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한국교회의 얼굴
박영돈 | IVP | 348쪽 | 14,000원
저자의 전 작품과 조각 글들을 여러 번 접한 적이 있었다. 깊이 있는 사유와 미려한 문장, 그리고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그의 선명한 표현이 좋았다. 그러던 중 저자가 수 년 전에 쓴 이 책을 펼칠 기회를 얻었다.
저자는 무너져 가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문제점과 자신이 생각하는 대안들을 이 책을 통해 전한다. 내용에 공감이 갔고,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이 책의 내용에 생명력을 주었다. 저자는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가르치고 있는 교단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특히 성령론을 가르치는 교수이다.
특이한 것은 그가 교수인 동시에 한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단신학교 교수가 상아탑에 머무는 것과 달리, 저자는 신학은 목회로 나타나야 한다는 소신으로 교회를 개척해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저자의 독특한 위치가 이미 나와 있는 많은 한국교회 현실과 대안에 대한 책들과 이 책의 차이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목사가 가진 구체성과 따스함, 그리고 그 마음에서 나오는 신학자로서의 신학적 엄밀성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시작하며 나름 건강하다고 소문이 난 교회들을 찾아다녔던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저자는 그 유명한 교회들에서 교회의 중심이어야 하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했다는 서글픈 고백을 한다. 저자는 무너진 한국교회의 여러 부분들을 하나씩 풀어내는데, 가장 먼저 대형교회의 폐해를 말한다. 또 이런 대형화를 가능하게 했던 복음주의 4인방에 대해 사정없이 비평을 하고 있다.
저자의 비판은 대형교회만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작은 교회들, 작은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목회 철학에 있어서는 대형교회와 대동소이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을 언급한다. 세상의 대안이 되지 못하고 세상에게 삼켜져 버린, 세속화된 한국교회 전반의 민낯을 드러낸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문제가 교회론이 무너진 것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1장과 2장을 통해 지적한 한국교회의 문제의 중심은, 성경적 교회론이 정리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실용성'이라는 관점이 교회를 움직이는 철학의 기저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성령과 말씀이 이 땅의 교회를 향해 뭐라고 말했는지는 듣지 않고, 세속적이고 실용적이라고 하는 조직 이론과 마케팅 이론들이 교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참된 교회가 되기 위한 전제로서, 교회론에 대한 정립을 요구한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의식보다 목사의 몸처럼 의식되는 교회, 성령의 전이어야 하는 교회가 영광이 떠나 버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 처참한 상태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적인 지표들만 보고 있는 세속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 것들.......
과연 이 땅의 교회가 회복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 땅의 교회가 진실한 회개와 갱신을 통해 영적으로 회복될 때라야 조국교회가 회복될 수 있다는 근본적인 답변으로 전반부를 마무리한다.
앞에서 한국교회의 핵심적 문제를 드러낸 저자는, 3장을 통해 회복돼야 할 교회의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다. 새로운 청사진이라는 장의 제목과 무관하게, 그 내용은 어쩌면 가장 일반적일 수 있는 것들이다. 말씀과 성례와 기도가 살아 있고, 멤버십이 회복된 상태의 교회,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을 회복하며 그 회복의 중심이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에게 있는 그런 교회에 대한 비전이 제공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짧은 지면을 통해 다양하게 제시하는 교회의 청사진은 교회론 책을 읽은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어디서건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법한 그림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흩어져 있던 그림들을 이 한 장에 묶었고, 일반적인 독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정돈해서 들려 주고 보여 주고 있다. 저자의 친절함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4장부터 7장까지가 이 책의 본론이며 동시에 결론이 되는 부분인데, 교회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제안들이 나온다, 특별한 점은 넉 장이나 되는 적용에서 석 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목회자가 해야 하는 것, 특히 그 가운데 두 장을 '설교의 회복'에 둔다는 부분이다.
저자는 한국교회 문제의 중심에 목사가 있고, 여러 가지 다른 이유들을 압도할 만한 이유가 잘못된 목회자 때문이라고, 목사에게 칼을 겨눈다. 목사의 소명, 은사, 성품과 같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목사 후보생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수용하는 신학교육 시스템과 같은 구체적인 부분에까지, 그리고 온전한 목사를 분별하여 따르지 못하는 평신도에 대한 문제들까지, 다양한 문제가 되는 목사와 관련된 부분을 지적한다.
이어지는 5장과 6장은 이렇듯 교회의 중요한 직분인 목사가 전하는 설교에 집중한다. 한국교회 유명 설교자들을 비평했던 정용섭 목사의 설교 비평을 토대로 한국교회 설교자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정리하고, 대안으로 말씀과 성령을 축으로 한 설교가 설교자들을 통해 선포되기 시작할 때 교회가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마치 자신의 제자들에게 권면하는 것처럼, 말씀과 성령이 함께하는 설교가 어떠한 것인지에 대해 조근조근 풀어 들려 주는 저자의 모습에서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을 보는 것 같았고, 저자의 아파하는 마음을 가장 많이 느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설교자로서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아픈 지적들과 적실한 조언들이었다.
마지막 7장은 시선을 더 넓혀 교회 공동체가 '주일'의 예배를 넘어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예배, 즉 삶의 예배를 온전히 드려야 함에 대해 말한다. 오늘날 무너져 버린 교회의 이미지는 결국 전도와 선교의 약화로 이어졌고, 이러한 흐름을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이 땅의 교회가 흩어지는 교회의 중요성을 알고 변화된 삶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삶의 예배'의 회복이 일어날 때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새로워질 것이며, 그로 인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가 새롭게 일어날 교두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도의 변화된 삶, 그 변화가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돕는 목회자들을 통해 이 거대한 쇠퇴의 흐름 속에서 교회가 다시금 생명력 있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나는 이 책이 '교회를 사랑하는 이, 그래서 교회의 회복을 위해 무어라도 하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꼭 읽혔으면 하는 마음이다. 일단 저자가 하는 교회를 향한 분석에 대부분 동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문제들과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에서 이 땅의 교회를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자로서의 날카로운 분석과 목회자의 따뜻함이 함께 느껴졌고, 저자의 교회를 향한 날선 비판의 칼날조차 이미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글이기 때문인지 상처로 느껴지지 않았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고 힘들었지만 낙심이나 한숨으로 끝나 버리지 않은 것은, 아마도 저자의 그런 '교회를 향한 사랑'이 느껴졌었기 때문인가 한다.
물론 저자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부분이 너무도 전통적이고 목회자 중심이었던 것은 아쉽기도 했다. 또한 교회를 다 아울러야 하는 저자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논지를 끝까지 펼치지 않고 중간에 비판의 칼날을 거둔 것 같은 부분도 느껴졌다. 하지만 한 사람의 저자에게 모든 것을 구하기에는 이 주제가 너무나 방대하고 첨예하다는 생각도 있었기에, 그러한 부분들에서는 또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이 책이 쓰이고 난 후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한국교회의 상황은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세우신 교회를 포기할 수 없기에, 다시 많이 망가져 있는 하나님나라인 교회를 바라본다. 주께서 교회를 통해 이 땅에 다시 한 번 그 얼굴을 비추시기를 간절히 소원해 본다.
/조영민 목사(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나눔교회)