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이슬람 무엇이 다른가

 

유해석 | 생명의말씀사 | 352쪽 | 18,000원

◈기독교 저격수

지난 4·13 총선을 앞두고 하루에도 여러 통의 문자가 왔었다. 국회 입성을 희망하는 기독당의 문자였다. 동성애와 함께 이슬람의 위협에 대해 대처하기 위해 비례대표를 찍어 달라는 호소였다. 뿐만 아니라 총회와 노회 등의 차원에서 이슬람의 위협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교회 지도자들의 목소리가 사석의 만남에서도 빠지지 않고 거론되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당시 이슬람에 대해 종교적 기득권의 위기감으로 맹목적 반대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말 '이슬람포비아'는 아닌지 마음 속으로 불편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것이 전무했고, 또 교계 정치권 안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정말 정치적 공작으로 성도들을 선동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마음에 숙제처럼 부담감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다른 목회 사역에 이슬람과 동성애는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가 미뤄야 할 문제만은 아니라 생각되어 본서를 붙잡게 되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본서는 이슬람과 기독교에 대한 충실한 연구서라기보다, 이슬람에 대해 무지한 한국교회에 이슬람을 소개하는 강연이나 강의들을 글로 정리한 것 같다.

여하튼 본서에서 소개되고 있는 이슬람의 교리는 기독교를 염두에 둔, 최고로 진화된 저격수로 느껴진다. 본서 저자의 견해를 그대로 따르자면 이슬람 꾸란의 70% 이상이 성경의 내용과 일치 또는 유사하며, 심지어 한국어로 번역된 꾸란에서 '알라'를 하나님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는 분명 한국의 기독교를 타겟으로 한 교란작전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또한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에도 기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이 무신론자나, 타종교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비율을 훨씬 능가하는 통계가 있다. 실제로 한국에서도 이슬람교 숫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그 상당수가 기독교에서 개종을 하고 있다는 통계도 제시하고 있다.

본서를 읽으면서 이슬람이 한국 기독교의 저격수가 될 수 있는 요건에 대해 필자는 두 가지로 생각한다. 첫째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교리이다.

그들은 꾸란이라는 경전과 무하마드의 어록이라고 주장하면서 편집해 놓은 하디스를 중심으로 교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둘의 관계는 매우 상호보완적이며, 인간의 욕구와 본능, 그리고 이슬람을 벗어날 수 없도록 완벽한 교리적 그물망을 형성하고 있다.

우리 기독교가 취약하거나 모호한 부분을 이슬람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룬다.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키며, 어렵지 않은 율법적 규율로 구성돼 있으며, 예수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이용하여 무함마드를 마지막 선지자라고 말하며, 무함마드를 거짓 선지자로 이야기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대죄(大罪)로 마무리한 것은 정말 자신들의 종교를 굳건히 하는 세상 말로 '신의 한 수'이다.

◈이슬람 어떻게 대해야 하나

저자는 머리말에서 현재 기독교 내부의 이슬람에 대한 시각에 대해 보편적으로 세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첫째 이슬람을 사단의 종교로 생각하며 무슬림에 대한 공포를 혐오적으로 나타나는 이슬람포비아적 입장, 둘째 무슬림들에게 교회로 돌아오라고 초청하는 복음주의적 입장, 셋째 무슬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이슬람과 기독교 가운데 공통적인 부분들을 강조하고 이슬람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복음을 나누려는 내부운동자이다. 그러나 본서의 저자도 이슬람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 여성들에게

본서는 이슬람의 역사, 이슬람의 주요 교리, 기독교 안에서 이슬람과의 역사,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의 이슬람에 대한 견해들을 요약하고 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누구를 향해 있을까 궁금했는데, 마지막에 그 대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본서의 저자가 현재 물밀듯이 한국교회를 향해 들어오는 이슬람 세력의 주요 타깃이 어디인지에 대해 힌트를 주고 있는 듯하다.

바로 기독교인 여성들이 지금 한국교회를 향한 이슬람의 주요 타깃이다. 그리고 본서를 통해 분명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슬람이 철저한 남성 중심의 종교이며, 남성의 욕망과 욕구(공격 본능, 성적 쾌락)를 충족시키거나 정당화 또는 그 욕망과 욕구를 이용한 조종(지하드, 자살 테러)을 아주 교활하게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교회에도 작년 이맘 때쯤 여자청년 한 명이 아주 잘 생기고, 키도 크고 준수한 유럽 청년 한 명을 교회에 데리고 왔다. 그때 필자도 그 외국인 청년과 3주 정도 점심을 같이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여자 청년은 영어 공부를 위해 이 준수한 남자 외국인 청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남자가 봐도 반할 만큼 준수했다. 그 남자 청년은 자신의 국적을 모로코라고 소개했는데, 결국 무슬림임을 안 여자 청년은 더 이상 그 청년을 만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본서의 제목은 '기독교와 이슬람 무엇이 다른가'이다. 본서는 전반부에 이슬람과 기독교의 교리적 차이를 설명하고 있지만, 단순 교리 비교는 사실 크게 와 닿지 않는다. '이슬람의 교리는 이렇고, 거기에 기독교 교리는 이러하다.' 여기에 '그게 그래서 어떻다는 거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므로, '또 기독교가 잘 났다고 말하고 싶은건가?' 하면서 책을 덮을 소지가 있지 않을까 우려된다.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알고 있기 때문에 식상할 수 있고, 신학적 지식이 없는 분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짜증이 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역사적 부분과 교리를 비교하는 부분은 좀 더 수정과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주변에 무슬림 친구를 둔 사람들이 있다면, 특히 남성 무슬림을 아는 기독교 미혼 여성들은 본서의 6장과 7장의 부분은 반드시 읽어볼 것을 권면한다.

뿐만 아니라 목회 현장에서 바쁜 시간을 보내시는 목회자들이나 장로, 권사님들도 단순히 이슬람에 대해 반감이나 경계심만을 표출하시기보다, 무슬림은 이미 한국 안에 들어와 있고 한국 기독교를 정복하기 위한 그들의 음모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 아직 실마리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들 또한 선교와 복음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불변하는 우리의 과제이므로, 무슬림과 이슬람교에 대한 더 본격적인 연구와 대안을 찾는 것이 포비아적 경계에 우선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들을 전도한다는 것은 아직 우리에게 무리일 수 있겠으나, 반드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 당장 무슬림들은 우리의 딸들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차리고, 우리의 딸들에게 이슬람의 음모와 이슬람 남성들의 가면 뒤 얼굴들을 알리는 것이 급선무이다. 본서는 그러한 면에서 유용한 도구로서 그 가치를 발하기를 기대한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 담임, 프쉬케치유상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