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희 상담사
한수희 상담사

어느 때보다 청년 실업률이 높은 요즘이다. 취직을 위해 이력서와 더불어 자기 소개서를 작성하는 노력들이 가히 눈물겹다. 그 뿐인가? 대입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들 역시 자신을 소개하기 위한 에세이를 쓰는 과정들이 참 만만치 않다. 한정된 지면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 내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소기의 목적을 위해 나의 매력을 어필하는 작업도 어렵기 짝이 없는데, 하물며 있는 그대로의 ‘나’란 존재를 설명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더욱 난감한 일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찾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나’를 모르고 살아간다는 것이 실로 치명적이며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가를 설명 할 방법은 무엇일까?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만이 진리로 받아들여지는 현대의 추세에 따라, 뇌 사진을 보여주거나 DNA 분석결과를 알려주면 그것이 나를 온전히 설명하는 것일까? 나의 직업이나 나이, 생활 환경 등을 설명하면 그것이 나인 것일까? 그도 아니면, 내가 가진 세계관과 삶의 철학을 설명하면 비로소 나에 대한 설명이 완성되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자신을 설명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경험을 해 보길 권한다. 나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연구하고 해석하는 작업들이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한 작업을 하다 보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정보들이 얼마나 객관적 사실들에만 편향되어 있는지 발견하게 된다. 하물며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빈약한 정보에 놀라게 될 수도 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쓰면 족히 책 한 권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계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사의 경험적 단편이 될 수는 있어도 자신에 대해 다각도의 정보를 갖고 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더욱이 개인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왜곡되게 해석되었을 가능성은 농후하다.

이제 적성 검사나 여러 심리 검사 도구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정보를 상대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자신에 대한 지적 판단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있는 일이며 귀한 내적 자원임엔 분명하다. 또한 그 판단을 토대로 타인과 관계의 질을 높여가는 방편으로 잘 활용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적으로 풍성한 정보가 나에 대한 ‘이해’에 직결 되는 가 하는 문제는 또 다른 스토리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에 대한 정보와 해석은 자기 ‘이해’ 와는 다른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자기 이해는 개인의 역사적 사실이나 지식적 판단을 포함하되, 그것을 초월하는 인간적인 가치가 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을 넘어선 직관적이며 영적인 영역을 더불어 갖는다. 자기 이해란 자신과 소통하는 작업이며 과정이다. 그래서 자기 이해의 과정이 단순할 것 같으나 더 없이 심오하듯이, 자신과의 소통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인간의 일생은 저마다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거대한 연극과 같다. 우리는 자신이 만들어내거나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강요한 역할을 잘 수행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연극 속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무대 위의 ‘나’와 무대 밖의 ‘실제 인간’, 즉 겉으로 드러난 나와 그 이면의 나는 얼마나 다른가? 우리는 역할을 맡은 나와 실제의 나 사이에서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그 속에서 때론 긴장하며 때론 자책하고 때론 숨어버린다.

자신에 대한 정보의 나열이 자기 이해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 정보 자체가 자신을 들여다 볼 힘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이해가 자기와의 소통이라고 말 하는 이유는 내 안에 존재하는 여러 모습의 자기를 자세히 관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나는 거짓이며, 무대 밖의 나만이 진짜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분리될 수 없다. 총체적인 모든 모습이 결국 다 ‘나’이다.

나와의 소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깊은 관심과 통찰이며 자신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다. 일기를 쓰면서도 자신에게 조차 솔직하지 못 했던 우리지만, 가식을 벗은 정직함으로 나아갈 때, 무대 밖의 참된 나를 발견하는 시간들을 갖게 된다. 실제의 나는 다른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자발적으로 정직하게 자신을 공개할 용의가 있을 때 드러날 수 있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화장이 짙어지고, 민낯이 두려워지며, 적나라한 햇볕 아래보다는 적당한 조명 밑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잠들기 전에 화장을 깨끗이 지워내야 하는 작업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온전하진 않지만 진실되길 원하는 심정으로 내 안의 민낯을 빛 아래 비춰볼 수 있는 용기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