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흑역사
강성호 | 짓다 | 312쪽
성경에 보면 모든 권세는 하늘에서 주어진다는 말씀이 있다. 그러면 독재 정권과 악한 정부도 하나님이 허락한 것이기에 우리는 피해를 입고 억울한 일을 당하여도 무조건 그 체제에 순종해야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뜻에는 숨겨진 뜻과 드러난 뜻이 있는데, 이런 경우 우리는 정부와 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들과 삶을 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불의한 세력에 동조하여 교세를 확장하고 기득권을 확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신학적으로는 번영신학에 물들어 맘몬과 탐욕을 추구하는 종교로 변질되었고, 성공신화에 물들어 출세를 도와 주는 미신적 신앙으로 오해됐다. 그리고 역사적으로도 교회는 역사의식이 왜곡되고 사회의 이해성이 부족하여, 늘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과 신뢰받는 이미지보다 부정적인 모습으로 많이 비치게 되었다.
이 책은 어린 시절부터 교회생활을 시작하고 대학에서는 선교단체 활동까지 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저자가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수치를 당하고 욕을 먹으며 전혀 공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찾아가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훌륭한 역사비평 책이다. 특히 이명박 정권 때 그의 비판과 교회를 향한 질문들은 더 가슴을 채우게 되었고, 근현대사를 전공한 저자가 대학원에서 한국기독교 근현대사를 연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책은 총 12장으로 된 3부로 구성돼 있다. 간단히 요약하면 1부는 '식민지 경험과 한국기독교'라는 주제로,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제도화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를 일제 식민지 상황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또 기독교가 식민지 전쟁과 침략 전쟁에 적극적 협력자였던 치욕스러운 과거사를 밝히고, 일제 잔재와 과거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고 반민특위까지 와해되는 과정을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설명한다.
2부는 '한국기독교의 왜곡된 정치참여'라는 주제로 제주 4·3사건 및 여순사건, 국민보도연맹으로 이어지는 민간인 학살에 기독교인들이 참여한 것 등을 다루고 있다. 또 이승만 집권 12년(1948-1960), 박정희 집권 18년(1961-1979), 전두환 집권 7년(1980-1987) 당시 기독교가 부정선거에 개입한 것을 다루고, 공산주의를 혐오하고 증오하여 극우 반공주의 노선을 걷게 되는 과정을 보여 준다.
또 기독교가 정부와 결탁하여 감리교가 광화문 거리에 본부 건물을 세우고, YMCA 건물이 이승만 정권과 긴밀한 관계로 세워졌으며,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총신대가 지지하면서 재단이 설립 및 인가되는 과정이 나온다. 김준곤 목사가 박정희 정권이 결탁하여 국가조찬기도회 및 군복음화가 시작되고, 선교단체에는 학생 아카데미가 세워지고 엑스플로74와 80세계복음화 대성회가 열리게 되는 뒷이야기가 잘 소개되고 있다.
3부는 '한국기독교의 사회적 추문'이라는 주제로 교회당 건축 붐이 일어나면서 부동산에 헐떡거리는 교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다른 종교에 대하여 무례한 언행을 하며 전제적인 모습을 하는 기독교의 모습이 소개된다. 이어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그들의 손을 잡아주기보다 사회의 권력과 권위에 복종하는 교회가 나온다. 또 컴패션과 신애전자, 이랜드 등 기독교 기업에서 일어나는 비인격적이고 비성경적인 실태를 고발한다.
책은 이렇게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사를 망라하고, 그 속에서 기독교의 과오를 역추적하며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인도하고 있다. 저자는 '기억의 정치학'을 말하는데, 이는 국가 권력의 공식 기억과 민중의 저항 기억이 교차할 때 상호 충돌과 타협을 하면서 쓰는 기법이다. 저자는 이것을 기독교에 접목하여 승리주의적으로 해석되는 기독교가 아니라 낮은 자리의 기억을 되살리는데, 필자는 이런 저자의 방법이 성경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오늘날 현대 교회의 문제와 기독교의 단점, 부족한 점을 교리적인 측면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 개혁신앙에 있어 교리의 가르침이 부족하고 복음에 대한 이해가 협소하여 교회다운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교회론적이고 신학적인 관점이 주류였다. 그러나 저자는 역사학도라 그런지 현대 기독교의 문제를 역사적 전망으로 풀어낸다. 필자는 오히려 이 관점이 기존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넘어 현실적이고 실제적이며 사회에서 인정되는 방법으로 여겨졌다.
