
때로는 저자처럼 이해하기 힘든 죽음 앞에서 어떻게 장례를 인도해야 할지 하는 신학적 질문 앞에 무너지기도 했다. 내가 배운 교리적인 틀이 한 인간의 마지막을 황폐하게 만들고 유가족들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또한 비신자를 위한 장례를 인도하면서, 어떤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해야할지 몰라 난처했던 적도 있다. 등록만 했지 복음과는 상관 없고 십자가의 흔적이 안 보이는 잘 모르는 고인에게, 무슨 말을 들려줘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경우도 있었다.
반면 죽음의 모습이 그 사람을 닮는다는 말처럼 은혜로운 죽음을 보며 기쁜 마음으로 장례를 인도한 적도 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 가장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처절하게 외로운 순간에 젊은 목사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며 내 말씀과 기도에 하나님처럼 반응해준 어르신들이 기억난다.
목사가 옆에 있어줘서 믿음에 더 확신을 가지고 평안히 눈을 감았던 성도님이 떠오른다. 임종예배를 드리고 난 후, '나 하늘나라 간다'며 유가족에게 인사하고 평안히 가신 늙은 집사님도 그리워진다.
이렇게 죽음의 모습은 다양하고 무거우며, 집례자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이 시간만큼은 한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고, 마지막이라도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발휘될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그리고 한 인생의 마지막 가장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고, 고인을 끝까지 배웅해 주고 손잡아 줄 수 있는 영광스러운 자리이다. 이제 눈을 감으면 현실을 벗어나는 시간에 고인을 평안히 가도록 돌봐주는 복된 사명이다.
저자는 이렇게 이 임종의 순간을 목회자에게 있어 복된 시간이자 가장 영광스러운 현장이라고 소개한다. 저자에게서 성도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목회자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설교문을 읽으며 그 상황이 그려지기에 내 눈가에 눈물이 고이기도 하였다.
평소 필자도 장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저자의 고인을 향한 태도와 자세를 보며 더 숙연해졌고 마음을 더 새롭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설교문을 유가족에게 선물로 드리고, 감동이 된다면 고인을 위해 시를 낭독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끝으로 죽음은 믿음 없는 자들에게는 불안과 공포이다. 그러나 믿음 있는 자들에게는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이다.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이 죽음을 친구처럼 맞이할 것인지 악마처럼 맞이할 것인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이 땅에서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아도, 하늘에서 내 이름을 기억해주지 않는다면 헛된 것이다. 죽음의 순간 내 이름을 호명해주는 분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죽음 후에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가 있고 영원한 본향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로 하여금 경건하고 거룩하게 감사로 하루 하루를 살게 만든다.
우리 주위를 보면 다양한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늘 우리 곁에 죽음이 있다. 언제 그 죽음이 나를 방문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불안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여러 성도의 죽음과 장례를 보며 오늘 여기서 영원한 것을 보고 사랑을 남기는 지혜를 얻기를 권해 본다.
/방영민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전주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