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심관식 시애틀 형제교회 원로 목사

기도라는 용어는 모든 종교에서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이 시간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기도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기도해도 효과가 없다고 생각해서 기도하기를 그만 두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에 대하여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에는 기도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음의 두 가지가 그것입니다.

첫째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어엿이 할 수 있는 일을 우리를 대신해서 하시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첫째 법칙입니다.

어린 아이가 학교에서 숙제를 받아가지고 와서 부모에게 도와 달라고 조르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어린 아이를 대신해서 해주면 그 편이 훨씬 간단하겠지만, 그래서는 어린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은 현명한 부모라면 누구나가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때까지 지도하고, 설명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나님에게 밀어붙이는 일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위한 가르침의 방법입니다.

둘째 기도는 상황을 바꾸지 않고, 우리를 바꾸는 것입니다.

상황은 예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용기와 새로운 힘과 그 상황에 맞붙는 새로운 능력을 받음으로써 그것에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무엇이가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상 말한 기도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또 두 가지가 더 있습니다. 기도는 도피가 아니라 정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처지에서 피하게 하여 주는 임시변통은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를 도와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하여, 이를 정복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괴로운 상황에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도움과 지도를 받기 위하여 믿을 만한 사람 즉 친구나 선배에게 갑니다.

그런데 그 친구나 선배와 헤어졌을 때라고 하여도, 상황은 조금도 바뀌지 않고 여전히 대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찌 된 셈인지, 그 친구나 선배와 만나고 나서는, 같은 상황이면서도 전보다 두렵지 않으며 또한 전보다 괴롭지도 않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하나님께 듣는 일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하여금 해내도록 도와주실 것을 말씀드리기도 하지만 그와 반대로 오히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을 듣기도 하는 일입니다.

기도란 글자 그대로 "하나님, 내가 하나님께 무엇 하기를 바라십니까?"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중지하는 것은 기도로부터 잘못된 점을 너무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부디 저희가 착한 아이들이 되도록, 또한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것은 나이 어린 한 아이가 실제로 쓴 기도문입니다.

이것은 여러 의미에서 바른 기도라고 해도 좋겠습니다.

분명히 착한 아이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세요."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해외 선교 활동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바치지 않고 그저 기도하기만 해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도와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이것이 가장 좋은 기도입니다.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이 왜 기도를 하는 데 들어주시지 않느냐? 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다음 같은 경우에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1) 우리가 기도한다고 다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하시는 바 아니면 응답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기도하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모를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7-11에 보면 바울이 여러 병자를 고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몸에 불편한 질병이 왔습니다. 그 때 바울은 세 차례나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치료를 안 해주시고 나중에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데서 완전해진다."라고 말씀을 하실 뿐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6:6-10 이하를 보면 전도여행에서 새로 개발되는 신흥도시인 비두니아 지역으로 가서 선교를 하려고 할 때 성령님은 그의 길은 막으셨습니다. 그 때도 여러 차례 가겠다고 간청하였으나 성령님이 막으셨습니다. 후에 환상 중에 마게도니아 사람이, 와서 도와 달라고 하여 그 지역으로 가서 고린도 교회, 빌립보, 데살로니까 교회를 세우면서 크게 성공적인 사역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해도 안 들어 주시는 기도는 안 들어주시는 것이 그에게 더 유익하게 되기 때문인 줄 알기 바랍니다.

2) 일반적으로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주님께 불순종하면서 하는 기도는 안 들어 주십니다.

3) 마태복음 6:5-6절에 외식함으로 하는 기도 안 들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4) 야고보 1:6-8절에는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5) 베드로 전서 3:7절에는 가정 불화하면서 하는 기도를 안 들어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6) 마가복음 11:25절을 보면 남을 용서하지 않고 하는 기도를 안 들어 주십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인데 자기중심적으로 모든 것을 처리하면서 기도의 응답을 바라는 것은 현명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하나님을 중심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바라시는 가를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