아울러 현대 교회가 제도론적 교회로의 길을 선택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물론 제도와 체제를 갖춘다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고 성경이 제시하는 거룩과 생명을 추구하기 위한 제도화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일제 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교회의 모습은 제도의 유지와 확장을 위한 제도화였고 주류에 편승하는 분위기였다. 거룩한 목적이 있으면 그 과정도 거룩해야 하는데, 오히려 능동적으로 야합하였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호전론적 기독교였다는 것이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다. 살인과 폭력, 전쟁과 테러를 부정하고 오히려 이런 움직임을 저항하고 대적하는 평화의 상징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전쟁을 옹호해 왔고 일제 시대 때는 자발적으로 물자 지원과 인력 공급 및 징집을 독려해 왔다. 이어 비행기 헌납 운동을 벌이거나 교회 종을 주는 등 앞장서서 전쟁을 지원하고 권력에 타협해 왔다. 성경 해석에서도 구원과 해방의 모티브가 있는 구약과 사회적 저항과 소망을 품을 수 있는 예언서를 금지하는 일에 협력하고, 예수와 바울을 전쟁의 아이콘으로 설교하면서 제국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일에 도구가 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 책을 처음엔 읽어나가기가 두렵고 무서웠다. 개신교 목사로서 우리의 치부와 죄들을 직시해야 될 생각에 가슴이 답답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보다는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으로 서술한 저자의 균형 잡힌 시각이 좋았고, 다원주의 사회에서 기독교가 가져야 될 역할과 책임성과 정체성까지 대안으로 제시하는 그의 주장에 역사가의 진면목이 보여 아프지만 공감하며 읽게 되었다. 개인적 바람이 있다면, 현재 저자는 가나안 성도인데 교회로 복귀하여 기독교 역사가로서 예언자적으로 우리와 함께했으면 좋겠다.
끝으로,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과거사 청산이 되지 않아 암흑의 역사가 지속되고 있다. 교회 또한 이 부분에서 예외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 등의 절대 권력과 이념 논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너무 많다. 비극적인 것은 교회가 이런 역사의 현장에서 선지자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백성의 삶 속에 깊이 들어와 진리와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정권에 동참하고 이념의 노예가 되어 수많은 민간인들을 죽였다. 이 일에 영락교회 및 다른 교회들이 지휘하였고 서북청년단과 국민보도연맹 등에 가입된 기독교인들이 죄없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말았다. 그리고 산업화 시기부터 있었던 기독교 기업들의 비리와 부정과 강요와 압박 등 노동자를 탄압하고 예배를 통해 더 노동을 부과하는 등 인권을 유린하는 기업들을 보며 분노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런 악덕 기독교 기업은 현재에도 분명히 있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필자는 이 책을 통해 이런 우리의 역사적 과오를 보며, 우리가 깨끗하게 인정하고 회개하고 돌아서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지난 역사에 기독교를 통해 이 땅에 선한 빛과 능력을 나타내셨다. 교육과 의료와 복지와 사회제도와 남녀 평등과 인권에 있어 기독교의 역할은 긍정적이었고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이면에 흐르는 전제주의적이고 친자본적이고 권력지향적인 모습도 인정하고 회개해야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요즘 기독교가 혐오와 증오와 차별의 종교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우리가 지난날을 회개하고 청산해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는 미래를 섬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보며 괴로울 것 같았는데,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왜냐하면 저자는 감춰진 사실을 까발리는 목적이 아니라, 교회를 향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집필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4년간 자료를 수집했다는 저자의 노력에 독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처칠의 말을 떠올려보며....
/방영민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전주서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